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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온다.

by 주명


베이지색 울장갑을 드디어 제대로 잃어버렸다.

‘드디어’라고 해서 벼르고 있던 사건은 아니다.


제일 처음 잃어버린 장소는 회사 복도였다. 건물을 벗어나 장갑을 끼려 했는데 손에 쥐고 있던 장갑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니 불 꺼진 복도에 장갑이 덩그러니 있었다. 다행이었다. 얼마 끼지 않은 장갑인데 분실되면 아까우니까. 그게 재작년 일이었다.


작년엔 분명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까지 들고 있었다. 집에 다 도착하지 않은 중간층에서도 들고 있었다. 집에 들어와 주변 정리를 하는데 장갑이 안 보였다. 아니 분명 엘리베이터에서도 들고 있었는데 집 안에 들어오면서 생각 없이 아무 데나 놨나 싶어 여기저기 뒤져도 안 보였다. 설마, 엘리베이터에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마지막 기억은 엘리베이터였으니 우리집 층에 멈춰있는 엘리베이터를 열었다. 거기에 또 덩그러니 있었다. 두 번의 분실이 있고 나서 이 장갑이 손에서 잘 미끄러지나 싶었다. 꽉 쥐고 다녀야지 생각했다.


출근길에 아빠는 아침 운동을 하려고 대부분 나를 태워준다. 나를 내려주곤 산으로 간다. 요즘은 장갑을 끼지 않으면 꽤나 손이 시려서 수요일에도 장갑을 챙겨 아빠 차에 탔다. 점심시간에 잠깐 병원에 가려고 장갑을 찾았는데 가방에 장갑이 없다. 보조가방을 하나 더 챙겨와서 그 가방에 있나 뒤적이니 역시나 안 보인다. 하아- 드디어 제대로 잃어버린 건가 싶었지만, 집에 두고 왔을 지도 모르니까. 퇴근 후 집에서 찾아봐도 없었다. 혹시나 아빠 차에 있나 싶어 다음날 아빠에게 혹시 차에 떨어진 장갑을 보지 못했냐 물었더니 본 적이 없다 했다. 아빠가 못 본 걸 수도 있으니 차에서 찾아보고 출근하랬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니 아빠가 아파트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차 키로 문을 열어줬다.


삐빅- 소리와 함께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문을 열고 좌석을 살폈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재빠르게 문을 닫고 “없어!”라고 고개를 젖혀 아빠에게 말하고 출근길을 나섰다. 미련 없이 발을 떼야 제시간에 도착한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잃어버린 곳이 회사라면 분실물 습득 게시물이 올라올 텐데 본 적 없다. 단지 안에서 잃어버렸다면, 그럴 수 있다. 굳이 바닥에 떨어진 장갑 한 켤레를 관리사무소에 맡길 리 없으니까. 도대체 어디서 내 손 안을 벗어난 건지 모르겠다. 세 번째 잃어버리게 되니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쿨하게 이별하기로 했다. 없어도 되긴 한다. 아직도 네 개의 장갑이 있다. 베이지색 울장갑을 제일 좋아하지만.


화요일에 두 번이나 품절 안내를 받은 탁상달력을 배송받았다. 품절 메세지를 받을 때마다 다른 사이트를 찾았다. 세 번째 사이트에서 마침내 구매하고 배송이 시작됐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드디어 나를 닮은 캐릭터가 그려진 달력이 오는구나 한껏 기대했다. 집에 와 신발장에 덩그러니 놓인 뽁뽁이 택배 봉투를 집어 들어 바로 뜯었다. 오기와 집착 끝에 받아 든 달력이다하며 봉투를 열었는데 다른 달력이 왔다.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이냐.


지난주에는 택배기사 실수로 오배송돼서 다른 동 같은 호수에 사는 중년 아저씨가 내 배도라지즙을 뜯어 먹더니, 이번에 또 오배송 사건이 일어났다. 택배와 원수졌나 싶었다. 다음날 달력을 보낸 작은 서점에 전화했더니 이해가 되지도 않고, 앞뒤도 안 맞는 이야기를 하며 잘못 보냈다며 환불하실 거냐고 묻길래 그냥 쓰겠다 했다. 다음에 주문하면 서비스를 주겠다고 하셨는데 다음에 주문하면 주문자가 나인 걸 기억이나 하실래나.


달력을 받아든 날 친구가 목감기에 걸린 나에게 유자청을 선물로 택배를 보내왔었다. 그날 친구에게 고마움의 메세지를 전하면서 달력 오배송에 대해 말했다. “신나게 송장 다 뜯어버렸는데 상세페이지와 다른 달력이 왔네요ㅋㅋㅋㅋㅋ”. 만약 물건이 없어서 보낸 거라면 그냥 써야겠다, 귀찮기도 하고 이것이 바로 내 운명의 달력이라 여기겠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친구는 오배송이니 따지라고 했지만 귀찮아서 더 이상의 큰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실, 오배송 된 달력을 받아들곤 트위터에서 본 문장이 생각났다. 세 번째 장갑을 잃어버렸을 땐 문장을 확신하기로 했다.


‘오늘 라디오 듣는데 오프닝 멘트가 너무 재밌네. 내게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온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 내게 오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멘탈 관리 갑...’


새해가 되고 뒤늦게 주문한 내 탓도 있었지만 원하지 않는 달력을 받아들었을 때 이 달력이 내게 와야 하는 달력이라 여기기로 했다. 장갑을 잃어버렸을 때도 더 안 껴도 크게 아쉬움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내 것이라면 다시 내 손에 들려 있었겠지.


문장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게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면, 순간이 아니면, 기회가 아니면, 재능이 아니면.


요즘은 크게 소재가 없는 날에도, 사건이 없는 날에도, 평범하고 지루한 날에도 쓰고 싶은 마음을 먹게 된다. 쓰는 삶은 내게 필요한가 보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일을 쓰고 싶고, 스쳐가는 생각을 쓰고 싶고, 마음의 요동, 무늬 하나 없는 평범하고 단정한 삶의 단면을 쓰고 싶다. 무엇이 되든 기록하고 싶어졌다. 밤에는 불 끄고 침대에 누워서 쏟아져 나오는 세상의 잡담에 정신을 빼앗겨도 누가 뭐라 할 것 하나 없다.


남이 주는 자극 말고, 내가 나를 자극하고 싶다. 내가 내게 반응할 무언가를 던져주고 싶다. 내가 봐도 주의력 결핍을 의심하는데 쓰는 순간만큼은 온 정신과 눈이 패드 화면을 향해있다. 딴짓하지 않고 집중한다. 나를 바라보기 좋아하는 내게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온다.


한동안 오래도록 쓰지 않았는데 이유도 없이 다시 쓰고 있다.


그래서 ‘쓰는 생활’은 내게 오는 게 맞나 보다. 쓰는 삶까지는 거창하고,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쓰기는 아니니 적확한 표현도 아니겠지. 생활 정도면 어느 정도 내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니 쓰는 생활이 괜찮은 표현이겠다.


큰 깨달음도 주는 글도, 남들이 알지 못했던 정보를 주는 글도 아니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글은 또 다른 나로 세상에 남기 위한 나의 모습이다.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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