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나 상황 속에 존재하니까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취향과 가치관이 생기고 정신에 따라 삶의 태도를 형성한다. 취향과 가치관이 확고해지면 고집이 되기도 한다. 나 또한 아집의 존재.
세태가 이러니까, 유행이니까, 주류니까, 가풍이니까, 문화니까,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으니까, 멋있으니까와 같은 핑계로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사유하지 않으면 그저 숨 쉬는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 사라지기 위해 탄생했지만 탄생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은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니라 거저 받았으니까.
자유라 일컬어지는 삐뚤어진 삐딱함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으면, 진짜 자유를 포기하고 방종과 타락을 불러오는데 애쓰는 사람밖에 되지 않는다.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지 못하면서 자유를 논하고, 이제는 자유를 말할 수 없는 시대를 소망하는 어리석음을 우상으로 여기는 시대. 욕하는 것 또한 자유다. 언젠가 이토록 바라던 삐뚤어진 자유는 욕마저 앗아간다는 알까. 고집 또한 개성이라고 존중하지 않고 말살한다는 걸 알까. 그저 인간1로 살길 바라는 걸까.
사람은 어느 방향이든 마음이 가는 쪽이 있다. 애초에 불완전하니 불균형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내가 방향을 올바로 잡지 못하고, 세상이 흔들려 조각나 사라진다 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오늘의 찬양을 들으며 깨닫는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려는 노력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