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눈비가 내렸다. 이것이 눈이라면 추워도 포근한 느낌이 들 텐데 비라 차갑고 축축 하다.
딸내미가 있는 베를린은 첫눈이 왔다며 예쁜 눈 사진을 톡으로 보내왔다.
우리가 사는 카셀은 아직 첫눈이 오지 않았지만 날이 많이 추워졌다.
서늘하고 물기 어린 공기의 흐름으로 보아 여기도 조만간 첫눈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일요일 아침이면 날씨가 어떠 하든 우리는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조금 긴 동네 산책을 나간다.
산책을 하다 참새가 방앗간 가듯 들르던 곳. 빵가게. 사실 이 빵가게는 오랜만에 들렸다.
그동안 일요일이면 다른 빵가게에서 빵을 사거나 간단한 토스트를 해서 먹고는 했다.
그 이유는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했다.
어느 일요일에 언제나처럼 그 빵집에서 빵을 사는데 아르바이트생이 실수로 빵 하나를 덜 넣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러려니 하고 하나 덜먹고 말지 했을 텐데.. 그 빵은 막내가 꼭 먹고 싶어 하던 빵이라 가려던 길 멈추고 다시 받아 왔다.
그런데 집으로 오던 길에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주문 한 빵을 빼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커피값을 하나 더 찍었더라는 거다. 영수증에 떡하니 찍혀 있는 카푸치노 3잔 남편과 나는 그날 각자 한잔씩 들고 나왔다.
그럼 나머지 한잔은?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어쩌다 주말에 일나 오는 아르바이트생은 더더군다나 실수를 하기 쉬울 것이다.
빵 하나를 덜 넣었던, 커피값 계산을 잘못했던 그 아르바이트생이 조금만 상냥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뿡낀 놈이 성낸다고 주문했던 빵을 빼먹고 주지 않았던 본인의 실수를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눈 똥그랗게 뜨고 는 이제라도 주면 되지 뭐 하는 태도가 영 거슬렸다.
원래 사람이 상대방의 목소리 톤 이라던가 표정 이라던가 하는 그런 소소한 것들에 기분이 금세 상하기도 쉬이 좋아지기도 하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마시지도 않은 한잔의 커피값이 더 아까웠고 그 빵가게를 가기가 싫어졌다.
아마 몇 주는 그 빵집에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날씨가 스산해서 그런지 조금 늦은 시간 이여 그런지 빵가게 앞으로 늘어선 긴 줄이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는 다른 날 보다 훨씬 한산하고 조용했다.
이미 크리스마스 데코를 마친 빵집 안에는 우리보다 먼저 온 세 사람이 빵을 사고 있었다.
한 번에 맥시멈 네 사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한 명이 나올 때까지 빵집 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멍뭉이 나리를 빵집 앞에 강아지들이 대기하는 곳에 잠시 묶어 두고 열린 문 사이로 오늘은 무슨 빵을 살까 남편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날 막내가 먹고 싶어 했던 잡곡 빵들과 미니 케이크를 사서 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선택할 빵 메뉴 일요일의 아침 봉투에는 작은 빵 두 개 잡곡빵 세 개 크로와상 두 개가 들어 있다.
잡곡빵은 가짓수가 많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리는 다섯 가지 잡곡이 붙은 물티 빵과 해바라기 씨앗과 호박씨가 붙은 잡곡빵으로 골랐다.
우리 차례가 되어 빵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늘 나오던 직원 두 명 그리고 안경 낀 제법 빠리빠리 해 보이는 알바생 하나 셋이서 일하고 있었다.
그 띨띨하던 알바생은 없었다.그만두었던 잘렸던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우리는 갈색의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인사해 오던 직원에게 아까 미리 점찍어 두었던
일요일의 아침 봉투와 카푸치노를 차례로 주문했다.
그리고 조각 케이크 네 개를 고르느라 보고 있는데 옆으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와 우리와 똑같은 빵 메뉴 일요일의 아침 봉투 두 개를 주문했다.
나는 속으로 일요일 아침이라 식구들이 모여 아침식사를 하나 보다 했다.
우리가 보통 주말 아침 각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시간에 가족들이 둘러앉는 것을 선호하는 것과 조금 다르게 독일 사람들은 주말 아침을 함께 먹으며 가족 모임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요일의 아침 봉투에는 각각 7개의 빵들이 들어 있으니 합쳐서 14개의 빵이다.
일반적으로 4인 기준 가족이 두 가족 이상 모였을 때 먹을 빵의 양이다.
