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열정의 속도와 온도
힘이 넘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밤을 새우며, 앞뒤 재지 않고, 짧은 시간 내에 목표한 것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뿜어내는 힘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살아있다는 건 이런 건가?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면 나는 왜 이리도 열정적이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한 인간밖에 되지 못했나 스스로에게 핀잔을 준다.
나는 과연 살아있는 사람인가?
나는 엄청나게 활달한 성격이 아니다. 여행을 빼곤 몸으로 하는 일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열정은 땀 흘리고 몸으로 부딪히며 헥-헥- 대며 오른쪽 무릎 하나는 다쳐야 하는 농구선수 같은 느낌이다. 오직 림을 향한 발걸음만이 의미 있어 보인다. 그러니 나는 열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열정이 몸이 아닌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나는 열렬히 쓰는 것을 사랑하는 열정의 사람 아닐까.
나는 이제 땀 하나 흘리지 않는 느릿느릿한 나만의 열정을 인정해주려 한다.
나는 걸음이 느리다. 누구와 걸어도 뒤처지는 편이며 때론 거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걷는다. 그 덕에 신발의 뒷굽이 잘 닳는다. 그러나 나의 느린 걸음은 내 주변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한다.
양 손 가득 장을 본 엄마와 그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아들을 보면서 나는 사랑을 본다. 엄마는 양 손에 짐을 들고 있지만 아들을 향해 한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그 아들은 엄마의 한 손에 있던 짐을 들어준다. 그러면 모자의 나머지 한 손으로 서로의 손을 잡는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면 모를 사랑이 느린 걸음으로 지나치면 보인다. 나는 그 사랑을 천천히 옮겨 적어 시를 쓴다.
<사랑은 말이야>
사랑은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한 손을 들어 인사하는 거야
또 사랑은
다가와서 그 사람의 한 손에 들려있는 짐을
내 한 손으로 드는 거지
그리고 또 사랑은
각자의 빈 손으로 서로의 손을 잡는 거 아니겠어?
나는 글을 쓸 때 머리와 마음으로 쓰기도 하지만 눈으로 적기도 한다. 내가 본 일상을 그대로 베껴 적는다. 모든 일상은 원본이며 나는 종이에 대고 마치 판화처럼 잉크와 물감 대신 문자를 칠한다. 땀 한 방울 나지 않고 내 곁을 지나는 누구도 열기를 느낄 수 없지만 나는 차근차근 내 열정을 기록한다.
열정.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그래, 나는 열정으로 사는 게 맞다. 열중하는 마음으로 산다. 육체라는 껍데기가 있긴 하지만 마음으로 산다. 마음으로 삶을 구르고 세상을 본다. 어쩌면 글쓰기에 열정을 품기보다 삶에 열정을 품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글쓰기는 삶을 사랑하는 나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글을 내가 써내고 만들어낸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세상으로부터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선물상자를 나는 받고 있었다.
한순간에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은 아니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뜨뜻미지근한 불꽃을 내련다. 늘 활활 타오르는 열정의 꽃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열정의 꽃이 되련다. 활활 타오르던 모든 불꽃이 소멸되고 재만 남아 아무런 열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 여전히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작은 불꽃을 내고 있는 내가 되련다.
도화선에서 끝나는 불꽃이 아니라 심지의 끝까지 도달하련다.
열정은 한 순간에 타올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계속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