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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쓰고, 살았다.

만만한 것은 세상에 없다

by 주명



한동안 글쓰기 학교를 다니면서 매일 글을 썼다. 매일 쓸 수 있어서 보람찼고 내가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은 평범한 날들에 대해 기록했고, 어느 날은 소설 같은 느낌의 글도, 철학적 사유를 쓰기도 했다.

내 생각들이 터진 쌀자루에서 새는 쌀알같이 끝도 없이 쏟아질 수 있는지 글을 쓰면서 알았다. 말수가 적어서 모든 말을 모아 글자 수를 채우고 후두둑 떨궜다.

글이 휘몰아칠 때 난 내가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확신했다. 매일 쓴 내 글 중 한 두 편만 세상에 나와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울릴 거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글 쓰는 것은 내게 시간이 허락되고, 감정이 허락될 때 이뤄진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물론 노력하는 마음이 지금은 그때보다 줄어들기도 했지만. 일상이 정신없으면 깊은 내 안으로 들어가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살아가기에 벅차다.

나는 마음이 넉넉하고 몸이 피곤하지 않아야 글을 쓸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날은 아무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다 자부했는데 글쓰기는 허락되는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자만하며 썼을까. 글 쓰기 말고도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내게 허락이 되어야만 나는 살 수 있는 걸까.

나는 내 삶을 얼마큼 통제할 수 있을까. 감정 하나도 통제하지 못해 이렇게 오늘처럼 글쓰기가 어려운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기라도 한 걸까. 나의 탄생이 내 의지가 아니었듯 내 삶은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삶은 자만한 자를 괴롭히기 위해 통제되지 않는다. 끝도 없이 치솟는 교만을 꺾고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

나는 얼마큼 어리석은 글들을 쓰고 있었나 돌아본다. 나는 호기롭게, 쉽게 썼다.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글쓰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몰랐다.

나는 호기롭게, 쉽게 살았다.
얼마나 삶이 무겁고 따끔한 것인지 모르고 함부로 살았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이 삶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쓰다 보면 '인생은 쓰다'라고만 마침표 찍진 않겠지. 덧댈 수 있겠지.

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날 이렇게 써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 걸 보니 오늘은 글쓰기보다 마음을 다독여야 하는 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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