그런가 보다 하고 막내가 먹고 싶다던 치즈케이크와 베리 케이크를 담아 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옆 쪽에서 다른 직원에게 빵을 사고 있던 남자가 난감하다는 듯이 웃으며 " 어 이거 나눠 담아 주셔야 하는데.." 했다.
독일 빵 가게에서는 보통 베를리너 또는 쵸코 크로와상, 도넛 등의 달달한 빵 들과 잡곡빵 등은 알아서 나누어 담아 준다.
그리고 종류 다른 독일식 샌드위치 빵을 담을 때는 한봉 투에 같이 담아 드릴까요? 다른 봉투에 각각 담아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그런데 이런 같은 빵 메뉴를 두 개 주문한 경우는 미리 따로 담아 달라고 하지 않으면 한 번에 큰 봉투에 담아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자장면 곱빼기인 셈이니 말이다.
열심히 큰 봉투에 빵을 담았던 짧은 금발머리의 직원은 그럼에도 싫은 내색 없이 다시 빵을 쏟으며 "아유 내가 정말 이쁘게 담았었는데..." 하며 웃었다.
그 여유롭고 친절한 모습에 미안했던지 남자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친절한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아내가 코로나 여서 아침을 따로 먹어야 하거든요 미리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깜박했네요!"
왓뜨? 순간 모두가 얼음이 되었다.
아니 무슨 그런 얘기를 빵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빵 다 사고 나가면서 하니?
빵을 다시 두 봉투에 나눠 담던 직원도 우리가 주문한 조각 케이크들을 담던 우리 앞의 직원도 그 남자와 한참 떨어진 곳에 서 있었으나 같은 공간에 서 있던 우리도 모두 어린 시절 얼음 땡 놀이를 하듯 굳었다.
남들에게 핵폭탄급 발언을 하고도 자기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감이 없어 보이던 남자 1은
"뷰티플 위크앤드!"를 날리며 총총히 사라 졌다.
그 모습에 황당했던 모두는 어이없는 탄식을 내뱉었고 우리 눈치를 보고 있던 직원에게 우리는 얼른 문 활짝 열고 환기 한번 시켜 달라고 이야기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직원은 빵가게의 모든 문을 활짝 열고 우리에게 말했다.
"아니 저 코로나 맨이 말을 안 하고 들어 오니 우리가 알 길이 없지요!"
어느새 코로나 맨 이 된 이름 모를 공공의 적? 그 남자를 두고 우리는 "그러게요 빵 봉투 따로 담아 달라는 이야기보다 먼저 했어야 할 이야기가 그건데.."라고 했다.
요즘 워낙 독일 확진자수가 가파르게 올라가다 보니 전국적으로 방역수칙이 강화되었다.
기존에 3G라 해서 코로나 완치 증명서, 백신 패스, 코로나 테스트 음성 확인서를 제시해야 했던 쇼핑타운 백화점뿐만 아니라 작은 상점들이 2G라 해서 코로나 완치증명서 또는 백신 패스를 가진 사람들만 출입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완치 증명서 나 백신 패스 없으면 크리스마스 선물 사러도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먹고사는 가장 기본권이 달려 있는 마트 또는 빵가게 약국, 등은 그 방역수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방역수칙의 틈새인 셈이다.
코로나 걸린 부인과 함께 지내고 있는 남편 즉 감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를 사람을 함께 만났다.졸지에 전우? 가 되어 버린 빵집 직원들과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동시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층이 다른 곳에서 코로나 걸린 부인이 생활하고 있을지 시간을 달리 해서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독일에서는 같은 지붕 아래에 살고 있는 가족이라 해도 PCR 검사에서 음성이면 나머지 가족은 각자의 일상을 산다.
문제는 독일은 증상이 아주 심각해 입원하지 않는 이상 모든 확진자는 집에서 자가격리를 한다는 거다.
생활 치료 센터 이런 곳 없다. 즉 그 가족들이 PCR에서 음성이 나왔다 해도 언제 증상 없는 감염자가 되어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한 코로나 맨 이다. 조용히 집에 가서 한봉투에 담겨 있는 빵을 나눠 먹던 하지 굳이 빵집에서 그 이야기를 해야 했느냐 말이다. 딴사람들 괜히 불안 하게시리...
우리는 때 지난 영화 속 남의 대사를 코 평수 넓혀 가며 외치고 싶었다."꼭 그렇게 다 말해버리고 가야 속이 후련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