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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31. 2021

독일의 연차별 결혼기념일 다섯 가지 명칭


얼마 전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지나갔다. 부부는 서로 닮아 간다더니 기념일에 관심이 없남편과 오랜 세월 살다 보니 나도 요즘은 무덤덤하게 넘어갈 때가 많다.

사실, 결혼기념일이라 해서 별건가 365일 중에 하루지 싶기도 하고 정 그냥 지나가기 섭섭하면 어디 가서 맛난 밥 한 끼 먹고 오면 되지 했다. 물론 그것도 남편이 날짜를 제대로 기억을 하고 있을 때에 한 해서 지만 말이다.


희한하게도 남편은 비슷한 시기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번 더 했던 것도 아니요 결혼기념일이 매해 바뀌는 음력도 아니건만 해마다 날짜를 헛갈려한다.

뭐 이젠 그것마저도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한다.


그런 남편이 올해는 웬일인지 결혼기념일을 턱 하고 기억 해 냈다.

이번 결혼기념일은 은혼식을 한해 앞둔 24번째 결혼기념일이라 감회가 조금 남달랐던지 아니면 어쩌다 운 좋게? 기억이 탁 하고 났던 겐지 어쨌거나 기억을 하고 선물까지 들고 왔다.

선물의 내용을 보자면 후자 쪽이 유력 하기는 한데..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고 보니 기분도 좋고 우리가 결혼 한지 스물네 해나 되었구나 내년이면 벌써 은혼식 이 되는구나 싶어 마음이 촉촉해졌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부터

이런저런 감회에 젖어 있다가.... 독일에서도 결혼한 지 25년 되면 은혼식이라 부르는데..

그 은혼식 전에 결혼한 지 20년이 넘으면 뭐라 달리 부르는 명칭이 있나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독일 부부들의 결혼기념일 햇수에 따른 명칭과 상징적 의미 들이 쫘르륵하고 쏟아나왔다.


내가 알고 있던 건 결혼한 지 25년 되면 은혼식이고 50년 되면 금혼식이라는 것뿐인데..

결혼 1주년 기념일부터 결혼 100 주년 기념일까지 한해 한해 나와 있는 것도 있었다. 한참 넋 놓고 읽다가 눈 돌아갈 뻔했다. 우리가 결혼 100주년 기념일을 하늘나라에서 까지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고 그해가 그해 같은 적도 많았는데.. 100가지 결혼기념일 명칭이라니 내겐 너무 많은 정보였다.

그래서 조금 더 압축된 것들을 찾아보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주로 기념하는 결혼 연차별로 무슨 무슨 결혼식이라고 부르는 명칭 그리고 그 상징적 의미 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영어로도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서양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상징적 의미 옆에 그해에는 어떤 결혼기념일이니 이런 선물 강추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처럼 상술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그 연도별 결혼기념일의 명칭과 상징적 내용 에는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그 연도별 결혼기념일 즈음엔 우린 어땠더라?를 떠올려 보니 나름 재미있었다.


그래서...

내 맘대로 골라 본 독일의 연차별 결혼기념일 명칭 5가지...

지금부터 함 구경해 보실 랍니까?

우리의 신혼집이었던 대학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남편 생일 파티

우선 첫 번째로, 부부가 되자마자

결혼 서약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는 이름하야 푸르른 초록 결혼식이라 부른다.

독일에서 초록색은 안전하다. 또는 아무 문제없는 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는 신혼 초라는 의미 다.

한마디로 신혼은 아름다워..


기억해 보면 우리의 신혼 초는 각자 공부하느라 바쁘기는 했으나 함께 도서관도 다니고 학생식당인 멘자에서 밥도 먹고 날씨 좋은 날은 햇빛 쪼이며 커피 들고 독일 대학의 캠퍼스 안을 함께 거닐던 제법 알콩달콩한 유학생 부부였다.

그때 유모차 밀고 학생식당으로 식사하러 가던 한국 새댁이 커피 들고 도서관 앞 벤치에서 멍 때리고 있던 우리를 부러워하며 가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늘 하던 휴식이라 그게 그리 귀한 것인지 몰랐는데.. 막상 그 후에 내가 아기 유모차를 밀며 아기 깰까 조심조심 학생식당을 오가다 보니 그 짧은 자투리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 것이었던 가를 알게 되었다.

떡실신되어 비몽사몽 간이던 남편과 쿨쿨 자고 있던 큰아들

두 번째는

결혼 한지 1년 지나서는 목화 결혼식이라 부른다

결혼해서 1-2년은 아직 신혼이라 부를 수 있을 때일 것이다. 신혼이라는 단어가 따로 없는 독일에서도 그 시기는 목화솜처럼 포근하고 마냥 몽글몽글한 시기이자 고르고 골라 맞춘 디자인 잘빠진 테이블 보 같은 새롭고 쓸만한 시기를 상징한다. 여러 모로 아직은 마냥 좋은 때를 일컫는 것이리라.

우리의 그때는 어땠던가?


