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로 급하게 한국을
다녀온후
아직 몸도 마음도
제자리를 찾지 못해
정신없는 가운데
간신히 강습 준비를 하다 보니
늘 챙겨 가던 수강생 들을
위한
간식도 만들 시간이 없었다.
이러다
수업 중에 배고픈 사람들이
속출하면 어쩌나 걱정하다가
언제나
맨 먼저 했던 이론 수업을
중간중간에 나누어 끼워 넣고
비빔밥부터 만들어 먹는 것으로
수업 내용과 강습 순서를 급 조절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을 스치는 기막힌
아이디어 하나!
그래~
내게는 비장의 무기
시어머니가 챙겨 주신
잘 익은 김장 김치와 백김치가
있다.
오늘 독일 사람들과
세 가지 종류의 김치 맛을 비교 평가 해
보는 재미난 시간을 가져 보자!
나는
우리 어머니 표의 시원하고 맛깔 스런
백김치가 인기 만발 일 것이라
예상하고
큰 그릇에 넉넉히 담아 갔다.
숙성된 김장 김치는 보기에도
빨간 것이 매워 보이고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이
익은 김치보다는 새로
버무린 겉절이를 선호하는 터라
조금 더 작은 그릇에 돌려 담았다.
왠지
어머니표 김치들을
하나하나
펼쳐 놓다 보니
어깨에 힘이 저절로 들어가고
미흡했던 수업 준비도
풍성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래, 제대로 된 한국 김치의 참 맛을
독일 사람들 에게 보여 주겠어."
하는 마음으로
수강생들에게 김치에 대한 설명과
김장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 들의 손맛까지
두루 소개하고
비빔밥과 함께
초고추장 소스, 간장 소스
그 옆에 우리 시어머니표
김장 김치와 백김치
그리고
수강생들이 바로
버무린 겉절이
이렇게 세 가지 김치를 각자 한 접시
에 담아 먹고 난 후
평가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 과는 다르게
거의 모든 수강생들이
맵기는 하지만 김장 김치의
맛이 그중 최고라고 평가했다.
땀을 삐질 삐질 흘리고
손으로 연신 부채질 해 가며
물을 벌컥벌컥 들어마시면
서도
독일 사람들이 처음 맛 본
한국의 제대로 익은
새 빨간 김장 김치를 계속해서
맛나게 먹고 있는 진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다른 김치에 비해
왜 김장 김치가 더 맛있느냐?
고 물었다.
놀라운 것은
김치를 생전 처음 먹어 보는
독일 사람들 에게도
맵지 않은 백김치의
톡 쏘면서도 알싸한 시원한 맛과
방금 버무려 신선한 겉절이의
아삭 거리는 식감보다
젓갈, 마늘 등의 양념의 날 냄새가 적고
골고루 베어
깊은 맛이 우러나는
빨간 김장 김치의 감칠맛 이
탁월하게 어필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들고 온
시어머니표 김장 김치가
독일 사람들에게 그 진가를
발휘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