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
수요일마다 나는 독서모임을 하러 책방에 간다. 책방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내려 한 주는 소고기김밥, 한 주는 참치김밥 한 줄을 사 먹고 책방까지 걸어간다. 20분 정도를 걷는데 그 시간이 행복하다. 이유는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 게 좋으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 것도 좋지만 걸음의 끝에 다다른 곳이 언제나 생기가 가득한 책방이라 나는 수요일의 저녁이 참 좋다.
그리고 생기가 있는 노란책방엔 언제나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그 따뜻함이 과도한 친절이나 관심이 아니어서 좋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촉수를 내밀어 서로에게 뻗치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우리는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사람을 궁금해하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살까.
빽빽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틈을 벌려 원하는 시간으로 통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지만 그 틈을 벌리고 들어가면 시간은 수평선처럼 가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깊숙하게 침투할 수 있도록 세로로도 설계되어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조금 더 나와 내 인생을, 그리고 세상을 더 가까이서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내게 수요일은 세로의 시간이 열리는 날이다.
언제나 당찬 하이톤 목소리의 <앨리스의 별별책방> 대표님이 유흥가였던 동네에, 술집을 허물고 책방을 낼 수 있었던 이유, 자신이 경험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책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세계를 사람에게 알려야겠다는 다짐은 어디서 온 것 일까. 왜 이 어른은 사람과 책을 사랑하는 걸까. 자기만 알아도 좋을 것을 왜 나눠주려 하는 걸까. 왜 이기적이지 않은 걸까.
한 달간 글쓰기 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전문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우리가 아니라서 날카롭게 베거나 무자비하게 뜯어고치는 대신 서로의 글에 응원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다. 파란수트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이 정도로 사색할 수 있는 깊이를 지녔다’는 것과 ‘글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수강생들에게 글 쓰는 습관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체계적인 글쓰기 방법을 알려준 선생님은 내게 참 좋은 어른이었다. 자신만의 비법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가 영업비밀을 알려주고 싶을까. 비록 나와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더라도 나는 정말 이 선생님을 어른이라고 말하고 싶다. 타인의 성장을 도우며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라고. 아참, 우리 선생님 이번에 <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라는 책을 내셨다. 홍보하려 쓰는 글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의 기쁜 일은 함께 하고 싶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만난 어른들은 내가 선택한 어른이 아니었다. 내게 어른은 부모님과 선생님이 전부였다. 나는 이 어른들과의 만남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이 만남은 의도적이지 않은 반강제적 만남이었다. 어른들은 항상 일방적으로 내 앞에 왔다. 그래서 그들의 가르침이, 가치관이, 성향이 무엇이든 나는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소심한 저항은 있었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십 대와 삼십 대 사이의 어중간한 어른이었던 나는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나 비슷비슷한 어른들 뿐이었다. 선배, 교수, 상사. 내가 만난 어른은 또 스무 살 이전과 비슷하게 반강제적 만남 속에 있었다.
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는 안다’는 무지막지한 신념론자였다는 것이다.
자라나는 청춘에게 배려보다는 자신의 완강한 태도를 들이밀기 좋아했다. 그 딱딱함으로 나를 부러뜨리려 했다. 그래서 거부감이 들었고 어른들은 배울 게 별로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다짐했다. 저런 어른은 안돼야지.
삼십 대가 되어도 여전히 자기는 알고, 자기만 아는 어른들이 곁에 있지만 이제는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좋은 어른을 찾아가면 된다. 내가 책방과 글쓰기 학교에 가 좋은 어른을 찾아 만났듯이. 좋은 장소에는 좋은 사람이 반드시 있다.
그리고 내 경험을 빌어 조심스레 말하자면 책과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타인의 개성과 가치관이 오롯이 담겨있는 그러니까 타인이 들어가 있는 책을 읽는다는 건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말해준다.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 있다. 자기주장만 강하고 자기의 실수는 실수고 타인의 실수는 잘못으로 여기며 타인의 상처보다 자신의 상처가 훨씬 더 고통스럽고 좋은 것은 독차지하려는 사람, 그러면서 되게 멋진 어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
어른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만이 된다. 노력은 언제나 귀찮고 힘든 일이다. 그 번거로움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어른이 된다.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존경받는 사람이 드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쉽고 편한 길을 가지 않아야 어른이 된다.
나는 아직 진짜 어른이 되려면 아득히 멀었고 어쩌면 어른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삼십 대가 되어 제법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내가 좋은 어른을 만난 건 행운이다. 내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순간을 뛰어넘지 못할 때 먼저 뛰어넘어 길을 가고 있는 어른을 따라가면 되니까.
나의 좋은 어른들이
더욱 좋은 어른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