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우연은 없다. 우연을 행운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곧 태풍도 따라올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장마나 태풍은 반갑지 않은 존재다. 실제로 피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작은 과학 상식 하나가 내 생각을 바꾸었다.
자연이 주는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이유와 순환이 있다는 사실말이다.
장마는 지하수와 저수지 수위를 높이고, 가뭄을 막는다. 농업에 필수적인 수자원을 공급해 우리가 매일 끼니를 거르지 않고 흰쌀밥과 잡곡, 그리고 신선한 과일을 먹게 해준다.
태풍 역시 대기 오염을 씻어내고, 바닷물의 순환을 도와 해양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그 덕에 바닷속 깊은 곳에 머물던 자양분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많은 생물들이 그 자원을 기다린다. 결국 오늘도 우리의 밥상에는 풍요로운 수산물이 오른다.
자연의 불청객처럼 보이던 장마와 태풍은, 사실 생태계에 꼭 필요한 선물이다.
인생도 그와 닮았다.
뜻밖의 사건, 불편한 변화, 잠시 멈춤 같은 일들이
때로는 인생의 순환과 균형을 이루는 꼭 필요한 장치가 된다.
얼마 전, 딸이 다리 수술을 받았다.
회복과 관찰을 위해 2주 넘게 입원했고, 퇴사 예정이었던 시점을 한 달 앞당기게 됐다.
원래는 1년을 채우고 퇴사한 뒤 마지막 4학년을 다니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긴 공백이 회사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스스로 먼저 부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덕분에 딸은 학업과 체력 관리, 필요한 것들을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친구들과의 밴드 활동도 조금 더 이어갈 수 있게 됐고, 가족 여행도 한결 여유롭게 계획할 수 있게 됐다. 맛집을 찾는 걱정도 덜어졌다.
입원과 조기 퇴사. 이 일들은 분명 계획에 없었지만, 그 덕분에 얻게 된 여백은 오히려 ‘선물’처럼 느껴졌다.
오래전 일이 하나 떠오른다.
대학교 1학년, 테니스 교양 수업 마지막 시험 날. 한 코트에 두 팀이 들어가 시합을 하던 중,
공을 줍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2미터 앞 친구가 세게 친 공이 내 오른쪽 눈을 강타했다.
안경은 산산조각 났고, 세브란스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이틀간 절대 안정을 해야 했고, 옆으로도 눕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친구는 내 절친이 되었고, 매일 병문안을 온 친구들 덕분에 3일 입원 동안 초콜릿 선물만으로 체중이 2kg 늘었다. 씹을 수 없는 나에게 친구들이 하나같이 초콜릿을 사다 주었기 때문이다. 아픔이었지만, 관계와 정이 더해진 시간이기도 했다.
사고와 변수, 비예정의 사건이 반드시 ‘불운’일 필요는 없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은 선물로 바뀔 수 있다. 모든 일은 배움이 될 수 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선물로 가득한 곳이 된다.
이제 장마가 시작됐다.
그래서 감사하다.
태풍도 어서 오라.
그대의 역할에 감사하며, 기꺼이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