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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준수 Apr 06. 2024

배울만한 때만 가르친다

자녀교육 – 할 수 있는 것 다 해본다. 결과는 우리 손에 있지않다.

1. 해외 법인장 발령 받아 3년간 상해와 밀라노에서 살았다. 중간에 코로나가 왔다. 딸 아이는 중학교 졸업 직 후 중국으로 왔는데 운 좋게도 인터내셔널 스쿨에 입학했다. 운이라고 말한 것은 아이가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다닌 일도 거의 없고, 중3때는 배드민턴 선수도 했기 때문이다. 


2. 3년이 지나 IB시험(일종의 수능)을 치렀다. 난이도가 높고, 주관식도 많다. 한국대학 입학이 어려웠기에 홍콩 소재 대학에만 지원했다. 고교 3년을 영어로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고비도 있었다) 


3. IB 시험 결과와 합격 발표를 앞두고 아이는 귀국했다. 합격 발표 1시간전, 나는 코로나를 뚫고 케이크를 사다가 아이 몰래 문 밖에 두었다. 그런데 원하는 두 대학은 탈락, 나머지 한 대학에만 합격했다. 아쉽게도 1순위 두 대학에 1점이 모자랐다. 밤 12시, ‘합격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내는 이태리 생활 정리 중) 


4. 원하는 대학에 도전할 방법 두가지를 시도했다. 

하나는, 재 채점 제도였다. 주관식이 많기에 과목당 일정금액을 내면 다시 채점한다. 단, 점수가 오를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 결과는? 변화가 없었다. 한 과목은 오르고 다른 과목은 내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어필(Appeal)레터’였다. 시도하면 어떨지 아이에게 물으니 해보겠다고 했다. 어차피 잃을 것은 없으니까……. 아니, 그보다는 “네가 어려운 환경 통과한 것을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정상 참작이 될지 몰라”는 바램이었다. 영어 준비없이 고교 3년을, 해외에서 졸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 등을 어필했다.    


5. 어필 레터의 효과는 일부 있었다. 

딸 아이가 쓴 어필 레터를 보니 나도 이해가 되었고 괜찮아 보였다. 그래도 영어 표현을 누군가 봐주면 좋을 것 같아 절친에게 보냈다. 그 친구는 자기보다는 아들이 더 잘한다고 살펴보게 했다. 잘 정리했다며 두 세 단어를 수정하면 어떨지 회신이 왔다. (아이는 자기 표현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3년 만에 그렇게 한 아이가 대견했다. 몇 일 후 한 대학에서 합격 메일을 보내왔다. (당시 에세이는 아주 잘 썼던 것 같다. 내게도 보여주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보니 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6. 그런데 웬일, 합격 통지를 해왔던 대학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교수들이 다시 의논했고 최종 불합격이라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했지만,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등록금 고지서까지 보내왔었는데 말이다. 아시아 최상위권 대학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었다. 


할 수 없이 처음에 합격한 대학에 가기로 했다. 아이는 신입생 동기 모임에도 다녀왔다. 선배들도 만났는데 정겹고 괜찮다고 했다. 아쉽지만 합격했으니 참 다행이었다.  


7. 입학 몇 일전, 딸 친구를 통해 한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에 생물 한 문제 채점이 잘 못되어 다시 점수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IB사이트에 접속한 순간……. 환호성을 질렀다. 1점이 오른 것이다. 마침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8. 사실, 위의 모든 과정에서 내가 원하던 것이 있었다. 

바라는 대학 합격도 중요하나, 인생의 중요한 여정에서 다시는 배울 수 없는 교훈을 얻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시도하고, 다른 사람의 조언도 구하고 앞서간 선배들을 통해 배우는 것말이다. 그리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 또한 알게 하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는 나와 같은 마음이었고, 주도적으로 임했다. 


9. 돌아보면, 원하는 대학 합격은 정말 기적이다. (물론 여전히 인생의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으로, 진정한 기쁨은 최선의 시도와 노력 후에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을 함께 깨달은 것이다. 우리 실력이 아니라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도움말이다.   


10. 자녀 교육 때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억지로 가르치지 않고 사건이나 이벤트가 있을 때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가르칠 수 없다. 자녀는 특히 Not Taught, But Caught다.) 


IB시험과 대학입학이라는 한번 밖에 없는 기회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하다. 상대가 배울만한 때만 가르칠 수 있는 것 같다. 아니, 이때도 같이 배워가는 것이다. 


적용질문

1. 내가 인생에서 교훈을 얻는 방식은 무엇인가? (자녀 있는 경우) 자녀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교훈하나?

2.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성공했거나, 혹 중간에 멈춰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던 순간을 떠 올려보라. 이를 통한 교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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