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움직이는 건 나뭇잎뿐만이 아니었다. 회사 정원에 꽂혀있는 빨간 바람개비도 세차게 돌고, 비탈길을 올라 고개를 들어 흔들리는 수풀을 보니 내 마음도 흔들렸다. 녹음은 분명 반가운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기뻤다.
그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다는데 내 마음은 그저 기쁨으로 가득 차서 나 가진 고민은 그의 고뇌에 비하면 실체가 없는 허영이었음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의 번민이 어둠으로 채색되어 지우면 검은 잔상으로 얼룩진 캔버스였다면, 나의 고민은 고작 선으로 그어져 있어서 지우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가느다란 잡념 정도였다니.
어쩌면 흔들리는 잎새에도 내 마음의 진자가 기쁨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건 노래를 듣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에겐 어둠 속에서도 잠시라도 세상을 달리 보게 해줄 노래 한 곡 하나 없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고독의 느린 걸음을 함께 거닐어줄 친구가 없었나. 고통으로 헐거워진 마음과 마음 곳곳에 일어나 있는 생채기가 없었다면 이는 바람에 괴롭지 않았을까. 못으로 뚫린 그리스도의 손바닥처럼 메우지 못할 마음의 구멍이 그를 서두르게 만들어 떠나게 했나. 감옥을 벗어난다면 그는 가장 처음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그의 마지막보다 나는 열 해를 더 살아내었다. 숨쉬기에 살아있었던 나의 생애는 젊은 죽음의 뒷모습에 부끄러울 뿐이다. 붉어질 얼굴을 숨기기 위해 내 낯짝을 두껍게 하고, 여름의 문턱을 넘어가며 계절의 변속에 흔들리는 내 마음을 그로 잠시 제동 삼는다.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를 보며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리겠다는 다짐을 읽으며 삶보다 죽음을 고귀하게 여기는 청년을 내 마음에서 또 쉽게 떠나보낸다.
떠난 이를 불러냈던 건 내가 아니라 바람이었으니까.
모든 핑계를 바람 속에 숨겨 보낸다.
이렇게 나는 보잘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