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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행운

by 주명



아쉽게도 네잎클로버를 스스로 발견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찾지 못해서 행운이 없었나?

샅샅이 뒤져서 찾을 인내심도 없고 네잎클로버 한 잎 찾는다고 해서 없던 행운이 내 손에 쥐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애초부터 찾을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얼굴이 빨갛게 익고 온몸이 끈적끈적한 여름, 발걸음은 자연스레 카페로 향한다. 부서져 떨어지는 볕의 조각을 피해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만큼 시원하고 달콤한 행복도 없다. 영수증을 건네받으며 또 다른 종이 하나를 점원이 건네준다. ‘축하합니다’라고 적혀있는 것 같은데? 커피 한 잔 무료쿠폰에 당첨됐다. 원래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지만, 이건 실망은 없고 선물이 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선물에 기분이 좋다. 언제 다시 와서 마시고 싶은 음료를 마실지 방금 받은 커피잔을 쥐고 마치 양다리를 걸친 여자처럼 다른 커피를 생각한다. 달그락달그락 얼음이 잔에 부딪힌다.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곳을 목적지로 설정했다.


‘해동용궁사’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까지 시간이 오래도록 걸린다.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오지도 않을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초조해하며 마음으로 꼬리를 흔든다. 정류장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람같이 관광버스 한 대가 내 눈 앞에 도착한다. 중년 남성 한 명이 내린다.


“해동용궁사! 천 원! 천 원!”


이 말도 안 되는 혜성같이 등장한 버스로 오랜 시간 시내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단 번에 빠르게 갈 수 있게 됐다. 이 웬 횡재냐. 앞좌석에 앉아 계신 흰색 리넨 페도라를 쓰신 할머니께 천 원을 낸다. 도대체 이 버스가 어디에서 온 건지, 무엇 때문에 운행하는 건지도 모른 채 당장 쉽게 갈 수 있는 편리함에 홀려 올라탔다. 할머니가 많이 탄 사찰로 가는 버스 안에서 성경을 읽는다.

사고 싶은 종류의 가방이 있다. 예쁜 가방은 비싸고, 저렴한 가방은 뭔가 끌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가방을 사야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책 한두 권을 넣어 다닐 수 있는 가방이 꼭 필요했다. 우연히 들어간 쇼핑 사이트에서 정가 15만 원이 넘는 가방을 배송비 포함 4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고 있다. 어떻게 이 가격에 팔 수 있냐고 물어보면 대답해 줄 사람은 없다. 고민할 여지없이 당장 결제한다. 적당한 크기에 무난한 색깔, 데일리 백으로 안성맞춤이다.

2년 전, 마지막 이십 대였다. 에세이 공모전에 혼자 끄적거리던 글을 응모한다.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가진 삶도 책 한 권을 내겠다는 생각도 안 했던 삶이다. 나의 글은 그저 푸념이었고 투정이었고 분노였다. 나와 인생이 끝없이 치고 박은 링이었다. 20대만 응모할 수 있는 기회였다. 혹시 모르니 응모했다. 되든 말든 뭐라도 해보자 버킷리스트와 가까워지게. 당선이 될까 안 될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뭐, 그만이다. 몇 달이 지나고 발표가 지연됐다. 기억에서 잊고 지내다가 금요일 퇴근길 버스에서 결과 발표 안내 문자 한 통에 잊었던 기억을 꺼낸다. 회사 메일로 응모한 터라 다시 사무실에 가지 않는 이상 주말을 지나고서야 알 수 있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메일을 확인한다.


‘축하합니다’.


당선이 됐다. 5302편의 작품을 뚫고 선정된 140여 편의 에세이 중 고작 두 페이지지만 나도 작가가 됐다. 나의 글은 모자라지만 나만이 쓸 수 있는, 세상에 없던 글이었다.

행운은 간절하게 찾지 않는 순간에 일상의 행복으로 내 삶에 문을 두드리고 걸어 들어온다. 들어오라는 허락을 하지도 않았는데 성큼성큼, 사뿐사뿐 들어온다. 내 삶에 일어나는 행복은 모두가 뜻밖의 행운이다.

고맙다. 나의 삶.
다른 건 몰라도 네가 내게 온 것만큼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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