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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이 피아노를 치면서 드는 생각을 담아

by 이준봉


저는 한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중학교 3학년 때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음악이, 그것도 피아노 음악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아침 저녁 그리고 밤마다 피아노 음악을 듣고,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피아노를 또 쳤습니다. 정말 예고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서울로 개인레슨을 받으러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피아니스트가 될 것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중학교 3학년 때 제게 어떠한 결정적인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모태신앙이었던 저는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때도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요. 초등학생 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갔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어머니와 함께 기도회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중학생 때에는 성경을 매일 꾸준히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점차 알게 되었죠. 그리 지내던 중에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약 한 달을 가까이 새벽부터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면서, 또 성경을 읽으면서 제 꿈이 바뀌었습니다. 바로 ‘목회자’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 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아직도 목회자를 꿈꾸고 있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목회자가 될 것을 계획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저의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진로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할 기회가 있으면 하겠습니다. 아무튼 피아노는 제 인생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꿈이었으며,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마치 애증(愛憎)의 관계에 있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사람이 아닌 사물 중에서는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대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ad-1238450_1920.jpg 그때는 한 가지 길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꿈을 접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한 다음 날부터 제가 한 것은 피아노 학원을 끊는 것이었습니다. 피아노를 더 이상 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한 가지 일에 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삶이 가장 멋진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그 이후로 대학교 4학년까지 약 7년간은 피아노에 아예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를 쳤더라도 그만큼 피아노에서 손을 놓으니까, 칠 줄 아는 게 모두 사라지더군요. 일부러 피아노를 치는 자리를 멀리하였으니, 저는 이제 평생 피아노와 관련이 없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또, 그렇게 결심하였구요.


그런데 제가 피아노를 다시 치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당시에 저는 ‘교회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신학생 4학년이었지만, 한 교회의 어린이부와 청소년부를 담당하여 주말에 출근하는 파트전도사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사역 업무를 하는 라이프스타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즉, 저에게는 어떠한 휴일이나 휴식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만한 창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녹초가 되니까 매일 잠에 곯아떨어지더군요. 지친 몸과 마음의 상태가 계속되니까 이대로 계속 살아가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장 힐링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찾아보다가 저는 피아노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2의 피아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피아노를 다시 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후에 가장 먼저 제가 한 일은 살고 있던 주변에 위치한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는 일이었습니다. 한때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한때는 피아노를 다시는 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제가 이제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입니다. 그렇게 저는 대학교와 약 15분 거리에 떨어진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고 매일 피아노를 연습하러 다녔습니다. 평일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피아노를 치러 학원에 갔습니다. 물론 바쁜 라이프스타일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편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마음껏 치니까 힘들었던 기억들도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morning-1503340_1920.jpg 나에게 피아노란 "휴식"이다


약 3~4달여간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4학년 1학기를 마친 저는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군대에서는 물론 피아노를 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대의 싸지방(군대의 PC방 같은 곳입니다)에서 저는 하루 일과를 하면서 받았던 피로와 힘들었던 순간을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해소하였습니다. 피아노를 직접 칠 수는 없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와 함께 자라왔던 저에게 피아노는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요. 돌이켜보면 나쁜 쪽으로 영향을 끼친 적은 거의 없었던 듯싶습니다. 오히려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저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 일종의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시라도 바삐 제가 속한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까닭입니다. 그만큼 저는 인생에 있어서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피아노곡을 듣는 게 저의 장래에 방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끊임없이 발전하게 해줄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쉼이 없는 열심은 언젠가 방전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억제하려고 스스로 옥죄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요. 그 이후로부터는 심심할 때마다 클래식 피아노 음악을 듣습니다. 요즘에는 집에 있기 때문에 집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합니다. 졸릴 때나 따분할 때 피아노를 치면 새로운 활력과 생기를 얻습니다. 그 어떤 비타민 드링크나 마사지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는 다시 피아노와 화해하였습니다. 또 다시 피아노는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을 다시 살 수 있음이 참 감사한 요즘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와 피아노의 이야기를 글로 엮어내 보려 합니다. 그러한 여정이 기대됩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이제 그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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