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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or보다는 minor가 좋아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by 이준봉

어제는 글을 쓰면서 제가 연습하고 있는 곡들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잠시 생각해보니까 제가 요즘에 연습하는 곡들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모든 곡의 조성이 바로 ‘단조(Minor scale)’였다는 점입니다. 저는 분명히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고 가장 사랑하는 곡들만을 모았는데 말이죠. 써놓고 보니까 하나같이 단조인 곡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좀더 떠올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즐겨 들어왔고, 앞으로 꼭 연주해보려는 곡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역시나, 다음과 같은 곡들이 있더군요.


- 모차르트 소나타 8번 (W. A. Mozart, Sonata No. 8 in A minor, K. 310)

- 슈베르트 즉흥곡 1번 (F. Schubert, Impromptu No. 1 in C minor, Op 90, D 899)

- 차이코프스키 사계 6월 (P. I. Tchaikovsky, The Season - June: Barcarolle in G minor, Op. 37a)

- 베토벤 소나타 23번 (L. V. Beethoven, Sonata No. 23 in F minor, Op. 57)

- 쇼팽 연습곡 10-4번 (F. Chopin, Étude No. 4 in C-sharp minor, Op. 10)

- 리스트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 3번 (F. Liszt, Grandes études de Paganini No. 3 in G-sharp minor, S. 141)


D minor scale


물론 좋아하는 레퍼토리를 떠올리면서 몇 곡은 장조(major)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러한 곡들도 아주 밝은 음색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몽환적이면서 고요하고 차가운 느낌을 전달하는 곡들이었지요. 요지는 제가 선호하는 피아노곡이 대부분 단조로 이루어진 곡이라는 건데요. 왜 유독 단조 음악에 이끌리는지 잠시 고민해보았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뭔가 알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피아노와 주로 ‘힘든 순간’에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현재인 오늘날까지 말이죠. 간략하게 저와 피아노가 그동안 얽혔던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순간은 피아노를 거의 처음 배우는 어렸을 적입니다. 유년 시절에 저는 피아노를 자발적으로 쳤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피아노 학원에 데려가시거나, 아니면 집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피아노를 쳤습니다. 제 딴에는 나름 힘든 순간들이었지요. 피아노 학원에 가기가 싫다고 징징거리기도 하고, 특히나 방학에는 얼마나 학원에 가는 게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방학 때까지 편안한 집에서 나와 어딘가로 가야 하는 것이 제게는 고통이었죠.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집에서 컴퓨터나 TV, 닌텐도를 가지고 놀 바엔 차라리 피아노나 30분 더 치는 게 잘한 것이었다 싶지만, 그건 이제니까 할 수 있는 말이겠지요.


겨울방학 때 피아노 학원에 가는 건.. 고문에 가까웠습니다 ^^;


한편, 피아노를 배우러 학원에 가는 것뿐만 힘든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시절 전부를 피아노와 함께 보냈는데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좋았던 때도 있었지만, 힘들었던 추억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부끄럽게도 대부분 제가 자초한 일들이었는데요. 일단 저는 동생과 엄청 많이 싸웠습니다. 지금도 아예 안 싸우는 건 아니지만, 그때는 말도 못 했지요. 싸우면서 동생을 때린 적도 많아서 부모님께 호되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별로 좋은 기억들은 아니었지요. 학교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어요. 워낙 다혈질의 성격이었던 탓인지, 말싸움뿐만 아니라 몸으로 치고 박고 하는 싸움도 자주 벌였습니다. 욕설은 기본이었고요. 언제는 제가 속한 학급의 남학생들과 대부분 한 번 정도씩 싸워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왕따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과거를 얘기하면 다들 믿지 않더군요.


저의 성격과 행동이 극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제가 신앙을 갖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때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목회자가 되고자 결심한 순간이기도 했지요. 주위 사람들이나 친구들도 놀라워했을 만큼 많이 달라졌습니다. 나중이 되어서야 저도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신기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사람이 그리 쉽게 변화되지는 않는데, 어떻게 보면 참 감사한 일이지요. 제가 현재 기독교 신학을 전공하고 있는 것도 그때의 경험이 한몫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피아노를 치던 시기는 동생이나 친구들, 부모님과 한참 싸우던 때였습니다. 그야말로 저에게는 암울한 시간이었죠.


여기는 실제로 제가 사역했던 교회입니다. 하하;


목회자가 되기로 다짐하면서는 피아노를 아예 끊었습니다. 그렇게 약 7년간 피아노에는 손도 대지 않았죠. 근데 재미있는 사실은 제가 피아노를 다시 손에 잡게 된 계기가 바로 ‘목회자가 되면서부터’였다는 점입니다. 신학생 2학년 때, 저는 수원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청소년 부서를 담당하는 파트 전도사로 사역(교회 업무를 하는 것)했습니다. 주중에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주말에는 교회에 가서 사역을 하였죠. 매주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하고, 찬양 인도나 교회 행정 일을 처리하며, 방학이 되면 수련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 등을 했습니다. 목회 사역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신자의 입장’에 있었지만, ‘목회자의 입장’에 서니까 해야 하고 준비할 게 너무 많게 느껴졌습니다. 학생들을 상대하기도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고요.


학업과 사역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저는,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지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게 바로 피아노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대학교 근처의 피아노 학원으로 찾아갔죠. 한 달 치 수업료를 납부하고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힘들었던 순간에 치는 만큼, 피아노는 제게 위로와 편안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유일한 취미이자 마음 놓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요.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피아노 앞에 앉는 게 아니라, 에너지가 다 빠지고 마음이 울적할 때에 피아노를 치곤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어떠한 분위기의 곡을 연주하고 싶어했는지는 다소 자명한 듯싶네요.


휴가 당시 예술의 전당에서 찍은 그랜드피아노


피아노를 앞으로 다시 꾸준히 쳐야겠다고 결정적으로 생각한 건 군대에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한때 군 복무를 하면서 저는 휴가를 나와도, 주말이 되어도, 일과 후 쉬는 시간에도,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머리가 아파오고, 무엇 하나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았죠. 암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기분을 느끼던 와중에 하루는 휴가를 나와서 피아노 독주회에 찾아갔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제 돈을 주고 티켓을 끊어 예술의 전당에 간 것이죠.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독주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몰입하여 피아노 선율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연주회가 끝나고 행사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짐했습니다. 다시 피아노를 배워보겠노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피아노를 집에서 간간이 연습하고 있으며, 지금 이런 글도 쓰고 있습니다.


가끔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하고 싶은 일이 모두 다 잘될 때?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물론 그때도 행복할 것입니다.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때뿐만 행복한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좋았던 순간보다는 힘들었던 순간을 더 잘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힘든 시기 와중에 겪었던 잠깐의 행복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그럴 때 느낀 행복은 시간이 지나면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으로 남습니다. 제 기억을 차지하는 행복은 즐거웠던 시간 중에 있었던 행복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순간 가운데에서 마주한 행복이 더 많은 듯싶습니다. 지난 일련의 기억들은 저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겨주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Major보다는 minor가 더 좋겠다고 말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건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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