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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목소리가 그렇댔지

누구나 너와 나 사이에 나를 두고 산다

by 주명



“너는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야”



‘아니,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내 한마디로 너를 불편하게 할 수 있어. 당장 떠나가게 할 수도 있어. 나를 미워하게 할 수도 있어. 내 목소리 때문에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평가한다면 평생 얼굴은 안 드러내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목소리만 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도 몰라.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내 목소리만 듣고 날 판단한다면 보여 줄게, 나는 전혀 믿을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란 걸.


아!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말한 게 아니었네.

그래, 난 목소리만 그럴 뿐이지.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야. 다행이다. 괜히 네가 던진 말에 나를 온갖 바르고, 예쁘고, 단정한 틀에 다 끼워 맞출 뻔했어. 멋진 목소리만 내려고 했어.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늘 말했지 어디에든 끼워 맞춰질 거라면 퍼즐로 태어나는 게 낫겠다고. 이리저리 굴러서 아무 곳에 끼워지지 않아도 돼. 그런데 그거 아니,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딘가에 끼워 맞춰지지 않으면 불안해.

나는 나를 가끔 마구 끌고 가.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저 구석 어딘가에 던져버리고 싶어, 안 보고 싶어. 나 같은 게 뭘 한다고. 똑똑한 척, 사랑스러운 척, 착한 척하는 걸 보면 도대체 이런 나는 어디서 튀어나온 건가 싶어. 분명 내 안에 있던 건 아닌 거 같아. 내 안에 있던 거라면 나 혼자 있을 때도 그래야 하잖아. 전혀 아니야.

나는 구석에 쳐 박힌 나에게 또 다가가서 쓰다듬어. 그리고 묻지.


‘왜 여기에 있니. 너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누가 거기 가 있으라고 했어? 어서 나와. 내 손을 잡아. 이리 와 안아줄게.’

나는 도대체 누구랑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글 쓰는 게 좋다고 하면서 쓰고 나면 그런 생각을 해.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지. 의미가 있는 건가.


사람들 앞에선 웃으면서 ‘네 좋죠, 오늘 입고 계신 옷 잘 어울리는데요, 와 너 그거 잘한다’ 말하면서 평소엔 혼자 생각해. ‘왜 저런 옷을 입고 다니는 거야 부담스러워, 너만 잘하니? 나도 그거 잘해, 난 다른 것도 잘해.’ 이러면서.


나는 목소리만 내면 네가 매일매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야. 하지만 진짜 나는 ‘뭐 저런 이상한 게 다 있어’하면서 곁에도 가고 싶지 않을 사람이지.

나는 언젠가 성공할 거라 믿어, 다만 지금이 아닐 뿐이지. 지금 길을 내고 있는 중이야. 아무도 못 만들어 낼. 길을 내다 말고 갑자기 멈춰. 길을 냈는데 아무 데도 도착 못하면 어쩌지. 분명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아무것도 못 보고 죽으면 어쩌지. 길을 그만 만들까. 아니야. 한번 사는 인생 그래도 죽을 때까지 한 길을 만들어야지. 나는 내 사이를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이야. 나는 검색해서 찾아낸 예쁜 카페로 걸어가다가도 지나가던 길에 그냥 크고 괜찮다 싶은 카페가 보이면 에잇! 거긴 머니까 여기 가자하는 사람이야.


너는 생각하겠지. ‘아니 얘는 뭐지?’

나는 신호등 같은 사람이야. 빨간불, 초록불, 주황불. 진득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사람이지. 이런 내가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고? 너의 짐을 짊어줄 것 같다고? 같이 걸어갈 수 있을 거 같다고? 단단한 사람이라고? 아무렇게나 만지면 아무렇게나 될 찰흙 같은데? 아! 그냥 목소리가 그런 느낌이랬지.’


라고 말 못 한다.



“아, 내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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