우리의 그때는 큰아들을 낳아 서툰 육아와 남의 나라 말로 해야 하는 빡센 공부를 병행하느라 떡실신이 되는 날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 큰아들은 아기 때 수시로 깨는 것은 당연했고 낮에 쿨쿨 자고 밤에 눈 말똥 말똥 뜨고 놀아 달라 하며 밤낮을 거꾸로 보내기도 많이 했었다.

우리는 부부 로서도 초자요 아이 육아도 초자라 힘은 힘대로 들고 모르는 게 많아도 제대로 물어볼 데도 없고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볼 수도 없던 때라 서로 날카로워져서는 부딫지는 일이 자주 있던 때였다

우리의 결혼기념일 1-2년 때에는 포근한 목화 결혼식이 아니라 서로 뾰족 해져서 닿으면 콕콕 찔리는 선인장 결혼식이었다고나 할까?


세 번째

결혼 한지 5년  지나면 나무 결혼식이라 부른다.

여기서의 나무는 늘 푸른 것도 있지만 서로 조금씩 자라며 함께 성장해 간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다. 지금 기억해 보면 우리의 결혼기념일 5 년 때 에는 둘째인 딸내미까지 낳아 아이 둘 데리고 공부하느라 서로 지지고 볶고 하는 것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다. 이제 결혼 5년 차쯤 되니 서로에 대해 사소한 것부터 모르는 것 없이 알게 되었음에도 서로 양보할 것들을 잡고 놓지 않은 체 함께 거칠게 성장해 가던 시기였다.

우리 아이들이 잘 놀다가도 별거 아닌 일로 머리 뜯고 싸웠 듯이...


네 번째

결혼 한지 10년 이 지나면 장미 결혼식이라 부른다.

결혼 한지 10년이 되면 부부간의 화합이 화려 하게 꽃을 피우는 것 같고 나쁜 것들은 가시로 남아 마치 장미꽃이 핀 것 같은 그런 때라고 한다.

우리는 결혼 10년 차에 장미꽃 같은 그것도 튼실한 큰 장미 같은 막내아들을 얻었다.

아이 둘과 셋은 천지 차이였다 그것도 큰아이가 초등 4학년 둘째인 딸내미가 초등 1학년인 때였다. 그야말로 이제 아이들 스스로 먹고 입고 학교 다닐 수 있도록 키워 놨더니 막내가 응애 하고 태어난 거다. 두 아이들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 때라 육체적으로는 조금 덜 힘들어도 학교 공부와 숙제 그리고 축구와 발레 등의 취미생활을 시작 한 때라 정신적으로 신경 쓸 것들이 급 늘어난 때였다.

그때는 그래도 다행히 나도 하던 공부가 끝나 있었고 남편은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던 때라 경제적으로 유학생 부부였던 때보다는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막말로 이제 좀 살만 하다 싶었는데... 학교 다니는 애들 키우며 그동안 잊었던 베이비 육아로 새 역사를 써야 하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쉴틈이 없던 때였다.

우리의 결혼 10주년 그즈음에는 부부 사이에 꽃 필 것도 가시로 남을 것도 없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낸 시기였다.



다섯 번째

결혼 한지 20년이 지나면 도자기 결혼식이라 부른다.

20년이라는 세월은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다.

독일에서도 그 긴 세월을 함께 해온 부부의 관계를 단단하고 고풍스러운 도자기를 비유해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의 20주년이 훌러덩 지나 24년이 된 지금은 어떠 한가?

아이들 일땅이 이 땅이 삼땅이로도 부족해서 이쁜 강아지 나리까지 입양을 했다.

한 지붕 다섯 식구에서 여섯으로 늘었다.

물론 두 아이는 대학생이라 매일 집에 함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처럼 다 모이면 여섯이다.

도자기 결혼식이 아니라 더 넓고 단단한 항아리 결혼식이라 해야겠다.

그렇게 그 세월을 함께 해온 우리는 이제는 서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는 촉이 생겼고 이래 저래 상대 에게 양보할 건 미리 양보하고 포기할 건 일찌감치 포기할 수 있는 배려와 너그러움이 장착되었으며 웬만한 일에는 웃고 넘기는 멘털이 되었다.



이번 결혼기념일을 어째 잊지 않고 챙긴 대견하신 남편은 자기는 꽃보다 닭이 라며 결혼기념일 선물이라고 먹지도 못하는 꽃다발 대신 닭 봉투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24번째의 결혼기념일 날 마누라를 위한 선물로 온 가족이 먹을 닭을 엥기시며 해맑게 웃고 있는 남편 덕분에 코로나로 매일 집에서만 먹어야 했던 가족들은 할아버지네로 닭 뜯으러 외식을 간 것처럼 행복한 점심을 집에서 먹었다.


그리고 꽃보다 닭이 입에 착착 붙지 않냐며 때 지난 남의 프로 패러디하고는 좋아라 하는 남편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

눈치가 없으면 어떤가 이렇게 웃게 해 주고 변함없이 옆에서 걷고 있으면 되었지...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의 인생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까지 함께해 온 세월만큼 그만큼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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