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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12. 2021

사춘기 아이 키우는 일은 왜 매번 이렇게 어려울까?


아침부터 창문에 비바람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 시리 들려온다.

그 소리만 가지고 볼 때는 장대비 라도 내리겠지 싶어 우산을 꺼내 들고 정원으로 난 문을 빼꼼이 열었다.

이제 겨울 다 갔지 싶다가도 앉아 있으면 아직은 으슬으슬 추워서 부지런히 벽난로를 운 덕분에 집안으로 들여놓았던 나무가 어느새 동이 났다. 정원에 벽난로 나무 들을 쌓아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니 우리 집 멍뭉이 나리가 내 뒤를 졸랑졸랑 따라 나온다.

비 맞는 것을 싫어라 하는 녀석인데 신났다고 정원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닌다. 들려오는 빗소리만 가지고는 굵은 빗방울을 예상했었는데 뜻밖에도 보드라운 보슬비가 촉촉히 내려온다.


우산은 접어 둔 체 머리로 어깨로 얼굴로 부드럽게 내려앉는 이 몽글몽글한 빗방울의 간지럼을 만끽하며 나무 몇 개씩을 들어 옮겼다.

노란색 목장갑을 끼고 정원으로 거실로 나무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나를 한 번씩 쳐다보던 나리는 정원에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입에 물고 잽싸게 귀퉁이 어딘가로 갔다.

뭐지? 싶어 따라갔더니 작은 통 하나를 열심히 땅속으로 묻어 버리고 있었다.

저 통이 뭘까? 했더니 아하 얼마 전에 배달 음식 속에 끼여 왔던 작은 양념 통이다.


분명 쓰레기 통으로 들어갔는데.... 쓰레기 버리러 나가려고 현관 앞에 모아둔 쓰레기봉투 안에서 나리가 하나 슬쩍했나 보다.

나리에게 이 작은 빈 통은 맛난 냄새가 묻어 있고 핥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마술 항아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그랗고 까만 코로 낙엽과 흙을 가져다가 열심히 그 통의 흔적을 감추고 있던 나리는

"나리 뭐하니?"라는 나의 물음에 하던 일 멈추고는 시침 뚝 떼고 머리를 들어 다른 방향으로 돌리며 모른 척한다.

마치 " 뭔 일 있었어?"라는 듯이...

저 천연덕스런 표정은 한참 사춘기의 정점을 찍고 있는 우리 집 막내가 내게 뭔가를 들켰을 때와 똑 닮았다.



지난겨울 독일은 코로나 확진자 수가 다시 치솟았고 순서 인양 락다운이 다시 시행되며..

독일 학교들도12월 크리스마스 방학 전부터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네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우리 막내가 다니는 김나지움 같은 경우 (한국으로 하자면 중학교 고등학교가 한꺼번에 모아져 있는 학교) 독일의 수능인 아비투어와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위에 학년들과 이제 막 김나지움을 시작한 5학년 6학년 들만 요일 다르게 학교로 등교하고 있다.


그래서 가운데 학년에 속하는 7학년 (한국으로 중학교 1학년인) 우리 집 막내는 4개월째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아이가 교실이 아닌 자기 방에서 선생님이 앞에 계신 것이 아닌 영상으로 수업을 받다 보니 많은 문제들이 발생을 한다.

이제 중학생쯤 되는 아이들은 몸은 훌쩍 자라 더 이상 어린아이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맡겨 두기에는 아직 안심하기 이른 질풍노도의 시기 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가장 큰 문제는 선생님 들과의 수업도, 숙제도, 그룹 모임도...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인터넷 안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학교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거다.

그렇다고 수업 내내 부모가 옆에 붙어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늘 아침의 일이다. 수업이 많은 요일 중에 하나인 목요일은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이 짧은 날이어서 아침 샌드위치를 만들어 올려다 주려고 막내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 노트북은 반짝반짝 켜있는데 이어폰을 꽂은 막내의 고개는 노트북이 아닌 무릎 위에 핸디로 가 있었다.

뭐하나 싶어 발소리 죽여 가며 조용히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니 너튜브에 누가 올려놓은 웃기는 영상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기가 막히고 혈압이 올라갔지만 막내의 어깨에 손을 살짝 얹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뭐하니? 수업 중 아니야?"

막내는 깜놀한 듯했지만 지금은 수업시간은 아니고 반 학생들과 담임 선생님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러나저러나 학교 수업 시간인데.....


다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간혹 가다 집 인터넷에 문제가 생겨 혼자 있던 아이가 수업에 참여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서 요즘은 일주일 중에 이틀인 화요일, 목요일은 집에서 서류 정리 등의 홈오피스를 하고 나머지 월, 수, 금 삼일 병원 근무를 나가고 있다.

엄마가 집에 있는 날도 이러니 병원에 일 나가고 아이 혼자 있으면 어떨까?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나는 조금 쌀쌀맞은 목소리로 "아무리 온라인 수업 이어도 너는 지금 학교를 온 거야 그러니 수업 중에 방해되는 핸디를 켜고 있으면 안 되지!"


