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것밖에 안되니까

흔적을 남기련다

by 주명



한계를 뛰어넘어야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한계는 나는 유한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눈 앞에 뛰어넘어야 할 허들보다 그 사실에 먼저 넘어진다. 나는 게으르다. 할 줄 아는 것은 없고 좋은 스펙을 가지지도 않았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저 신념과 느낌대로 살아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보다 더 높이 갈 수 없고 멀리 갈 수 없고 넓어질 수 없다. 이 사실이 나를 자극해 도전하지만 주저하게 만든다.

나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욕심이라 느끼면서도 왜 이룰 수 없냐고 내 자신을 설득한다. 넌 될 수 있다고. 왜 안 된다고 생각하냐고. 아직 해보지 않았다고.

이상향의 깃발을 내가 꽂을 수 있을까. 내가 바라던 날에 도착해서 나는 웃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 날 울지도 모른다. 겨우겨우 꾸역꾸역 걸어갔으니까.

그럼에도 왜 나는 이상향에 도달하고 싶을까? 이상향은 순식간에 뛰어넘어서 갈 수 있는 곳도 날아서 갈 수 있는 곳도 아닌데.

왜 나는 그 찬란한 곳에 가고 싶은 걸까. 그리고 빛나는 건 왜 피와 땀과 눈물로 맺어지는 걸까.

사람은 아무런 이름도 없이 세상에 와 이름 하나만 남기고 떠난다. 잊혀지면 그만인 한번뿐인 생, 뭘 이리 아등바등할까.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싶어 흔적부터 남긴다. 무언 갈 계속한다. 누구는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신약 개발 연구를 하고, 누구는 한평생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고, 누구는 지하실에서 혼자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사람은 이름이 남겨지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노력한다. 그 막연함이 우리를 밀어주고 끌어준다.

나는 이게 될까라는 두려움을 밀어내고 잊기 위해 노력한다. 계속 무언가 하는 것은 내가 잘하니까 하는 게 아니라 못하니까 하는 것이다.

인간사 함부로 이야기할 순 없지만 단순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잘했으면 이미 개발은 성공했을 테고, 자식들은 스스로 길을 갔을 테고, 가수가 됐을 거다. 이뤄내지 못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려는 말이 아니다. 못한다고 주저하고 좌절하지 않고 못하니까 계속하는 사람의 끈기와 집념과 열정을 응원하는 것이다.

세상이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의 흔적을 기억한다. 어쩌면 우린 내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사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지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하지만 나는 믿는다. 스스로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결국 모두가 기억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걸.

당신과 내가 그렇게 될 거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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