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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04. 2021

서운함을 날려준 남편의 김치찌개


겨울 왕국이 되어 있었다.


퇴원하던 날 세상은 바뀌어 있었다.응급실로 가던 날, 조금 쌀쌀했지만 영상의 기온이어서 춥지는 않았고 늘 그러하듯 밤인지 낮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회색빛 가득한 독일의 전형적인 날씨였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맡은 바깥공기는 찬기운에 숨 쉬다 놀랠 만큼 추운 영하 19도였고, 온통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천지가 새하얗게 되어 있었다. 마치 전에 보았던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처럼 옷장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간 곳에서 겨울 왕국을 만나듯 딴 세상으로 온 것 같은 기시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물론 병원에 있을 때 며칠째 내린 폭설로 교통이 마비가 될 지경이라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전해 주었고..

종종 창밖으로 구조 헬기가 이착륙 할 때면 새하얀 눈 밀가루 봉투에서 밀가루 쏟아지듯 하는 진풍경을 구경 하기도 했다. 그러나 창밖에서 떨어져 나리는 그 굻은 덩어리 들 보며 그저 눈이 많이 왔나 보다 했지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입원했던 입원실 윗쪽으로 즉 제머리위에 헬기착륙장이 있었어요)


실제로 만난 밖의 모습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독일에서 30년 가까이 살며 간혹 눈이 많던 겨울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인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제때 치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눈이 한꺼번에 내렸던 모양이다.

 


남편이 병원 앞쪽으로 간신히 주차한 차를 타고 엉금엉금 기듯이 집으로 가는 길..

큰길은 그나마 제설 차량들이 열심히 오간 덕분에 그렇게 라도 지나 다닐 수는 있었지만 철로가 보이지 않는 전찻 길도 사람들이 다녀야 하는 인도 쪽도 여기가 진짜 독일인가 싶을 만큼 눈이 높게 쌓여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사람들이 그 눈 쌓인 길 위로 스키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그모습에 피식 하고 웃음이 터졌다.떡본김에 제사 드린다고..눈 많이 왔다고 스키 꺼내들고 길바닥에서 스키 탈 생각을 한 기발한 사람들도 웃기고 눈이 하도 많이 와서 쌓이다 보니 걸어다니는 길에서 스키를 타는 것이 가능하구나 하는 사실이 신기 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겨울인데 스키장 못 간 게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길바닥에서 저러나 싶어 웃펐다.


찻길을 돌아 들어온 동네의 상황도 눈 속에 들어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집 앞 큰길 은 양쪽으로 굴을 뚫듯 하얀 눈이 한쪽으로 벽처럼 쌓여 굳어 있었고 그사이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이 나 있었다.

남편은 그 길을 만드느라 2시간 동안 삽질을 했노라 그동안의 고생담?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밖에서도 보이는 우리 집 정원 계단 위가 장독대처럼 가득 쌓인 하얀 눈 때문에 정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에 누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어느 나라에서 밖으로 나갈 때면 눈을 굴처럼 파서 길을 만들어야 했다던 그 상황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눈내리기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집 현관문을 여니...

익숙한 냄새들과 소리들이 나를 반겼다.

구수한 밥 냄새, 진한 김치찌개 냄새, 타닥타닥 벽난로에 나무 타 들어가는 소리,

며칠 만에 보았다고 현관 앞에서 꼬리가 빠지게 흔들어 대며 아우 하는 소리로 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가움을 표현하는 강아지 나리 소리까지....

그 푸근함에 잔잔한 미소가 그려졌다.


나리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신발은 소독약 뿌려 비닐에 잘 싸서 안 쓰는 신발장 구석에 넣어 두고 손가방은 소독약 뿌려 신발장 위에 얹어 두고 2층 욕실로 직행했다.

마음은..

이제는 훌쩍 커서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하는 사춘기 소년 막내의 목을 끌어안고 그 말캉한 볼에 비비고 싶었지만.. 다녀온 곳이 병동 그것도 코로나 병동이니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가족들을 지키는 것이 먼저였다.

그 안에서 사용한 세면도구를 비롯한 웬만한 것은 다 버리고 왔지만 올 때 입고 신발 신고 밖으로 나올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남편의 얼큰 시원 김치찌개


씻고 온 사이 남편은 어느새 점심 상을 차려 주었다.

