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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13. 2020

그날은 이상한 날의 끝판왕 이였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마치 누군가 작정하고 담은 듯 당황스러운 일, 기분 나쁜 일, 기막힌 상황 등이 종류대로 한자리에 모여 있는 날. 그렇게 종합세트 과자를 골고루 맛보듯 다양한 맘을 마주 하는 날..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아침 출근길이었다. 차가 신호 대기에 내리 걸리더니 늘 다니던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공사 차량이 들어와서 건축자재를 실어 나르시느라 길을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편이 이러다 늦겠다 싶어 다른 길로 가자고 돌아 나온 길에서는 청소차량이 앞을 턱 하니 막고 있었다. 예전에 우스개 소리로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만난다는... 내용은 조금 다르나 상황은 그러했다.

안 그래도 늦을까 봐 공사차 피해 다른 길로 왔더니 청소차를 만났다.


독일은 동네마다 쓰레기 치우는 날이 2주에 한번 주별 요일별 따로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는 재활용 쓰레기는 그달의 홀수주 인 첫 번째, 세 번째 주 화요일에 종합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는 짝수 주인 두 번째, 네 번째 주 금요일에 커다란 오렌지색 청소차가 와서 수거해 간다. 그날은 갈색 통들이 줄 지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동네 종합쓰레기 수거 날인 것 같았다. 한 줄로 줄 지워져 있던 통들을 큰 차에 기계로 얹었다 쏟아 넣고 다시 출발 그리고 멈춰 서서는 같은 패턴으로 무한 반복이다.

그전에 다른 길로 돌아간다거나 그 차를 앞질러 추월해서 가는 방법도 있겠으나 우리는 이미 다른 길에서 돌아 들어온 길이였고 그 길은 좁은 골목이라 추월해서 갈 수도 없다.

그저 그 차 졸졸 따라가며 같은 템포로 멈췄다, 섰다를 함께 반복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 그 길 벗어날 때까지... 거리 유지하며...

그러니 그 차는 속력을 낼 수도 없고 그 차 뒤에서 따라가야 하는 다음 차는 간격도 더 넓게 유지해 주어야 해서 시간이 엄청 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병원 문 열어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가니 갑갑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그날따라 다른 직원들이 개인 사정이 있어 늦게 나오기로 한 날이었다.

마음은 이미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차를 버려? 두고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청소차를 지나쳐 뛰고 있었다.


동네마다 종합쓰레기 ,음식물쓰레기 통의 색이 다른데 갈색 회색 또는 초록색.   *오른쪽 사진 출처 rbb

그날, 이상한 날의 끝판왕


우리 병원 환자들은 대부분 그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병원 문 열기도 한참 전에 와서 문 앞에 대기 중이신 분들도 있다. 또 어느 때는 우리 병원 진료 시작인 8시부터 10시까지는 조용하다. 예약 환자 들만 시간 맞춰 순서대로 오고 전화도 간간이 와서 ', 오늘은 숨 쉴 틈이 좀 있으려나 보다 한다'.

그런데 그런 날이면 이상하게도 10시 전후로 해서 동시다발로 환자들이 밀어닥칠 때가 있다. 마치 멈춰져 있던 장면이 다시 돌아가듯 또는 병원에서 만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예약환자, 응급환자, 그리고 종합병원에 입원한 우리 병원 환자 협진 등등 한꺼번에 밀려든다. 그럴 때는 한 손에 전화기 들고 진료실로 심전도 초음파 검사실로 환자대기실로 사무실로 병원 내를 종종 거리며 뛰어다닌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것은 옵션이다.


 그날 응급환자 가 생겨 엠블란스 태워 종합병원으로 긴급 이송 했다.

그날은, 전자와 후자가 교묘히 합쳐진 이상한 날의 끝판왕이었다.

병원 앞에는 정기검사 혈액 검사받을 환자들부터 예약 환자 그리고 병가 받으러 온 환자들까지 몇 명이 줄을 서 계셨다. 몇 분 늦게 도착한 우리는 헐래 헐래 병원 문을 열고 진료시간 전 시간적 여유 하나 없이 접수처부터 각각의 진료실들 컴퓨터 켜는 것을 시작으로 바로 진료가 시작되어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직원들이 그날따라 사정이 있어 늦게 출근하는 바람에 아침 시간 한 시간 가량을 혼자 뛰어다녀야 했다.

그렇게 오전 진료 시간 중간쯤 되어 이제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갔구나 했는데...

후자에서 처럼 갑자기 같은 시간대에 일이 몰리게 되었다.게다가 응급환자가 생겨 종합병원으로 긴급히 이송 해야 하는 상황 까지 터졌다.

사정이 있어 늦게 출근 했지만 부지런 한 스타일의 직원 BF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대체, 오늘 뭔 날이냐?"를 외쳤더랬다.


그날, 거기에 다가 뽀나스로...

진료 시간이 훨씬 지나서 간신히 오전 진료를 마치고 오전 중에 혈액 검사를 위해 채혈했던 혈액들과 검사서를 연구소로 보내고 났을 때 직원 GG가 말했다.

혈액 샘플 하나가 채혈 검사실 냉장고에 들어 있어서 빠졌다고... 개인 병원들의 혈액 등을 연구소로 가져가는 차량이 하루에 한 번 병원들을 지나 가는데 우리 병원은 연구소와 멀어서 거의 마지막 순서다. 바꿔 말해 그 혈액 샘플은 빠진 체 검사서만 보낸 그 차는 지금쯤 연구소에 도착할 때가 된 것이다. 결국 그날 우리는 혈액 샘플 들고 동네 저끝트머리에 위치한 연구소까지 직접 배달을 했어야 했다. 그것도 동네 공사로 여기저기 까뒤집고 막아 놓은 길들을 가깟으로 지나서...

