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저 사직서 냈습니다

정직이 만들어낸 두 번의 반전

by 전준수

“형, 저 사직서 냈습니다.”

거의 30년 전, 내 휴대폰에 울린 한 통의 연락.
대기업 재무팀 2년차였던 K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이중장부라는 게 존재했다. K에게도 그걸 하라는 요청이 왔다. 하지만 그는 “못 한다”고 했다. 돌아온 건 싸늘한 시선과 압박이었다.
“너만 의인이냐?”
“우리는 다 해왔는데, 너는 뭐가 다르냐?”
그 분위기 속에서 그는 결국 사직서를 냈다.


K는 나와 대학 시절 같은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4년 후배였다. 그는 그릇이 크고 책임감 있는 인물이었기에, 만약 그가 퇴사한다면 우리 회사로 영입하자고 이미 제안을 해둔 상태였다. 다만, 그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열흘쯤 지나 다시 연락이 왔다.

“형, 저 그냥 다니기로 했습니다.”
사표 소식을 들은 다른 파트의 부사장이 그를 불렀다. 그리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친구, 믿을 만하다.”


시간이 흘러 그는 선배가 창업한 회사로 CFO로 옮겼다. 하지만 회사가 위기에 빠지면서 창업자조차 회사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에도 그는 회사를 붙잡았다. 남은 직원들 때문이었다. 3~4년의 혹독한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회사는 살아났고, 수백억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엔 상당한 규모의 회사를 인수했고, 지금은 수천억 자산가가 되었다.


나는 종종 그때의 선택을 떠올린다.
입사 2년차, 압박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려 했던 K.
창업자도 떠난 회사를 책임지고 붙들었던 K.
그 진정성이 결국 선물처럼 돌아온 게 아닐까?


세상은 변했지만, 유사한 순간은 언제든 우리 앞에 온다.

정직은 단기적으로 불이익일 수 있지만, 결국 가장 강력한 레퍼런스가 된다.

어려울 때 회사와 가치를 지킨 사람에게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티핑 포인트는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다. 그때의 선택이 인생의 궤적을 바꾼다.


물론 운, 시기, 만남도 중요하다. 때로는 사표를 낼 수밖에 없는 순간도 온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그날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었고, 내일을 더 열심히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어제는 K의 계열사 대표를 만났다. 몇 년 전 인수한 기업이다. 역량이 있는 그 대표는 거의 전권을 위임받아 회사를 새롭게 바꾸고 있었다. 앞으로 이어질 그와 및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아울러 K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특히 이 땅의 청년들에게 위로와 도전이 되기를 기대한다.


당신은 K와 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어떤 길을 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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