공부 시간에 딴짓하다 걸린 춘기아이는 엄마의 제법 날 선 목소리에 겁을 먹은 것도 아니요 미안해하는 것도 아닌 별것도 아닌 일에 우리 엄마 또 저러네 하는 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계속 서서 나한테 말 시키는 것도 수업을 방해하는 거야 이제 나가줘"

나는 더 서있다가는 소리를 지를 것 같아 "핸디 끄고 수업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 "라는 말을 남기고 막내 방을 나왔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두 아이의 사춘기도 만만치 않았지만 늦둥이 막내의 사춘기는 매번 나 신세계로 안내한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끼리 만나 놀지도 못하는 것이 안쓰러워 게임기에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게임을 허락해 주었다. 때로 주말이면 조금 긴 시간을 하더라도 묵인해 주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들용 게임일 때 한해서였다.


그런데...

요 며칠 전에 무심코 아이방을 지나치며 아이가 하는 온라인게임을 보던 나는 무언가 전에 하던 것보다 화면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전에 하던 게임에서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여기저기 블록처럼 생긴 게임 안의 장소들을 오가며 창 쓰고 활 쓰고 했다면... 이게임에서는 군인 모습의 사람들이 나오고 사진 처럼 선명한 장소 들과 총기류 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게임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는 내가 보기에도 그전에 하던 게임에 비해 이건 만화 영화와 실사판 영화의 차이처럼 그래픽이 달랐다.


순간 느낌이 쎄 한 게 마음은 조급했지만 나는 막내에게 그저 궁금해서 그런다는 뉘앙스로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게임 이름이 뭐니?" 하고 물었다.

혹여 라도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너 이거 애들용 아니고 어른 들 거 하는 거 아니야?"라고 다그친 다면 아이가 하고 있던 게임이 무엇인지 숨길까 봐 여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게임 이름을 뭐뭐뭐라고 대충 얼버무린다. 이거? 라며 다시 물으니 "아 엄마는 말해 줘도 어차피 못 알아들어!" 하며 마치, 저는 제대로 이야기해 주었는데 엄마가 못 알아듣고 엉뚱한 이름을 이야기한 것처럼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어허 ... 요녀석 봐라 걸렸어!

나는 하얀 종이와 펜을 내밀며 "그래 그럼 지금 하고 있는 게임 이름 여기다 써봐"했다.


아이가 마지못해 써낸 게임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역시나 18세 이상 성인용 게임이었다.(독일은 법적 성인이 18세 다)

어쩐지 요 근래 다른 학교 다니는 저보다 학년이 위인 아이들 과도 게임을 하더라니..

그간 조금 이상했던 것들이 아귀가 들어맞기 시작했다.



얼마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남편이 아이와 장을 보러 갔다가 아이가 사용하는 게임기 회사에서 나온 온라인 게임용 카드를 하나 사 주었다고 했다. 아마도 나만큼 게임에 관해 무지한 남편이 아이가 사용하던 게임기 회사 에서 나온 카드라 별 생각 없이 사 주었던 그 카드가 연령제한 없이 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이었나 보다.


나는 아이에게 조용히 커다란 박스를 가져다주고는 지금 하고 있던 게임기, 콘솔 기타 등등 게임에 관련된 모든 것을 그 안에 넣으라고 했다.

아이는 엄마의 모습에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으나 그럼에도 억울하다는 듯이 "그전에 하던 게임이랑 거의 같은 건데.."라며 친구 누구는 아빠랑 함께 그 게임을 한다고도 했다.


나는 "내용이 같다 해도 성인용으로 나온 것이라면 아이들이 하면 안 되니까 일거야 그렇지? 그리고 친구 누구는 그 집 아빠 아들 이잖아 그건 그 아빠가 결정하고 책임질 일이고 엄마는 분명 너에게 게임 허락했을 때 아이들 용에 한해서 라고 이야기했어"


그랬더니 아이는 눈물이 글썽해서는, 자기가 그 게임을 한 게 무슨 지구가 멸망할 일이냐며 엄마는 매사에 너무 예민하다는 둥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속으로 이 기회에 잘됬!를 외치며...

아이가 직접 담은 게임기와 콘솔들이 담긴 통을 테이프로 밀봉해 버렸다.마치 요술램프에 지니를 가둬 버리듯...

"당분간 게임은 없어!" 라는 말과 함께..


사실 글은 이렇게 쉽게 썼지만... 따뜻한 커피를 마셔도.. 불멍을 때려도... 얹힌것 같은 마음이 좀처럼 추슬러 지지 않았다.

그래서,예전에 썼던 일기장들을 산 처럼 쌓아 두고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큰아들은 사춘기 때 이런 일로 나를 멘붕에 빠지게 했었지... 딸내미는 또 저런 일로 나를 기함 하게 했었지 하며 샐프 위로를 했다.


그리고는 내가, 우리가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 에게 던지 다가...우리애들 셋중에 이런일로 걱정하게 한 아이는 없었는데...싶다가 ..다른아이들 키울 그때는 스마트폰도 인터넷 게임도 없었지..하다가..눈 동그랗게 뜨고 지가 그 게임을 한것이 지구가 멸망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 하던 막내 모습이 떠올라...저놈의 쉐리는 누구를 닮아 저렇게 따박따박일까 싶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다가...여러가지 마음이 왔다갔다 하며 혼자 생쑈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래도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지난번에 아시아 식품점 갔다가 열 받을 때 열식힘용으로 먹는다며 사다 놓은 한국 아이스크림을 꺼내 와서 입에 물었다.


그 이가 시리게 차가운 것을 두 개나 먹어도 내가, 우리가 아팠다 바빴다 하는 핑계로 아이에게 왜 조금 더 신경을 쓰지 못했을까?하는 자책으로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랄 발광의 시기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무리 경험을 해도 매번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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