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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27. 2022

독일 마트에서 아침을 담는다


출근 전 이른 아침 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동네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마트는 독일에서 하루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 곳 중에 하나다.

독일의 동네 병원과 약국, 우체국, 관공서, 은행 등은 보통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에 시작된다.

그리고 시내 상점들과 쇼핑센터 들은 9시 에서 10시 사이 문을 연다. 그에 비해 동네 마트들은 이른 아침 7시 면 문을 열고 드물게는 6시와 6시 30분에 여는 곳도 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어두침침한 겨울의 이른 아침 마트를 가면 직원들이 채소, 과일, 유제품 등등 새로 들어온 물품 박스들을 여기저기서 뜯고 정리하느라 바쁘다.

그 부스럭 거림과 분주함 속에서 나는 문득 엄마와 가끔 다녔던 한국의 새벽 시장을 떠올리고는 한다.

예전에 새벽시장을 가면 펄떡이는 이른 아침과 만나 지고는 했다. 새벽어둠을 뚫고 여기저기 드르륵 소리를 내며 가게문 여는 소리, 좁은 시장 골목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우렁찬 목소리, 어디선가 스쳐 오는 짙은 커피믹스 냄새.. 매캐한 연탄불 피우는 냄새...

냄새 만으로도 생생히 그려지는 고향의 푸근한 정경들이 자아 내던 사람 냄새나는 감성이 이곳의 분주한 아침과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른 아침 마트 안은 손님보다 직원들이 더 많이 보인다

마트 직원들이 기계 위에 높이 쌓인 박스들을 밀고 코너마다 한 곳에서 하나하나 꺼내어 풀어낸다.

나는 손에 든 장보기 리스트를 한번 훑어보고는 카트를 밀고 코너 별로 빠르게 한 바퀴 돈다.

고기 칸에서 쇠고기 400그램짜리 한팩을 담는다. 독일 겨울은 비 오고 으슬으슬 추운 날이 많다 보니 국물 요리가 제격이다. 저녁에는 무장국을 끓여야겠다 유제품 칸에서는 뮤슬리와 베리 등을 넣고 아침으로 먹을 그리스식 푸어 요 크르트 6개짜리 한팩을 담는다.

그리고 점심으로 토마토 새우 파스타를 하기로 했으니까 냉동칸에서 잔새우 한 봉지를 넣었다.

이제 무 하나 토마토 조금 사면 아침 시장 보기는 끝이다.

워낙 자주 가는 곳이라 물건들의 위치 가 자동 입력되어 있는 마트에서 채소 칸으로 향했다.

때마침 직원이 박스들을 열심히 풀고 있었다.

뭐가 있으려나 유심히 들여 다 보니 새로 들어온 가지와 호박이 신선하다. 짙은 자주색의 동글동글 윤이 나는 서양 가지와 짙은 초록색의 호박 쥬키니가 탐스러이 반짝인다.


사실 가지와 호박은 리스트에 없었지만 신선한 채소를 보니 메뉴가 저절로 추가된다.

김치에 김 놓고 무장국 하나 끓여 때우려 했던 저녁상에 비빔밥을 추가하기로 한다.

비록 마른 나물은 마트에서 구할 수 없지만 신선한 채소들로 채워도 비빔밥은 언제나 옳다.

가지 숭숭 썰어 볶고 새우젓 들어간 호박 나물에 버섯 그리고 아시아 식품점에서 사도 놓은 숙주나물에

초록색 묻어 날 것 같은 싱싱한 상추와 매끄럽고 빨간 피망 썰어 넣고 계란 프라이 하나면 훌륭하다.

이 동네 가지는 우리네 가지와 생김새부터 다르다

옅은 자주색을 띠고 가늘가늘한 우리네 가지에 비해 이 동네 가지는 짙은 자주색에 튼실하기 그지없다.

예전에 엄마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통에 가지를 얹어 쪄서는 호호 불어 가며 따끈한 가지를 길게 길게 쪽쪽 찢어서는 간장 양념과 고소한 참기름 넣어 조물 조물 묻혀 주시고는 했다.

그런데 이 동네 가지는 그렇게 쪄서 하면 쉬이 물러져서 맛이 없다.

해서 납죽납죽 썰어서 볶으며 양념한 것이 식감이 훨씬 좋고 우리의 가지나물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동글동글 매끈한 자주색의 가지들을 골라 담으며 갑자기 피식 웃음이 터진다.

어디선가 들었던 속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있지 않은가? 재수 좋은 년은 자빠져도 가지밭에 자빠진다는 옛말이다.

그런데 이 동네 가지밭에 자빠지면 큰일 난다. 우리 옛말 중에는 은근히 19금이 많은 것 같다

그 옛날 조상님네들도 천연덕스런 음담패설을 좋아라 하셨나 보다ㅎㅎㅎ


이른 아침 출근 전 마트에서 직원들의 분주함을 배경 삼아 아침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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