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칠일 입추.
묘하게 아침 공기가 달랐고
퇴근길엔 조금 천천히, 걸었다.
학교 안 정류장에 잠시 앉아 풍경을 바라봤다.
더웠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고
평소보다 집으로 가는 시간의 길이를 늘였다.
퇴근 후 들어선 집 안엔 에어컨을 튼 줄 착각할 정도로
열어둔 창문으로 가을이 선선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이유 없이 재미없었던 요즘.
아마 나 몰래 가을이 오고 있어서 그랬나 보다.
아직도 두 계절을 더 보내야 하지만
여름이 끝나가면 나는 한 해를 다 보낸 것 같다.
가을에 입는 옷은 좋아하지만 가을을 좋아하진 않는다.
치열하게 성장하던 봄과 여름은 가을에 결과를 내지만
나는 가을에 결실이 없다는 사실만을 목도하니까.
대부분의 가을에 거둬들인 건 탁빛의 나였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적었다.
‘저 태양이 날마다 새롭고도 오래된 거와 같이
나의 사랑도 이미 말한 것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노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도 새롭다니.
내가 태양과 같은 사람이었다면
내 삶은 지루하지 않았을까?
끈덕지게 붙어있던 습함도 오늘은 다음 여름을 쫓아갔나 보다. 계절은 언제나 다음을 준비하는구나.
난 언제나 다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