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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08. 2021

독일에서 오랜만에 딸내미와 택시를 탔다.

독일 사람들이 택시를 잘 타지 않는 이유


텅 텅 터덜 하는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갈 준비가 다 된 딸내미가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다. 가방이 제법 무겁게 싸졌나 보다.

이번 가방 안에는 두툼한 겨울옷들도 들어 있고 엄마 밥이 생각날 때면 급한 대로 먹을 즉석 콩나물국밥, 김, 라면, 과자, 빵..마른미역,카레가루,먹거리들도 들어가 있으니 그 커다란 가방이 꽉 찰만하다.

아이가 아쉬운 듯 눈을 깜박이며 컵라면 하나를 다시 내게 건네며 말했다.

"엄마, 가방에 자리가 없어"

어쩌겠나, 가져가면야 급할 때 요긴이 쓰겠지만 가방이 터지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딸내미가 대학을 다니고 있는 베를린은 한국식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우리 동네보다 훨씬 많은 곳이다.

그러나 동네가 워낙 크다 보니 필요할 때 사러 나가려면 시간이 들고 갑자기 배가 고프거나 할 때 비장의 무기로 한두 개 있으면 좋겠다 싶어 집에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챙겨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감자조림, 오이김치 같은 밑반찬도 요것조것 챙겨 주고 싶지만 기숙사에 같이 사는 친구들과 냉장고도 함께 나누어 써야 해서 너무 많은 것을 담아 줄 수는 없다.

게다가 혼자 먹는 양은 정해져 있으니 통에 잘 담아 새지 않게 가져간다고 해도 며칠 먹다 버리게 될 수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집에 왔다 갈 때 밑반찬을 챙겨 주는 대신에 한두 가지 자취생들이 혼자 요리 해 먹을 수 있는 간단 한국요리를 가르쳐 준다.

이제는 저 혼자 미역국도 끓이고 된장국도 끓이고 카레밥도 한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거실 가운데 두고 아이가 챙겨야 할 것들을 잊지 않고 모두 담았는지 확인하는 동안 나는 택시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건다.

핸드폰에서 전화 신호음이 몇 번 들리고 굵직한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늘 그렇듯 이름과 우리 집 주소 그리고 지금 바로 택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얼마나 걸릴지를 물었다.

10분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기차 시간까지 40분 남았으니 여유가 있다.


독일에서 택시를 타려면 택시회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이름과 위치 그리고 필요한 시간을 미리 이야기해야 한다.

즉 택시가 필요하다면 전화로 불러야 한다. 우리처럼 길에 서서 지나가는 택시를 손 흔들어 잡을 수 없다는 말씀.

기차역 앞이라던가, 병원 앞 등 택시가 필요한 상황이 많을 법한 곳에는 버스 정류장처럼 택시 정류장이라는 것이 있다.

그곳에서는 택시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차례대로 맨 앞에 있는 택시부터 타면 된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은 택시를 잘 타지 않는다. 병원에서 퇴원하는데 데리러 올 사람이 없다던가 어디를 다녀오느라 가방이 무겁고 여러 개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다던가 등등의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말이다.

왜냐하면 독일 택시는 독일 사람들 기준에서 말도 안 되게 비싸기 때문이다.


이 비싼 택시를 타게 된 이유는 기차역까지 운전할 사람은 있는데 그 차를 몰고 다시 집에 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 거이 뭔 소리인고 하니..

몇 주전에 남편은 안과 수술을 받았고 당분간 운전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무면허다. 남들 있다는 그 흔한? 장롱 면허도 없다.

그간 딸내미가 운전을 해주어서 우리가 다닐 수 있었다.

딸내미가 기차역까지 운전하고 갈 수는 있지만 그 차를 몰고 올 사람이 없으니 차를 역에 세워 두고 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밀고 올 수도 없다


내가 자동차 면허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 '헉 아니 왜요? 진짜요? 하며 사람들은 자기들이 더 놀란다.

비주얼은 대형차 면허도 있게 생겨서 소형차 면허도 없이 독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사실 나도 신기하다.


물론 그렇다고 독일에서 자동차 면허 준비를 전혀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아이들 어릴 때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을 해서 다녔다. 그런데 실기 준비하면서 내가 하도 큰 차만 가까이 오면 급브레이크를 빡빡 밟아 대는 바람에 면허학원 선생이랑 대판 싸우고 때려치웠다.

오늘날까지 대중교통과 자전거로 못 다닌 데가 없었고 지금처럼 커다랗고 무거운 가방을 들어 날라야 한다거나 대중교통으로 가기 애매한 곳을 갈 때면 언제나 남편이 차를 움직여 주었다.

그런 남편이 당분간 운전을 못하게 되니 엄마보다 운전면허를 훨씬 먼저 딴 장한 딸내미가 운전을 해 주었고 그 딸내미 마저 가야 하니 우리 집 차는 집 앞에 고이 모셔 두고 택시를 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진작 그깐 놈의 면허 따 둘걸... 살짝 후회가 되는 순간이다.



딸내미와 커다란 가방을 옛날 옛적에 학교 운동회 때 온 가족이 함께 했던 공 굴리기 공처럼 데굴데굴 굴려 대며 문밖으로 나가니 택시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친절한 기사 아저씨가 가방도 트렁크에 넣어 주시고 우리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기사 아저씨는 기차역으로 향하며 우리에게 고향에 가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딸내미가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방학이라 집에 다녀 가는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여행용 가방이라 공항에 가는 줄 알았다며 자기는 고향이 이란인데 갈 때마다 식구대로 45킬로의 가방을 가져간다고 했다.

식구 4인 기준으로 해도 190킬로다. 나는 거의 이삿짐인데요 라며 웃었다.

서글서글 이야기도 재미나게 해 주는 기사 아저씨는 이란 항공을 타면 그렇게 짐을 많이 싣게 해 준다며 어쩌다 고향에 한번 갈 때 일가친척들 선물 이것저것 담다 보면 그렇게 된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웃음 소리에 서로 마스크 쓰고 커텐 같은 칸막이 사이로 앞뒤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도 잊었다.

요 근래에 고향에 다녀온 적 있으시냐고 물으니 역시나 아직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그러나 언젠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갈 때가 올 거라며 그때까지 선물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이란 사람들은 독일에서 고향 갈 때 뭘 사가나 궁금해졌다.

"선물은 주로 뭘 준비하세요?"라고 물었다. 기사 아저씨는 남자들을 위해 색깔 좋은 넥타이나 여자들을 위해 화장품 들을 준비 하거나 조카들 줄 아디다스 신발 등을 챙긴다고 했다.

고향 떠나온 사람들은 조금만 이야기해도 동병상련인 것이 많고 통하는 것 또한 많다. 한참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데 기차역에 다 왔다.

요금은 12유로가 나왔다.한화로 약 1만 6천원 전차 네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생각하면 비싸긴 하다.우리가 전차를 탔다면 3유로씩 둘이 합쳐 6유로 택시비에 딱 반을 냈겠지만 전차 역까지 저 무거운 가방을 끌고 간 것에 비해 2배 빨리 도착했고 3배 재미나게 왔다.

우리끼리 전차 타고 왔다면 가방의 무게만큼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만 나누다 왔을지도 모른다.

역 안에서 딸내미는 내게 씩씩한 목소리로 "엄마 빨리 올게" 라며 손을 흔들고 기차 시간에 맞춰 플랫폼으로 내려갔고 나도 "그래 빨리 와!" 하고 웃어 주었다.

부모님 들이 바쁜데 오지 말라 는 이야기는 마음에 없는 소리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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