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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배우 Aug 01. 2024

3화_사랑과 성실의 비례 관계

사랑하면 성실해진다

  평생에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서 극복해 보려 해도 번번이 실패하는!    

  

  나의 경우엔 “일찍 하기”가 그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죽어도 어렵고 약속 시간에 여유롭게 도착하는 것이 정말 너무너무 어렵다. 15분 일찍 도착하려면 15분 먼저 준비하기 시작하면 되는 건데 나는 15분 일찍 준비하든 한 시간을 먼저 준비하기 시작하든 결국 나갈 때는 시간에 쫓겨서 우당탕퉁탕 나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각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이렇다 보니 나의 빨리빨리 경남 출신 부모님은 외출 때마다 인내심의 끝에 놓였다.     



엄&빠: (기다리다 못해 엘리베이터까지 잡아놓고) 퍼뜩 노온나!!!!! 하이고 애가 쓰이서 같이 몬다니긋네!!!

나: (여전히 푸닥거리며) 갈게!!!!! (안 감)


  이 기회를 빌려 나를 내다 버리지 않으신 부모님께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안 버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 정신적 메커니즘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건 노력의 범위가 아니라 약속 시간을 지키는 뇌의 어떤 부분이 분명 고장 났을 것이다! 하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하지만 뮤지컬 동호회를 다니면서 내 뇌는 아무 잘못이 없음이 명명백백 밝혀졌다.     


  10분 미리 도착하는 게 죽어도 어려웠는데 동호회 연습엔 한 시간도 일찍 간다. 연습도 하고 미리 수업 준비도 한다. 안 되는 인간인 줄 알았는데 그냥 하기 싫고 변명 많은 인간이었음이 훤히 밝혀졌다. 노력했는데 안 된 거라는 핑계를 댈 수 있을 때가 더 마음이 편했는데 이제 꼼짝없이 노력 부족 의지박약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작은 가능성에도 나는 눈에 불이 반짝 들어오며 성실해졌다. 확실하진 않지만 다음 주에 노래를 불러볼 수도 있다고 하시면 나는 그 주에는 부를 가능성이 있다는 그 노래를 완벽 마스터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물론 그 노래를 안 부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동호회에 가는 토요일에는 출근하는 평일보다 일찍 일어난다. 그리고 출근길보다 훨씬 더 먼 길을 이동하여 연습실로 간다. 그래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배우일지를 쓰며 하루를 복습할 수 있으니, 이동시간이 긴 것은 오히려 좋다고 느껴졌다. 출근길 버스 30분보다 동호회에 가는 지하철 1시간 30분이 더 짧았다.      


  이슬아 작가님께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 이렇게 쓰셨다. 사랑하면 성실해진다고. 나는 이 문장을 발견하고 너무도 기뻤는데 이 모든 비합리적인 일들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애 초기에 나는 그 애가 오늘 저녁에 내 자취방에 올지도 모른다는 작은 가능성 때문에 온 집안을 뒤집어 청소했다. 몇 주를 미루던 화장실 청소를 깨끗하게 마무리했고 설거지도 분리수거도 야무지게 해냈다. 결국 그 애는 다른 일이 생겨서 그날의 저녁에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그다음에 또 같은 일이 있었을 때 나는 또 청소를 했다. 양치기 소년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을 때 사람들은 세 번을 속고 그다음부터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애가 나를 부르면 몇 번이고 성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기쁨이 되었다. 청소하면서 설렐 수 있다면 믿겠는가? 근데 나는 그때 더러워진 화장실 바닥을 박박 닦으며 너무 설렜다. 당시에 나는 아직 그 애를 사랑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성실이 사랑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아마도 그 애를 사랑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일에 나는 철저하게 성실해졌다. 이렇게까지 성실한 내가 나도 낯설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성실할 수 있구나!’하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몰랐지만 나는 시간도 여유롭게 맞출 수 있고 준비도 더 철저히 할 수 있고 그보다 더 작은 부분까지도 성실히 신경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해야만 하는 나의 일을 떠올리고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물론 내가 원해서 선택한 직업이지만 업으로 삼은 순간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일'의 범주에 속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솔직히 뉴턴도 가끔 수학 문제 풀기 싫었을 거다. 분명히.

저는 3년 차입니다.


  그래도 이 일을 꿈꿨던 때를 떠올리면 조금 애틋해진다. 물론 그때는 빛나는 달의 앞면만 봤을 뿐 차가운 뒷면도 있을 것임은 전혀 짐작도 못 했다. 이제 그 뒷면을 너무 다 알아버린 탓에 그때만큼 무구하긴 어렵겠으나, 사랑하면 성실해진다는 말을 떠올려 조금 더 힘을 내보기로 한다. 직장인으로서 당장 내일부터 출근을 사랑하겠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건 좀… 아무래도 거짓말이다. 대신에 일단 먼저 성실해짐으로써 사랑에 가까워져 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성실과 사랑의 비례 관계를 믿는다. 내가 사랑한 일에 성실해젔고 성실했던 만큼 더 사랑하게 되었으니, 성실하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의 중용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중략)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귀는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작은 일에도 성실히 임하면 사랑이 스미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직업을 사랑해 보자는 모순 같은 결심이 얼마나 오래 버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앞으로 성실과 정성을 애써보는 날들이 많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모여 대부분의 순간을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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