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안경
[첫 번째 안경]
나는 가끔 삐뚤어진 안경을 쓰고 다닌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원래는 똑바른 안경을 쓰고 다녔지만 누군가와 부딪혀서, 아니면 넘어져서,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삐뚠 안경을 쓰고 태어나서 그런 건지 이유는 알 수 없겠지만.
끝없이 남을 탓하는 사람, 환경을 탓하는 사람, 사회를 탓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깝다. 나는 가끔 인생을 이렇게 ‘~의 탓’으로 허비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떼어서 하루가 모자란 사람들에게 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시간은 나 아닌 외부의 탓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망치는 ‘넘치는 독’이고,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를 짊어지고 인생을 해결하려 노력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한 선물’ 일 테니까. 하지만 탓만 하는 사람들에게도 열심히 사는 사람과 동일한 하루가 주어지는 이유는 기회를 주기 위함일까. 다시 돌이키고 첫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즉, 안경을 고쳐 쓰는 기회.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도 자신이 책임지려 하지 않고 끝없이 탓하는 사람들에게 제발 좀 안경을 고쳐 쓰라고 말하고 싶다.
[두 번째 안경]
신랑이 입장한다. 오른발을 버진로드가 시작될 계단에 올린다. 그리곤 당당히, 홀로 계단과 버진로드를 밟으며 앞 쪽으로 나간다. 주례사를 맡은 아버지 친구 분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너무 격하게 허리와 머리를 숙였는지 콧잔등에서 미끄러진 안경을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으로 다시 올린다.
신부가 입장한다. 10cm는 족히 넘을 웨딩슈즈를 신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버진로드를 밟으며 걸어간다. 새벽부터 붙인 긴 인조 속눈썹은 피곤해서 내려앉고 싶기도 할 텐데 전혀 그런 기색 없이 꼿꼿이 천장을 향해있다. 그러고 보니 매일 안경 쓰던 모습만 봤는데 오늘은 달라 보인다.
주단을 깐 높이가 있는 통로를 남자인 신랑이 지나가든 여자인 신부가 지나가든 항상 버진로드(virgin road)다. 물론 초행길이라는 의미로 쓰겠지만, 그 길을 걷는 건 남자와 여자인데 왜 배첼러 로드(bachelor road)는 없는 걸까. 왜 처음 만든 작품은 처녀작이며, 처음 하는 비행은 처녀비행일까. 세상에 처음 태어난 사람은 아담인데.
나는 예식장에서 안경을 쓴 신부를 본 적이 없다. 안경은 예뻐 보여야 한다고(도대체 누가 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겨지는 상황에선 벗어던져야 할 물건이다. 물론 나도 꾸미고 싶을 땐 렌즈를 끼지만 왜 나는 은연중에 예쁘게 보이려면 안경을 벗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게 됐을까. 그리고 ‘왜 예뻐 보여야 해?’하고 반감을 가질 땐 화장도 안 하고 안경을 쓸까. 왜 드라마에서는 안경을 벗어야지만 분홍 꽃잎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은 극적 변신이 일어나고, 뉴스를 보도하는 안경 쓴 여자 앵커가 화제가 되었을까.
아름다움은 안경 너머에 있나, 얼굴에 있나.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데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 없으니 안경을 벗는 건가.
여자라서 질문하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한 걸 물어본 한 사람 일 뿐이다.
[세 번째 안경]
시력이 떨어지면 안경을 바꾼다. 렌즈만 바꾸기도 하고 이 때다 싶어 새로운 안경테를 장만하기도 한다. 잴 때마다 수치는 떨어지거나 그대로인데, 셀 때마다 나이라는 숫자는 올라가기만 한다. 사람도 낡으면 알맹이나 껍데기를 바꾸면 안 되나, 위험한 생각이겠지. 순리를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