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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15. 2021

줌으로 진행된 아들의 대학 졸업식

각자 집에서 참석한 펜데믹 시대의 졸업식

이게 얼마만의 화장인가?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일상을 살게 된지 1년이 훌쩍 넘었다.

비비크림도 립스틱도 바르지 않고 튼실한 마스크만 믿고 눈만 내어 놓고 산지도 1년이 넘은 거다.

뭐,원래도 그리나 안그리나 그얼굴에 햇살이라 평소 화장을 즐기는 편은 아니였다.


그러나 오늘은 날이 날이니 만큼 거울 앞에 앉았다 겁나 우아하게...

특별하고도 특별한 오늘은 우리집 큰아들의 대학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종종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는 상상을 하고는 했었다. 아들이 사각모 쓰고 졸업 가운 입고 당당히 졸업 단상에 올라 가는 모습을 눈에 담는 것을 말이다.

그모습을 지켜 보며 흐뭇한 마음에 눈가가 촉촉해 질 무렵 졸업식이 끝나가겠지...

그리고 나면 아들은 한손에 졸업장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쓰고있던 사각모를 벗어 들고 하늘 높이 던지겠지..

아들의 그모습에 우리는 축복을 가득담아 손바닥으로 불지피게 박수를 치겠지...

때로 머릿속으로 영화 속에 간혹 등장하던 졸업식 장면들을 편집해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했다.


그리고 가끔 고개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아들의 졸업예상 날짜를 세어 눈으로 빨간 동그라미 그리며 "내 이날은 뱅기 안에서 기내식 묵고 있을 기다!" 하며 시골 할매 효도관광 손꼽아 기다리는 모드로 남몰래 의지를 불태우고는 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펜데믹 시대의 졸업식은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 되었다.


한복이 넉넉 하다고
 누가 그러더냐?


그러나 아무리 비대면 이라 해도 졸업식인데 정성들여 화장도 하고 격식은 차려야 할것 같았다.거울 앞에 앉아 상태를 체크 했다

그전날 밤 ...

벌써 울아들이 대학을 졸업 하는 구나 ...싶어 세월의 무상함과 졸업식인데 만나지도 못하고 화면으로 참석 해야 하는 졸업식이 못내 아쉬워 잠을 설쳤다.

거울안엔 호빵 같은 늘푸진한 아주마이 하나가 남감허네.....하고 앉아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이날을 위해 살도 빼고 더 젊어져서 아들이 부끄러워 하지 않을 미모의 어머니로 거듭 나리라 했었다.

그런데 거울안의 여인네는 빠지긴 커녕 팍찐자로 개인기록을 수없이 갱신했으며 더이상 갈데 없이 후퇴한 미모는.."미모는 뉘집 애 이름이니? 어디가면 만나지니?" 하며 때지난 남의 대사를 패러디 하고 있었다.

맞는 옷이 없으니 드레스코드 따위 머리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몇 주전에 아들이 다니던 대학에서 온 졸업식 관련 메일에는 식의 순서 등과 참여할 가족들에게 멋진 드레스코드 전통적인것 환영한다 써있었다.

이거이 전통 아이겠니?하며 "내 곱디고운 한복을 입고 방구석 먼지를 좔좔 쓸어 주갔으!"하고는 개량 한복을 꺼 내 들었다.

그동안 한국요리 강습도 하지 못하고 있어서 한복 다림질도 오랜만이였다.

그렇게 색감 이쁜 한복 다려 걸어 두고....


1년전에 사다 두고 아직 뚜껑도 열지않은 화운데이션을 쳐발 쳐발 하고 한복 색깔에 맞춘 립스틱을 바르고 나니 얼추 기초 공사가 끝났다.


그런데 ....

마냥 넉넉 하던 개량 한복이 꼭 맞다 못해 품이 끼고 있었다.

사람이 살이 찌면 그넉넉하던 한복도 꼭끼여 저고리가 저절로 열릴수도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이개량 한복으로 말씀 드릴것 같으면 한국요리강습 할때 입기 위해 기장은 조금 짧게 품은 넉넉하게 그리고 옷고름 대신 매듭처럼 생긴 단추를 걸도록 한국의 동네 시장에서 나름 특수제작 되었다.

허나 한도초과된 품은 방법이 없었나 보다.

품이 끼다 못해 조여 왔으며 어깨를 편다거나 소파에 앉느라 치마가 당겨 지면 저고리 매듭 단추가 자동으로 튕겨 나가서 앞이 열렸다 커튼 열리듯...



