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늦게 까지 드라마를 본 탓에 늦잠을 자버렸다.
덕분에 다른 날에 비해 30분 정도 늦게 산책길을 나섰다.
우리는 멍뭉이 나리와 공원 산책을 갈 때면 언제나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듯 가는 빵집을 먼저 가기로 한다.
빵집 앞에 늘어선 줄이 다른 때 보다 유난히 길어 보인다.
문 열린 틈으로 빵집 안을 들여다보니 아르바이트생들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일요일 아침이면 문을 연 곳이 많지 않아 바쁠 텐데 직원 두 명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우리 뒤로도 한참인 줄을 보며 조금이라도 시간 절약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미리 빵을 골라 놓기로 한다.
막내가 좋아하는 작은 빵 위에 치즈를 녹여 놓은 Käsebröchen빵 하나, 남편이 좋아하는 곡식 붙은 Mehrkornbröchen 빵 하나, 짭조름하고 고소한 Brezel 프레첼 하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먹을 때 아몬드 조각이 아삭 하게 씹히는 크림빵 하나 오후에 간식으로 먹을 치즈케이크 세 쪽 그리고 카푸치노 두 잔.
우리는 어떤 빵을 주문할지 정하고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일사천리로 주문을 끝내고 계산을 하려고 할 때였다.
빵집 직원의 다소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너무 바짝 오지 마시고 거리를 유지해 주세요!"
그 뒤로 우리 옆쪽에 있던 아저씨의 멋 젓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렸다
"빵이 잘 안 보여서 그래요 뭐가 있는지 봐야 고르 줘"라고 했다.
아마도 아저씨가 빵집 직원 쪽으로 너무 가까이 갔던 모양이다.
물론 서로 마스크도 쓰고 있고 빵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대 위로 바리케이드 치듯 플라스틱으로 막혀 있는데도 코 시국이라 너무 가까이 들이대듯 하는 건 아무래도 꺼림칙했던 것이고 서로 지켜야 할 방역 수칙에 어긋나기도 한다.
빵집 직원으로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나는 얼마 전 그 가슴 아픈 사건이 떠올라 괜스레 마음이 갑갑해 왔다.
그 사건은 지난 주말에 일어난 일이다. 이제 스무 살의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은(독일의 주유소는 우리의 편의점과 비슷하다) 맥주를 사러 주유소 안에 들어온 손님이 마스크를 착용 하고 있지 않자 마스크 쓰셔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건 일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 마스크도 쓰지 않고 들어와 맥주를 사려던 49세의 남자가 그냥 나가 버리더니 1시간 후에 마스크를 착용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르바이트생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 사건으로 이제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의 아무 죄 없는 청년이 꽃잎이 떨어지듯 생을 마감했다.
독일에서는 범법자에 관한 뉴스에서도 개인 정보에 관한 것은 최소한 의 것으로 하기 때문에 뉴스나 기사에 나오는 것은 그가 49세의 남성이고 코로나라는 전염병을 믿지 않는 그리고 정부의 방역 수칙에 대한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 정도다.
그 스무 살의 아르바이트생은 자동차 운전면허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그 비용을 벌려고 주말 알바를 나간 대학생이었다.
같은 세대의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 아까운 청춘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코로나라는 전염병보다 영혼이 병들어 가는 인간들이 더 무서운 세상이다.
한 모금 넘긴 카푸치노가 유난히 쓰다.
햇살이 자잘하게 퍼지고 있는 공원 안은 평화 로운 아침을 품고 있다.
인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자연은 묵묵히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짙은 가을 색으로 물들고 있는 나뭇잎들... 흘러가는 강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강물 위로 하나 둘 동그라미를 그리며 떨어지는 도토리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들.. 언제나와 같다.
나무들을 오가는 새들의 소리와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내는 푸른 소리들 만이 시간은 멈춰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 듯했다.
물 위에 오리들에게 가고 싶어 촐랑 대는 나리를 데리고 강 건너편 쪽으로 가려고 다리를 건넜다.
반대편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작은 갈색 강아지를 데리고 건너오시는 게 보였다.
다리 위에서 스쳐지나가듯 만난 할아버지는 그림 같이 아름 다운 풍경의 강물 위를 노니는 오리들을 보며 한마디를 건네신다.
"신기하지요? 개들은 이렇게 믹스가 많은데 오리는 믹스 가 없어"
"그러고 보니 진짜 그러네요" 하며 물 위에 오리들 한번 보고...
선문답 같던 할아버지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할아버지의 앙증맞은 갈색 강아지는 얼굴은 크고 다리는 짧고 귀는 길었다.
