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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25. 2021

아쉬움을 날려준 유머 한마디


우리 집 대학생 두 명이 부활절 연휴에 잠시 집에 왔다가 각자 공부하는 곳으로 다시 되돌아 갔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대학 강의들도 대부분 온라인이라 어디에 있던 인터넷만 되면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기숙사 방을 너무 오래  비워 둘 수도 없고

언제가 되었던 갈 사람은 가야 한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아이들이 집에 올 때면 식탁 위에 다섯 벌의 수저가 놓이고 오늘 뭐 먹냐고 물어 대는 그 익숙한 복작임은 깨알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모여 한참이나 그득해지다.. 한놈 두 놈 떠나고 나면 뭣이 휑한 것이 여간 허전하지 않다. 그 빈자리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한번 다녀 가면 며칠은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그런 엄마 마음을 잘 아는 딸내미는 한꺼번에 다 가면 엄마가 더 아쉬워한다고 오빠가 가고 나서 일주일을 더 있다가 갔다.

그럼에도 보내는 순간의 아쉬움의 크기는 늘 다르지 않다.



이른 아침...

입맛 까다롭지 않아 뭐든 주는 데로 잘 먹지만 국에 밥을 주면 더 좋아하는 딸내미의 아침을 챙겨 먹이고 기숙사 열쇠는? 지갑은? 노트북은? 꼼꼼히 챙겼는지 확인하고는 딸내미를 데려다주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딸내미는 기차값이 비싼 독일에서 기차비를 아껴 보겠다고 월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표를 끊었다. 그 덕분에 출근 전에 기차역까지 바래다주는 것이 가능했다.

안 그랬음 저 혼자 큰 가방 밀고 한참이나 걸어 올라가 전차를 타고 움직여야 했을 텐데...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해내는 아이지만 엄마 마음은 늘 안쓰럽고 뭘 못해줘서 안달이다.

딸내미는...

어릴 때는 그런 엄마의 챙김이라 쓰고 참견이라 읽는 마음을 귀찮아하더니 이제는 좀 컸다고 그런 엄마 맘을 웃으며 못 이긴 척하고 받아 준다.



기차역 앞은 월요일인데도.... 썰렁하기 그지없다.

마치.. 평일이 아닌 공휴일 어느 날의 시내처럼.....


원래는 기차역 주차장에 차 댈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고 택시 정류장에 택시들이 바쁘게 오가느라 몇 대 서있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기차역 앞 택시 정류장에 빈차로 대기 중인 택시들이 줄지어 있다.

(독일은 이렇게 병원 앞이나 기차역 앞 정해진 곳에 택시 정류장이 있다.

그 외에 곳에서는 택시 회사에 전화를 해서 택시를 불러야 한다.)


역 바깥도 코로나 이전 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지만 역 안은 더 하다.

누군가를 배웅 나온 사람들도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역 안 빵집 앞에는 벤치에 앉아 그 어느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바닥에 떨어진 빵가루 주워 먹으로 오가는 비둘기들이 더 많다.



딸아이가 타고 갈 기차의 시간표와 플랫폼의 숫자를 확인했다.

7시 45분 2번 플랫폼..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다.

아이와 빵가게로 들어갔다. 그간 몇 주를 비워둔 딸내미의 기숙사 방에 당장 먹을 것이 있을 리 없다.

몇 시간을 기차 타고 가서 도착하자 마자 시장 가기는 피곤할 게다.

점심 겸 간단히 때울 샌드위치라도 사서 들려 보내야 맘이 좀 편할 것 같아서다.


딸내미가 원하는 샌드위치를 고르고 내 것으로 카푸치노 큰 컵으로 주문하고는 지갑을 열고 계산할 돈을 확인한다.

요즘은 어딜 가나 주로 카드로 계산 하지만 빵가게는 현금을 낸다.

독일의 빵가게들은 아침부터 50유로짜리 지폐(한화로 약 6만 7천 원 정도 한다)를 낸다거나 하면 바꿔줄 돈이 없다고 아침부터 이렇게 큰돈을? 하며 대략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

한화로 바꾸어 생각하면 5만 원권 한 장 살짝 넘는 것이라 그렇게 큰돈은 아닐 텐데 독일에서 50유로는 크다.

독일 사람들은 보통 휴가로 여행 가고 할 때 몇천 유로 씩 턱턱 쓰는 것에는 아까워하지 않지만 일상에서 자잘한 것들을 아끼는 것이 몸에 배어 있고 동전 하나도 그때 그때 챙겨 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 이기도 하려니와 빵집에서도 주로 빵값에 딱 맞게 작은 동전 하나까지 맞추어 내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돈 중에 빵값에 제일 근사치로 떨어질 20유로짜리 지폐를 꺼내 들었다.



사실 내게는 늘 동전이 많이 생긴다. 성격이 급해서 동전 맞춰 내는 것을 잘 못하다 보니 언제나 동전 대신 지폐로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방, 입었던 옷 할 것 없이 여기저기 털면 나오는 동전은 몽땅 남편을 준다. 우리 남편은 차분하게 동전 한 톨도 맞추어 내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슷한 면도 많지만 다른 면도 많아서 서로가 잘하는 것을 한다.

가령 양말 짝 맞추는 것은 남편이 벽에 못 박는 것은 내가...


우째거나...

빵값을 내고 거스름 돈을 받는데...


빵가게 젊은이가 밝은 목소리로 내게 "1천2백 유로 요!" 라며 싱긋 웃었다.

그 말에 순간적으로 빵 터졌다. 내손에 쥐어진 거스름돈은 12유로였지만 그 청년이 1200유로 라며 백배로 뻥 튀겨서 주니 진짜 되게 이득을 본 느낌이었다.


딸아이를 배웅하고 돌아 서면서도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사람이 참 간사하지 않은가 손에 들어온 것이 크다 라고 말해줘야 그제야 가지고 있던 것이 큰 것 같은 느낌이 드니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의 크기가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아쉬운 마음에 유머 한마디가 카푸치노 위에 뿌려지는 코코아 가루처럼 솔솔 뿌려지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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