진땀의 온라인 졸업식


졸업식은 화요일 독일 시간으로 오후 5시에 시작 되었다.아마도 펜데믹으로 인해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는 졸업생들과 가족들을 위해 고려된 시간이 아니였을까? 한다.

화요일 오후는 우리병원 진료시간과 겹친다

나는 다른 동료가 그시간을 땜빵해 주기로 하고 집에서 막내와 오빠의 졸업식을 위해 베를린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합류한 딸내미와 온라인 졸업식 참가를 위한 준비를 했다.그리고 남편은 진료실 하나를 비워 두고 졸업식 시간에 맞춰 온라인으로 접속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본 졸업식 전에 4시 부터 미니 그룹으로 교수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가족들 간에 미팅이 또 있었다.

그동안 학생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해왔고 등등 내가 알지 못했던 아들의 대학생활을 잠시 엿볼수 있었다.


그런데..

꼭끼여 오는 저고리가 문제 였다.혹시라도 저고리단추가 풀려 열린다 해도 그안에 속치마에 치마  켜켜이 있어 특별히 구경 시킬 것은 없었지만 현관문 열어 놓듯 저고리 열고 앉아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거기다 화면으로 다른 사람 이 보이듯이 내모습도 저편 어딘가에 방송? 되고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화면상 이였지만 으찌나 조심스럽던지 땀이 삐질 삐질 났다.

그래서 물 마시는척 살짝 일어났다 다시 앉고 화장실 가는것 처럼 살짝 일어나 화면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 했다.

서 있으면 그나마 품이 덜 쪼이고 앉으면 더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수님들도 학생들도 가족들도 모두 노트북 카메라 앞에 앉아서 마주 보고 있듯 진행되고 있는데 굳이"지는 서서 참가 하겠슈 !" 그럴수도 없고 말이다.

이게 무신 사서 고생 인지...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시간은 다 되었고..



드디어 본 졸업식이 시작 되었다.

방송이 시작되듯 화면조정 시간을 거쳐 온라인 졸업식이 진행 되었다.

총장님을 비롯한 교수님 들의 축사가 이어 졌다.

다른 때였다면 학교에서 졸업식장으로 꾸며져 있을 단상 위에 올라가 했을 축사를 컴퓨터 앞에 앉아 해드셋 또는 이어폰 끼시고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리고 그옆쪽으로 각지 에서 보내 오는 수많은 실시간 축하 코멘트 들이 올라 오고 있었다 마치 유튜브 라이브 방송 하듯이...


그다음은 몇 년간 과별로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함께 일구어온 프로젝트들과 공모전,파티,해외연수 등등 이 다큐멘터리 처럼 방송 됬다.

졸고 있던 막내도 이때만큼은 눈을 초롱 초롱  뜨고 있었다.

짧은 영상들 이였지만 몇 년간 아들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한눈으로 볼수 있어 가슴이 벅차 왔다.

그리고 어느 교수님이 재미난 제안을 하나 했다.

졸업생 답사 를 대신 하는 것 처럼 학생들 중에 원하는 사람들 순으로 그동안 대학 생활에 대한 추억 또는 기억을 6단어로 묶어 이야기 해 보라고 했다.

마치 운띄우고 삼행시 를 짓듯..

이런저런 기발하고 윗트 있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지만 그중에 어느 여학생이 남긴 말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내게 집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 이다.!"


영화가 끝이 나듯 온라인 졸업식이 끝나며  

졸업장 받는 순서 대신 과별로 졸업생들의 이름과 사진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그거 놓칠새라 온가족이 눈에 불을켜고 있다가 컴퓨터 화면에 일이초 상간에 떴다 사라지는 큰아들의 이름과 사진을 보고 환호 했다.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이 골 넣었을때 처럼 크고 가열차게.....

모든게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진 졸업식이였지만 식구들의 축하 만큼은 큰아들에게 실시간으로 뜨겁게 전달되었다.


P.S: 졸업식 후에 홀가분 하게 한복을 벗어 버리고 애들에게 엄마가 한복 입고

불편했지만 그래도 졸업식인데 전통의 의미는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딸내미는 엄마 이뻤다며 위로해 주었고 요즘 우리집에서 젤 무서븐 우리로 중2 막내가 시크하게 뼈때리는 말을 남겼다.

“그러게 아무거나 입지 전통은 엄마 뿐이더만” 헐 남푠이 말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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