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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Dec 06. 2020

눈 내리는 날 웃음 나게 한 부대찌개

소시지가 고장 났어요.

독일에서 만난 26번째 첫눈

아침에 일어나니 하얗게 눈이 내려있었다. 베란다 위에도 이웃집 지붕 위에도...

왠지 선물을 받은 아이의 마음이 되어 하얀 눈이 온다고요.. 하얀 첫눈이 온다고요....라고 부르던 옛? 가요가 입안을 맴돈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도 아니고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내리고 있어 밤사이 내렸던 눈들이 빙수 녹아내리듯 사르륵사르륵 흔적 없이 사라져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동네 올해 내린 첫눈이다. 12월의 첫 주말에 만나는 첫눈... 그리고 독일에서 26번째로 만나는 첫눈..


코로나로 인해 길고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새삼 빠르게 흘러가고 있음이 확인되는 것 같다.

햇수로 26년 만으로 꼭꼭 눌러 담아 25년 독일에서 살고 있는 그 시간들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를 깃점으로 나는 내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그리고 그 나머지 절반을 독일에서 살고 있다.

양념 통닭도 아니건만 올해로 딱 반반이 된 셈이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25년으로 독일을 다 알 수 없었듯 한국에서의 25년의 시간도 이제는 오래된 사진 앨범처럼 애써 기억해도 희미해져 버린 것들이 많다.

그럼에 예전에 먹었던 음식의 맛만큼은 또렷이 남아 있다. 마치 어제 먹었던 것처럼 선명하게... 

그래서 가끔은 우리의 삶이 판타지 영화에서처럼 한국도 독일도 아닌 우리만의 시간... 추억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부대찌개가 먹고 싶었다.

이렇게 독일에서 첫눈이 고 질척하게 눈이 녹아내리던 어느 겨울날 나는 요리하다가 만 소시지를 곱게 싸서 들고 동네 마트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때가 내가 독일에 온 지 첫해 겨울이었다.

그때의 나는 요리도 서툴렀고 독일어는 들리지도 않고 입이 떨어 지지도 않던 주로 바디랭귀지로 버티던 자연인?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트에 가서 어떻게 이일을 설명해야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마트 직원 아주머니 들 이 내 말을 알아들어 줄까? 고민하며 걷고 있었다.


그때 그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할 줄 아는 요리는 몇 개 되지 않던 그 시절 따끈하고 매콤한 부대찌개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그래서 용케 만든 김치 가 시어 질 무렵 마트에서 작은 소시지 하나를 사서 신김치 넣고 어떻게든 부대찌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동네 마트에 가서 한국에서 먹던 부대찌개 안에 골고루 들어 있던 소시지 비슷한 것을 찾으려 보니 여간 고민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쪽 칸 저쪽 칸을 살펴보아도 독일은 어찌나 소시지가 종류도 많고 크기와 굵기도 다양하던지 사다 넣고 끓여야 부대찌개 비슷하게 될지 모르겠더란 말이다.


한참을 서성이다 내 눈에 띈 작고 귀여운 소시지, 동그랗고 짧고 굵은 것이 찌개에 썰어 넣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많고 많은 독일 소시지 중에 고르고 골라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큼 쪼그만 소시지 하나를 사서 들고 집에 가서 부대찌개를 끓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큰일이나 한 것처럼 뿌듯해하며 신바람 나게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부엌에서... 부대찌개를 만들기 위해 소시지 껍질을 까고 칼로 써는데 그 소시지가 뭉개 지는 거다

아니 무슨 소시지가 이렇게 부드럽지 하며 잘게 잘라진 소시지를 김치와 함께 끓고 있던 작은 냄비 안에 더 부서질세라 조심조심 투척했다.


그러자 끓어오르던 냄비 안에 들어간 소시지는 마치 순두부찌개의 순두부가 잘게 부서져 흩어지듯 찌개 위로 그 분홍의 위엄을 내뿜으며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뿔싸 그제야 나는 소시지 껍질에 쓰여 있던 유효기간을 들여다보았다.


독일에 온 지 몇 개월 되지 않던 그때는 우리와 날짜의 순서가 다르게 쓰여 있는 유효기간 찾아보는 것도 익숙하지 않을 때였다.


예를 들어 우리는 효기간 날짜를 쓸 때 2020년 12월 20 이렇게 쓰고 이천이십 년 십이월 이십일이라 읽는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20.12.2020 쓰고 이십 십이월 이천이십 년이라고 읽는다. 


즉 같은 날짜를 두고 우리와는 다르게 독일에서는 몇 년 몇 월 며칠을 며칠 몇 월 몇 년의 순서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암호를 해독하는 것 같던 날짜 읽기로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유효기간의 날짜는 많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유효 기간과 상관없이 소시지가

썩었던 거였다.

해서 나는 부대찌개 끓이다 말고 마트로 콧바람을 날리며 뛰어갔다.

소시지가 고장 났어요

두 손을 불끈 쥐고 따지러 간 마트에서 이 사람이 대체 뭔 말을 하는 걸까요? 하는 얼굴로 나를 빤히 보던 체격 당당한 독일 마트의 직원 아주머니에게 나는 최선을 다해 소시지가 썩었음을 이런 썩은 것을 마트에서 팔면 안 된다는 것을 안 되는 독일어로 애절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나의 썩을 놈의 독일어가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독일 사람들이 들었을 때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는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그때의 내 머릿속에 들어 있던 몇 개 되지 않는 독일어 단어 중에는 소시지가 상했다. 또는 썩었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들어 있지 않았다. 해서 독일어 표현으로는 소시지가 고장 났다고 말해 버린 것이다. 문짝이나 기계가 고장 났을 때나 사용하는 고장이라는 단어를 소시지에 가져다 붙인 이 동그란 동양 여자의 어처구니없는 독일어에 직원 아주머니는 깜놀 했다.


그러나 바디랭귀지는 만국 공통어라고 나의 말도 안 되는 독일어보다 나의 현란한 손짓, 발짓, 얼굴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를 챈 씩씩한 독일 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 내가 들고 간 소시지를 직접 빵에다 바르며 얘는 이렇게 먹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정리하자면 작고 맛나 보여 부대찌개 안에 넣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소시지가 원래 빵에다 발라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드럽고 잘 부숴졌던 거다. 이런 쉿뜨...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터진다. 어떻게든 부대찌개를 먹어 보겠다고 용쓰던 그때가 말이다.

가끔 이렇게 눈 오는 날이면 그 말도 안 되는 날의 부대찌개가 생각나고는 한다.

물론 지금은 독일어도 부대찌개 의 맛도 그때에 비해 일취월장했지만 눈이 오는 날이면

그날의 부대찌개가 떠오르고는 한다. 그날의 분홍의 부드러운 소시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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