마치 비글, 웰시코기, 닥스훈트가 묘하게 섞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리 건너 하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빵 봉지에서 빵을 꺼내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침 풍경은 마치 우리가 그 숲의 일부가 된 듯 아늑했다.
아몬드가 아작아작 씹히는 달달한 크림빵은 쌉싸름하고 부드러운 카푸치노와 섞여 세상 행복한 맛을 선사해 준다.
딱딱하니 굳어 있는 근육을 스트레칭으로 사르륵 풀어내듯 어느새 우리는 마음까지 말랑해진다.
간간이 지나다니는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사람들...
다리를 건너오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앉은 벤치를 지나간다.
나는 먹던 빵을 삼키고 눈을 마주친 사람들에게 밝고 상큼하게 아침 인사를 나눈다. "굿텐 모르겐"
그런데 왜 인지 사람들이 내가 인사를 건넬 때마다 흠칫하며 빠른 걸음으로 우리 곁을 지나쳐 갔다.
왜지?
먹던 빵을 다 먹고 커피를 마저 마시고 나자 불현듯 지난번에 베를린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딸내미가 사는 동네 공원으로 나리와 아침마다 산책을 갔었다.
첫날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드물고 그곳에서 밤새 놀았던 것 같은 범상치 않아 보이는 젊은이 들을 지나쳐 갔다.
그리고 두 번째 날 아침에는 공원의 숲 속으로 나리의 볼일을 위해 전진하고 있었다.
우리가 숲을 가로질러가던 그때 벤치 위에 자고 있던 사람이 부스스 일어나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옆 어딘가에서 어떻게 가져왔는지 모를 마트용 카트를 덜그럭 거리는 소리를 내며 벤치로 밀고 왔다. 그리고 카트 안에서 입고 있던 옷과 비슷해 보이는 옷을 꺼내 걸쳐 입고 그 안에서 접시 등 살림살이 들을 꺼내 벤치 위에 차려 놓고 먹으며 구시렁 대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전 같지가 않아, 이걸 사람이 먹으라고 만들었나?" 하며 빵에 뭔가를 발라 대며 말이다.
그리고 서로의 발소리와 혼잣말 조차도 들리도록 조용한 숲을 살며시 지나가는 우리에게 "어이 거기 젊은 양반 내게 20 센트 후원할 생각 없소?"
라며 후원이라 쓰고 삥이라 읽는 것을 뜯으려 했다.
우리는 그 벤치 앞을 빠르게 지나 치며 그전날 역 앞에서 마주친 눈 풀 린 젊은 처자도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가격을 동결했는지 이 동네는 모두 20센트를 요구하네 라며... 그래도 우리 동네는 1유로 달라하는데 대도시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 그런지 양심 적이라고 우리끼리 이야기했었다.
그때 그 벤치가 떠올랐다.
아직 날이 추워 지기 전인 계절의 이른 아침 공원 깊숙한 숲 속의 벤치에서는 공원이 집이요 벤치가 안방인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가 있다.
거기다 때마침 우리가 빵을 먹던 벤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져가라고 둔 것인지 잠시 거기 놔 둔 것인지 모호한 종이 박스가 놓여 있었다.
그 박스 안에는 옷들과 신발 등 다양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혹 ,어느 분의 살림살이 일지도 모를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탁 하고 퍼즐 조각이 맞춰지지 않은가? 맙소사 그 벤치 위에 앉아 아침부터 빵을 뜯어먹으며 빙구 같이 웃으며 인사를 건넨 나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던 거다.
하필이면 집에서 편하게 입는 롱 카디건을 걸치고 한참을 걸어 들어오느라 헝클어진 머리는 빗질 덜된 듯 부스스 했다.
거기에 오늘따라 나리의 간식과 물통까지 챙겨 담은 커다란 가방까지 옆에 두었으며 빼박 인증이라도 하려는 듯 종이 박스까지 근처에 있었다. 그리고 매우 친절하고 해맑은 웃음으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 혼비백산 달아나듯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은 우리가 베를린 공원의 벤치에서 만난 아저씨와 내가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혹시 1유로 후원..." 소리가 나오기 전에 쌩하니 사라지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서서 총총히 사라져 간 사람들의 뒷통수에 대고 외치고 싶었다
" 저기요. 당황하셨어요? 나 아니에요, 아니라구,이 카디건 완전 가을 템인데.."
나의 엉뚱한?해석에 남편은 배꼽을 잡고 웃었고 나의 기막힌 삽질의 외침을 들었던지..
우리의 웃음소리가 넘크게 들렸던지....
풀밭을 거닐던 왠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까만 까마귀가 내게 시선을 맞추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던 까마귀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흐미~~ 징한그 또 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