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적는다
"또 늦었네 너. 조금 일찍 올 수는 없겠니? 아니 너는 안 오는 게 더 나은 일인지도 모르지."
후회는 항상 볼품없는 지각생의 모습을 하고 와서 나를 두드린다. 선택할 때마다 미래에 일어날 일 까지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후회로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삶을 살지 않을 텐데. 매 순간 최선을 다해도 후회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후회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선 눈 앞에 일어난 상황에 언제나 충실하고 또 유혹을 떨쳐버리는 게 그나마 높은 하늘 멍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고 한숨 쉬지 않는 방법 아닐까.
공부해야 하는 때라면 잠시 다른 흥미들은 제쳐두고 공부하고, 곁의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건네고, 아니 그것도 안 되면 그가 가진 온기를 빼앗지 않는 말을 하고,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 안에 숨어있던 용기를 다독여 꺼내서 성취의 기쁨을 맛보고 살을 빼고 싶다면 손에 있는 바닐라 라떼를 내던지고!
후회할 순간을 아예 없애 버리는 게, 그러니까 모든 선택을 가장 완벽하게 하는 게 짧은 세월 속에서 낭비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겠지만 우린 그럴 수가 없다.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하는 것은 물론이고 올바른 선택 앞에서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정직한 탐구자니까. 인간은 자신의 선택을 치켜세우면서도 남몰래 가장 모질게 들쑤시며 비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후회를 동력 삼아 삶으로 나가면 된다. 후회를 후회로만 놔두면 멈춰 버리거나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삶이 되지만 후회의 순간을 뛰어넘어 다시 같은 실수들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우리는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다. 후회에게 삶이란 배의 키를 넘겨줄 것인가, 놓쳐버린 키를 다시 한번 쥘 것인가는 항해자의 선택이겠지만.
조금 더 나를 가까이 들여다보고 나의 마음의 소리를 잘 듣지 않으려 했던 지난 시간에 후회가 들 때가 있다. 사실 나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항상 핑계를 방패 삼아 온전히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떤 변화를 두려워하기도 했고 내 변화로 인해 다른 누군가도 감수해야 할 불편함까지도 신경 쓰며 살았으니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으면 지금보다는 일찍 살아가는 기쁨을 알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지나간 시간에 억울하지도 무언가로 보상받고 싶지도 않다. 그때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 계속 무언가 어긋난 채로 균열을 지니고 뒤뚱거리며 살았으니 다시 나를 세울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 거겠지. 나는 후회하며 살았고 그래서 이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산다. 아니 열심히 살아도 후회할 테니 덜 후회하려고 산다.
문장 속의 나는 언제나 다짐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곳의 나와는 결이 다를 때가 있다. 문장 속의 나는 언제나 흠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진짜 나는 더 이상 내 이야기로 해결될 것 같지 않으면 무심해지고 심지어 화를 내며 내 몸 하나 움직이는 게 귀찮아지면 엄마의 부탁에 짜증을 내고 다짐과 함께 치솟는 열정의 온도는 3일도 안 가 식는다.
문장 속의 나처럼 살 수 있을까? 아니. 자신 없다. 나는 문장 속에 숨어서 진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잘 다듬어진 나만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문장의 바다에서 살지 않는다. 진짜 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현실에 있다. 후회와 새로운 건설은 문장 속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튀어나와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완벽하고 깨끗한 문장처럼 잘 정제된 나를 오늘 여기에서 볼 때가 있다. 글 속에 내가 되고자 하는 내가 있고 그곳의 내가 빠져나와 오늘을 걷는다. 나를 녹여 쓴 글에서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 꺼낸다. 그러면 희망이 생긴다. ‘문장 속과 문장 밖의 내가 서로 낯선 내가 아니구나’ 하면서.
문장이 나보다 먼저 산다. 그리고 그 문장을 닮기 위해 나는 또 산다. 후회하지 않는 진짜 삶을 위해 오늘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