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이제 그만 미안해도 된다
"니 국물에 밥 말아먹을까?"
식탁에서 컵라면을 먹는 동생에게 물었다. 엄마는 지인의 장례식장에 가느라 저녁을 안 해놓고 나갔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엄마가 저녁을 준비해주지 않으면 내가 뭘 썰고 끓이고 굽고 하는 게 귀찮다. 밥은 밥솥이 하니까 상관없지만 반찬이 없으면 곤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고프면 당장의 허기짐에 시간을 들여 무엇을 만드는 게 싫다.
"에이, 뭘 이 국물에 먹어. 몸에 안 좋아"
그래 나트륨 덩어리가 몸에 뭐가 좋겠어. 그럼 도대체 뭐랑 먹지. 아빠는 뭘 해줘야 하는 거지.
"나도 그냥 라면 먹을까?"
그놈의 국수 혐오자인 나도 결국은 라면을 선택할 정도니 내 귀차니즘은 식성을 바꿀 정도로 강력하다. 내 끼니는 대충 해결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하나.
'우리 아빠는 뭘 해줘야 하는 거지'
"너네는 오늘 그게 식사 끝이야?"
"응"
"아, 그럼 나는 갔다 오면서 닭발이나 사 올까"
엄마 대신 아빠가 지인의 병문안을 가야 해서 잠시 외출을 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닭발을 사 온다니 괜히 반갑다. 그럼 저녁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갔다 올게"
부디 빈 손으로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인사한다.
"다녀오세요"
"그런데 이거 한 끼 차려 먹는 것도 귀찮아서 라면 끓여 먹는데 엄마는 이걸 30년이나 했어".
"맞아, 원래 집안일이 제일 티가 안 나잖아."
동생은 엄마가 이 귀찮은 일을 그토록 오래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 나에게 단 일주일만 매 끼 식사를 챙기라고 하면 아마 나는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하냐고. 계란후라이, 스팸 4조각 굽기, 김 싸 먹기 말고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냐고 당당하게 짜증을 낼 거다.
엄마는 이 까무러칠 일을 30년 했다. 그렇다고 30년간 밥만 한 게 아니다. 빨래를 널고 접고 나와 동생을 씻기고 뜨거운 여름에도 시장에 들러 양 손 가득 검은 봉지를 들고 어묵 하나 사달라는 찡얼거림에 모자란 손을 한 채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각종 공과금 납부하랴 남편의 떨어진 와이셔츠 단추 달랴 애들 숙제도 아닌 엄마 숙제인 여름방학 숙제하랴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나가랴 오밤중에 배탈 난 딸내미 배 문질러주랴 매 순간이 노동이었다.
아직 까무러치지 않은 게 기적인가 싶다. 넌더리가 나는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았다고 감히 엄마 대신 말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내용과 상관없이 존경받아야 하는 일이다. 내 인생을 걸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꿈이나 취미도 아니고 일상에 최선을 다해 몰두하는 것이라면 더욱더. 가치를 발견하기도 전에 몸으로 먼저 움직이는 것은 사실 불안한 일이다. 의미를 알지 못하고 다가선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래서 힘든 일이다.
마음이 뛰지 않는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마음이 뛰는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 어쩌면 위대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반복되는 지루함을 이기는 일이지만 지루함을 계속 살기로 결단하는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분명 봐왔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가끔 사람들은 집안일이나 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 나도 집안일이'나' 하고 싶다 말했다. 그게 얼마큼 땀과 눈물이 나는 일인지 모른 채. 그리고 숨겨진 땀과 눈물은 또 얼마 큼인지 모른 채. 모르니까 말할 수 있는 철부지였다.
아빠가 그랬다. 요즘 엄마가 아침밥을 제 때 안 준다고, 늘 그것 때문에 싸운다고.
엄마가 말했다.
"30년 했으면 오래 했잖아"
직장에서도 근속연수가 30년이 넘으면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박수받는 전설적인 인물이 된다. 근무지 껍데기만 다를 뿐이지 엄마도 근속연수가 30년이 넘는다. 그리고 앞으로 그 숫자를 해마다 경신한다. 잠을 자는 순간을 빼곤, 그러니까 잠들기 전까지 일하는 전설의 인물과 나는 산다.
아침밥 먹는 사람으로 키워놓곤 어느 날부터 출근을 앞둔 나에게 아침밥을 제때 안 챙겨주는 엄마를 보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섭섭하기도 했다. 혹시 아빠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그러면서 알게 된 두 가지가 있다. 우리 엄마는 아침잠이 원래 많은 사람이라는 것과 늦게 차린 아침상에 미안해한다는 걸.
이걸 안 후로 알아서 챙겨 먹는다. 여전히 게으름뱅이라 밥 대신 과일, 두유로 때우지만.
아침에 스팀다리미로 블라우스를 다리는 나에게 엄마가 말한 적 있다.
"아이고 미안해, 엄마가 해줘야 하는데."
여전히 철부지지만 조금 철이 든 철부지라 엄마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니까.
"아니 이걸 왜 엄마가 해줘야 해, 내가 해야지."
"에이, 아침에 바쁜데 다려야 하잖아. 미안하지."
엄마는 이제 그만 미안해도 된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