그 며칠 전 위로가 필요했던 마눌 의 전화 통화에서 팩트만 조목조목 따져 이야기하는 바람에 서운해하던 마눌이 마음에 걸렸던지..(독일 코로나 병동 간호사쌤의 놀라운 반전)

남편의 점심 밥상은 평소 내가 좋아하던 고소한 보라색 현미찹쌀밥에 바싹한 김말이 튀김과 새콤달콤한 발사믹 얹은 야채샐러드 오늘의 스페셜 메뉴 얼큰 시원 김치찌개였다.


보기만 해도 침이 절로 고이는 밥상을 흐뭇한 눈으로 보는 마누라의 모습에 남편은 의기양양해서는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말했다.

"네 생각해서 두부도 완전 많이 넣었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세모꼴이 되어서는 "내가 감빵에 갔다 왔냐? 웬 두부가 이렇게 많대?"

라고 했다.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입 떠먹은 얼큰하고 시원한 김치찌개 맛에 슬슬 올라가는 입고리는 숨길수 없었다.


남편이 정성 스레 만들어준 김치찌개는 돼지고기가 아닌 캔참치로 맛을 내었고 두부도 굵직굵직 호박과 파 등의 야채들도 숭덩숭덩 먹음직스럽게 들어가 있었다.

 남편의 김치찌개는 먹을수록 콧잔등에 작은 땀방울이 송송 맺히도록 얼큰하고 시원했다.

"어머, 어떻게 이리 시원하게 끓였대?"라는 내 물음에 남편은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쭉 하고 펴고는  "이 안에 콩나물 있다!"라며 때 지난 남의 대사를 리메이크했다.


나는 남편의 너스레에 웃음을 터뜨리며 "근데 이 겨울에 콩나물이 들어왔어?" 하고 다시 물었다.

한국에서는 집 앞 슈퍼만 가도 살 수 있는 콩나물을 독일에서는 아무 때나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어쩌다 귀한 콩나물을 아시아 식품점에서 만나게 되는 날이면 그날 저녁상은 마음부터 풍성해 지고는 한다. 그러나 한겨울에 콩나물을 만나게 되는 경우는 드문데...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는 으쓱해하고 있는 남편에게 "혹시, 이거 콩나물 통조림?"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허를 찔린 사람처럼 눈이 동그래 져서는 "어 어떻게 알았어?" 했다.

나는 "그렇지? 역시 내 입맛은 정확하다니까" 라며 잘난 척을 했지만 통조림에 들어간 콩나물이 이렇게 시원한 맛을 낼 줄은 몰랐다.

그 김치찌개의 얼큰하고 시원함은 남편에게 서운 했던 마음을 모두 날려 버리고 잊어줄 만큼 맛났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 누워...

식구들과 나란히 앉아 이렇게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로 낄낄거리고 소파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이 평범한 일상을 얼마나 그리웠던가?

금방 병원 다녀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응급실에 갔다 일주일이 되어 돌아온 엄마가 그리웠던지... 이제는 두 팔 벌려 안아도 품 안에서 넘쳐 나는 막내가 "엄마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라는 말에 "음 되게!"라는 말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

또,베를린에 있던 딸내미는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 오려 했으나 눈 때문에 기차가 끊겨 며칠 늦게 도착 했다.집으로 데려다 줄 기차가 운행 되기를 기다리던 그시간 동안 자기 마음을 담아 손수 만든 핑크빛 하트 뿅뿅 박힌 베리 롤케이크를 핑크 통에 담아 들고...

멀리 있어 올 수 없던 큰아들은 가족들과 함께 한 영상통화로 밥상위에 차려진 음식을 눈으로 음미 하며 곁에 있는 듯했다.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다.그건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보약과도 같다.

밥을 먹으며 없던 힘이 새로이 샘솟는 것 같은 느낌이...

겨우내 잔뜩 움추려 있던 잔디밭 사이로 골고루 스며 드는 햇살 처럼 몸과 마음 구석구석 으로 퍼져갔다.

아...그래 이거지....하며  끄덕여 지는 머릿 속으로 이제 더 건강해져서 가족과 함께 하는 이 변함없는 평범한 일상오래오래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파고 들었다.

맛난 음식 배불리 나누어 먹고 노골노골 나른해진 오후 이쪽 저쪽 으로 기대 오는 가족들과 뭉클 하게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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