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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지 마

당신이 당신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by 주명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키우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죽이는 게 싫습니다. 그들이 제 손에 들어오는 순간 장렬히 전사할 테니까요. 식물을 죽이는 제가 싫습니다. 저는 생명을 죽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신경이 덜 쓰이는 선인장, 다육식물을 키워보면 어떻겠냐고 하시겠지만 어차피 제 손에 들어오면 그게 그거고 결론은 하나입니다. 내 손을 떠나는 것.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선인장이든, 공기정화에 좋다는 스투키든, 심지어 프리저브드 플라워까지도 죽일 수 있는 게 제 능력입니다. 저는 무한한 킬러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때마다 물을 먹여 주고 화분의 위치를 돌려가며 햇빛을 쬐어주고 가끔은 잎을 닦아주고 여간 사랑과 관심을 들이지 않고서는 식물은 자라날 수 없습니다. 키우는 것을 게을리하면 천천히 키우는 게 아니라 천천히 죽이는 것이니까요.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잎과 꽃을 펼쳐내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숲에 들어온 이상 식물은 자연에 속한 자유로운 생명이 아니라 사무실, 아파트, 내 방에 들어온 낯선 침입자가 되어 사람의 손에서 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렇게 사람 사이에 뿌리내린 식물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지 살 수 있습니다.

해마다 노인 고독사의 수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연령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내 이웃의 일이라 해도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나라에서는 독거노인가구에 수시로 방문해 그들의 신체적, 정서적 상태를 점검하는 등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자체와 기업이 연계된 우유배달사업을 진행해 안부를 묻는 사업도 있습니다. 심지어 영국에는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이 임명되었습니다. 사회문화와 경제의 변화에 따라 1인 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홀로 된다는 것은 노인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고독은 개인의 문제도, 특정 국가나 특정 연령대의 문제도 아닌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일어나는 지구적 슬픔입니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아닌 사람으로 큽니다.

우리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지만 너무나 쉽게 사람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몸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보다 마음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더 쉽습니다. 세상은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 있어서 그 사이를 오가는 줄을 끊어버리는 것은 제가 식물을 죽이는 것보다 쉽습니다. 식물의 줄기를 잘라내기 위해 잠시라도 어떤 행동을 해야 합니다. 가위를 가지러 가거나, 순간적인 손의 힘으로 끊어냅니다. 하지만 마음을 끊어내는 일이란 그냥 한 순간 마음을 먹으면, 그리고 무관심하면 끝나는 일입니다. 미워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우리는 마음을 끊을 수 있습니다. 얼굴을 돌리는 것은 쉬워 힘들지 않고, 돌아간 얼굴을 보는 건 마음이 어려워 힘듭니다.

화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관리하기를 게을리하면 식물이 말라비틀어지듯,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외면하면 그들이 숨이 끊어지듯 어떤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모든 것은 나와 멀어집니다. 멀어질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멀어지는 건 생각보다 슬프고 잔인한 일입니다.

슬픈 레퀴엠은 마른 잎사귀와 이웃집에서만 울려 퍼지지 않습니다. 가장 밀접한 곳에서도 울려 퍼집니다. 나와 나의 삶.

내가 나를 들여다보지 않고 멀어지면 나와 나의 삶도 말라비틀어지고 나도 모르는 새 사라집니다.

나는 무엇을 먹고 싶은지, 나는 언제 자고 싶은지,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는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내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내 마음은 어떤지, 나의 시간은 지금 어떻게 흘러가는지, 나는 어떤 꿈을 꾸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는 어느새 죽어있습니다.

죽어있는 나와 사는 느낌을 압니다. 저도 죽어봤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때마다 맛있는 것을 먹여주고, 빛을 쬘 수 있게 해 주며, 나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나는 나를 매일 살려야 하는 책임이 있으니까요. 나는 나로 큽니다. 다행인 것은 죽은 나는 나로서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죽어있다면 걱정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다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부디 지금 당신에게서 당신이 멀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멀어지는 건 슬프고 잔인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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