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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초로 사랑했던 곡

무엇이 소년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는가

by 이준봉

이번에는 제가 피아노를 배우면서 처음으로 가장 사랑했던 곡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피아노를 향한 저의 첫사랑과도 같다고 할 수가 있겠네요. 그때가 아마 유치원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오래전에 새겨졌던 기억이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통상 어렸을 적에 피아노를 배워보신 분이라면 으레히 한 권쯤은 가지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피아노 소곡집이죠. 초록색 표지와 함께 무성한 나무가 그려진 책을 떠올리시는 분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책 안에 제가 무척이나 감명 깊게 들었던 곡이 있습니다. 그 피아노곡의 이름은 바로 ‘워털루 전쟁 Battle of Waterloo’입니다.

이런 책 한 권쯤은 가지고 계시죠..?^^;


앤더슨(G. Anderson)이 작곡한 이 피아노곡은 실제로 발발한 워털루 전쟁을 토대로 하여 느낌을 표현한 곡입니다. 워털루 전쟁은 1815년 6월 18일, 오늘날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 지역에서 벌어졌습니다. 프랑스 제국의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와 그에 대항하는 대영제국, 프로이센 왕국, 네덜란드 연합국 등이 결성한 대프랑스 동맹군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랑스군이 우세한 것 같았으나, 결국에는 영국과 프로이센의 연합 공세로 프랑스는 처참하게 패배하고 맙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나폴레옹은 대서양의 외딴 섬인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으며, 나폴레옹의 통치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약 다섯 페이지 정도로 구성되어있는 워털루 전쟁이라는 피아노곡은 어렸을 때의 제겐 쉽지 않은 곡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곡을 연주하지 못하고 어머니께서 직접 연주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처음 접하였습니다. 이 곡이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우선 전쟁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만든 곡이었기 때문입니다. 악보를 보면 특정한 마디마다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전선에의 전진’, ‘대포’, ‘전투’, ‘영국 기병이 프랑스군을 공격하기 위한 전진’, ‘프러시아의 전진’, ‘대 포격’, ‘프랑스군의 후퇴’ 등으로 말입니다. 마치 하나의 악보가 거대한 전쟁 서사로 이루어져 있어서, 어린 소년이었던 저는 이 곡이 그토록 흥미로웠나 봅니다.


William Sadler II, <The Battle of Waterloo>


마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전쟁 설명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이 곡은 전체적으로 실제 전쟁 느낌을 잘 살려내기도 하였습니다. 맨 처음 부분은 마치 전쟁이 치러지기 직전에 군대들이 행진하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대포 소리로 전쟁이 개시되고, 양측의 군대는 빠른 속도로 교전을 치릅니다. 프랑스군, 영국군, 프로이센군의 전진과 후퇴가 반복되어 등장하는 부분도 현실감 있는 음정으로 전개됩니다. 포격이 이루어질 때는 무겁고 혼란스러운 음이 반복되며, 후퇴 시에는 어딘가로 신속하게 도망하는 듯한 미끄러지는 음이 들립니다. 마치 승리를 상징하는 나팔소리는 힘차고 안도감을 주며, 환희를 알리는 곡의 부분은 전쟁이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제가 인상 깊게 들었던 구간은 곡의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거기에는 ‘참혹함에 대한 슬픔’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Adagio(느리게)로 진행되는 이 부분은 정말 프랑스 군대와 나폴레옹의 안타까움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과 같이 선율이 흘러갑니다. 당시에 저는 어머니께서 치시는 이 곡을 들으면서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왜냐하면 곡조가 너무나도 슬펐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군의 패배와 전멸을 상상하며 곡을 들으니 눈물이 나더군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볼 수 없게 고개를 돌리고 울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피아노곡을 들으며 슬퍼서 운 적은 딱 두 번이 기억나는데, 그 중에 한 곡이 바로 워털루 전쟁이었습니다.


Robert Alexander Hillingford, <Wellington at Waterloo>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저는 워털루 전쟁을 다시 연주해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손대기 어려웠던 이 곡이 이제는 조금만 쳐도 익숙해질 만큼 쉽더군요. 각각의 마디를 치면서 저는 어렸을 적의 기억을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처럼 어떤 부분이 슬퍼서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제 저에게는 유년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만큼의 천진난만함이나 순수함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그때보다 피아노를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피아노가 선사하는 음악에는 한 곡 한 곡마다 연습하고 연주했던 당시의 상황과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그 어떤 악기가 들려주는 곡조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기억과 유년 시절이 담긴 곡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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