더운 날,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 해 져 있었.

*사진출처 N -TV  요바로 위쪽에 보이는  빨간색 들어간 작은 기계가 문제의 센서 달린 적립 카드 센서
그놈의 적립 카드 때문에...


그럼에도 밥은 해 먹고살아야 해서 마트에 들려야 했다.

몇 가지 필요한 것 들을 빠르게 찾아 담으면 서도 머릿속으로는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가급적 짧아 보이는 계산대 쪽으로 카트를 밀고 가서 줄을 섰다.

앞쪽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차례로 동전 일일이 세어 내려놓으며 물건 하나하나 천천히 담고 계셨다.

짧은 줄이였으나 다른 줄 보다 한참이 더 걸려 내 차례가 왔다. 빨리 계산하고 집에 가야지 하는 마음에 날듯이 쿠폰을 모으는 립 카드를 기계에 올려놓았는데 삑 하는 소리가 나지 않는 거다.


마트에서 계산을 할 때마다 이 쿠폰 립 카드를 립해 두면 나중에 보너스 점수를 모아 쿠폰으로 투파, 또는 휘슬러 냄비 또는 쌍둥이 칼,여행용 가방 등 그때마다 하는 메이커 이벤트  들을 착한 가격에 데려 올 수 있어 유용하다.

해서 매번 잊어버리지 않고 립 해 두려고 하는데 날이 더워 기계도 더위를 먹었는지 작동을 안 하고 있는 거다.


계산대에는 금발머리의 젊은 처자가 얼굴의 반이상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눈만 내놓은 체 만사 귀찮다는  앉아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좀 전에 말했잖아요 카드를 더 위쪽으로 올리라니까요" 라며  센서기 쪽을 눈으로 흘기며 말이다.


독일의 마트나 상점에서 만나지는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그리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스타일 들은 아니다.

평소 독일 사람들의 무뚝뚝 표정과 투박한 말투에서 비롯된 느낌일 수도 있을 테고 서비스라는 개념이 우리 와는 달라서 이기도 하거니와 그 안에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 내지는 경계심 또는 차별을 가지고 있는 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그날따라 뭔 일이 연타로 터져서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립 카드가 센서에 제대로 안 찍히는 일 정도는 직원들이 카드 받아서 대신 찍어주던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카드를 대어 보시라고 손으로 표시라도 해준다.

그런데 그 처자는 아무런 제스처도 없이 날 선 목소리로 말로만 때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간 내가 만난 싹퉁머리 없는 직원 들 중 갑 오브 더 갑에 꼽힐 판이었다.


꼬인 날을 풀 수 있는 열쇠


오늘 아주 날을 잡았구나 싶게 아침부터 계속 꼬이고 꼬이는 일들의 연속이었던 그날,

나는 속에서 욱하는 것이 올라왔다.

'아 놔 얘 봐라 지금 나한테 대 놓고 짜증 낸겨? 언니 보기보다 무서븐 언니야 한번 해보자는 거지?' 하며 싸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의 두 눈과 전투태세 중인 나의 세모꼴이 돼있을 두 눈이 허공에서 만났다.

여느때 라면 계산뿐만이 아니라 이런 문제가 생기면 여기 앉아 있는 직원이 안내해 줘야 할 일 아니냐며 깍두기 썰듯 따박따박 따져 물었을 터인데...


그런데....그녀의 피곤 가득 담긴 눈망울과 마주하자 왠지 안쓰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불꽃이 치솟던 가스불 3단에서 1단으로 줄어들듯 빵빵하게 불어져 있던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그렇게 화가 나던 마음이 잦아들었다.

헤어스타일이나 옷 입은 스타일이나 언뜻 보이는 피부 상태로 보아 기껏해야 우리 딸내미 보다 두서너 살 많으려나? 그래 이 더운 날 마스크까지 쓰고 하루 종일 계산대에서 앉아 이런저런 사람 부때 끼며 니도 고생이 많다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거다.

크게 보면 병원도 서비스직인데 우리도 별의별 사람들 에게 별 시답잖은 일들로 시달리기도 하고 치이기도 하는데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마트는 오죽할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우리 병원 일상이 오버랩되며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극한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동병상련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 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덥죠 이런 날 숨 막히게 마스크까지 쓰고 일하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닐 거예요 어서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야 할 텐데 말이죠.."

그러면서 그녀에게 잘 안되던 립 카드를 들이밀며 "얘도 더위를 먹었나 보네요"하며 웃었다.

그녀는 내 뾰족한 눈초리에 곧 융단폭격이 쏟아질 것을 예상했다가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자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건네 준 립 카드 얼떨결에 자기가 받아서 삑 하는 소리가 나게 찍어 주고는 "쿠폰 스티커는 안 모으세요?" 한다.

나는 두 눈을 반달로 접으며 "아유 당연히 모으죠, 특히나 이번 이벤트 용품 중에 노리는 게 많아요" 했다.

그녀는 보통 5유로부터 한두 개씩 주는 쿠폰 스티커를 지꺼 아니라고 인심 좋게 뚝떼어 준다.

그리고는 받는 내가 당케 (고마워요) 해야 하는 데 자기가 줘놓고 당케 한다.


어쩌면 더운 날씨와 답답한 마스크에 지치고 사람들에 치이던 그녀의 순간에 내 어쭙잖은 몇 초의 유머가 작은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긴 하루였던 그날, 마트에서 돌아 나오며 나의 쳐진 눈꺼풀은 흘러 내려와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던 건 아마도 한 손 가득 받은 스티커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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