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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08. 2021

욕 읽어 주는 엄마


소리 소문 없이 5월이 되었다. 매일 같은 날의 반복이라 가끔은 날짜도 요일도 헛갈릴 때가 있다. 그럼에도 노랗게 피어나던 민들레 꽃잎이 어느새 떨어지고 솜털 같은 하얀 민들레 홀씨만 남았다. 그 하얗고 몽실몽실 한 것이 퍼져있는 풀밭과 손대면 초록색 물이 묻어 날 것 같은 나무들을 보니 오월은 푸르구나 의 그 5월이 맞다.

독일은 아직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서 우리 집 멍뭉이 나리와 산책을 나갈 때면 언제나처럼 두꺼운 잠바를 꺼내 들지만 자연은 이렇듯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알림 을 해 주고는 한다.


나는 이 싱그러움을 한 아름 안고 있는 5월.그 푸르름을 독일 땅에서 27 번째로 맞이하고 있다.

외국인으로 독일에 살게 된 지 햇수로 27년, 만으로 꽉꽉 눌러 담아 26년이 되었다.

그 세월 동안 독일 생활중에서 나 스스로 칭찬해 줄 만한 것을 꼽으라면 첫 번째는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아이들 셋 낳아 키운 것이라 하겠다.
또 가장 쉽지 않았던 것 세 아이 낳아 키운 것이고 말이다.


가끔,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한다.

독일처럼 황사도 미세먼지도 없고 공기 좋고 교육 환경 좋은 데서 아이들 키우니 얼마나 좋으냐고... 아이들 사교육비 안 드는 독일 이니까 애 셋 낳아 키운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찌 보면 그분들의 말씀이 일부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이 있듯 언제나 그렇지 않은 이면들도 있다.



일단 독일은 나무도 많고 공기가 좋다. 그러나 봄 되면 그 나무들에서 떨어지는 꽃씨들이 흩날리며 알레르기를 유발해 알레르기성 천식 환자가 많다. 그리고 교육환경도 어떤 면에서 훌륭한 교육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컸다면 겪지 않았을 일들도 때로 겪고는 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을 향한 교사의 은근한 또는 직접적인 차별 이라던가 또 아이들의 놀림 또는 따돌림 들은 경중의 차이가 있고 아이들 마다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요 테마는 할 이야기가 많은 관계로.. 다음번에...)


또,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 교육비가 가장 큰 부담이라고 이야기 한 지인의 말처럼 독일은 사교육비가 덜 든다. 그러나 아이들 키우면서 취미활동으로 바이올린, 피아노, 발레, 축구교실, 테니스, 수영 등등.. 그때마다 부모가 모두 직접 데리고 다녀야 한다. 학원버스 그런 서비스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큰아들과 딸내미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막내 유모차 끌고 아이들 축구교실, 수영, 발레 학원, 한글학교, 피아노 학원, 바이올린.. 등등 요일별로 시간 맞춰 버스 타고 자전거 타고 데려다주고 데려 오면 일주일이 후딱 하니 지나 있고는 했다.

즉 어디서 던 아이들 키우며 사랑과 정성 그리고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것은 매한가지다.

상황적 차이만 있을 뿐...

사진출처:klaus grawe Institut

그리고 한국에서였다면 늘 받고 자랐을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일가친척들과의 만남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마치 특별한 날 만 받을 수 있선물과 같았다. 몇 년에 한 번 우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또는 누군가 독일로 오셨던 그때만 가능했으니 말이다.

이 동네 아이들이 방학이다 뭐다 해서 수시로 할머니네 놀러 갈 때에도 우리 아이들은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할머니네 갈 수도 없고 아이들이 학교 행사에서 일가친척들 초대해서 멋진 공연을 할 때도 우리 아이들은 보여 드릴수가 없었다.

세월이 좋아져 가끔 영상 통화도 가능하고 톡도 하는 요즘이지만 지난 시간들의 아쉬움은 마치 사진 속 빈자리 같다.

그래서 우리 친정 엄니 박 여사 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고 말이다.


아이들이 유치원만 가도 저절로 알게 된다. 우리는 독일에 살고 있지만 이들과 다르게 생긴 외국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곁에 한국 사람이라고는 우리 부부뿐인  아이 들을 독일에서 키우며 잠들기 에는 늘 한글 동화책을 읽어 주었고 집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로 중학생인 김나지움 7학년 8학년 까지는 한글학교를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을 유지하기가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왜냐 하면...

아이들이 커가면서 간혹 혼란스러워할 때가 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자리하고 있어야 흔들림이 없다.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는 정체성 말이다.


우리 딸내미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에 유치원 갈 때까지 한국말만 할 줄 알았다.집에서 늘 한국말만 사용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독일어로 화장실, 물, 이런 기본 적인 것조차 말할 줄 몰랐다.

그러나 아이들의 적응력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리고 쓰지 않는 말을 잊는 속도 또한 빠르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 독일어를 사용하게 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지면서 한국어를 자꾸 잊게 된다.


아이들 어릴 때 우리는 독일의 시골 동네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한국 아이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한 반에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아이들이 특히나 우리 딸내미가 혼란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와 집에서 한국말로 하는 것은 '학교 어땠니?''숙제는?''밥 먹어라' 등의 다양하지 않은 말들이 대부분이었다.그런데 학교에서 수업하는 동안 그리고 친구 들과  때도 독일어만 사용하다 보니 자기가 독일 사람인  알고 우린 독일에 사는데  굳이 한국말을 해야 하냐고 물었다.


또 간신히 꼬드겨? 보낸 한글학교의 수업은 토요일이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곳들은 주로 토요일이었다 )

남들 학교 안 가는 주말에 학교를 가야 한다는 것과 한글학교 숙제도 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들 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거기에 누구 생일 초대라도 받은 날이면 이미 마음은 파티에 가 있느라 한글학교는 뒷전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달래고 을러서 다니게 했던 한글학교는 우리 아이들 에게 크고 작은 추억들을 남겨 주었고 특히나 한글을 제대로 떼게 해 주었다.


어느해 한글학교  행사

그러나  당시 가장 반항? 과 땡깡? 세던 딸내미가 지금  중에 한국말을 제일 잘한다.

그때 아이들과 그 실랑이가 피곤하고 싫어서 포기? 했다면 어쩔 뻔 했나?


대학생이 된 우리 딸내미의 요즘 취미는 한국 웹툰 보는 거다.

간간히 내게 톡을 한다

엄마 이 x가 뭘까? 하고 말이다. 뭐지? 하며 읽어 보니 문맥상 욕이다. 한국어를 읽고 쓰고 하지만 욕설들을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 x에 무엇이 들어 갈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면 충분히 추론이 가능하여 줄줄 입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의 찰진 한국 욕설들이 정스럽고 재미있다. 알려주면 깔깔 거리며 응용도 하는 딸내미를 보는 것도 쏠쏠하고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욕도 알게 되고 욕도 하고 해야지 뭐 언제나 교양 넘치는 건전한 말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딸내미에게 적나라한 발음과 억양으로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유용한 한국 욕 들을 읽어 준다. 독일 욕들과 비교도 해가며 말이다


*대문사진 출처: mutterberatung.de  *사진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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