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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11. 2021

글이 잘 안 써질 때 하는 나의 작은 습관



독일에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주택가의 집 앞 놀이터 또는 골목길 길가의 땅바닥에는 알록달록한 분필들로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눈에 자주 띈다.


옛날 옛적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놀이를 하기 위해 하얀 분필로 골목길에 선을 긋고 숫자를 쓰고 있노라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꼭 한소리씩 하시고는 했다."이거 이따 지우고 가라!"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동네에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아이들이 칼라풀한 분필로 마구 그려댄 것들로 한가득 채워져 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그것을 일부러 지우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이 색색의 분필들은 이름도Straßenkreide 길거리 분필이다.

꼬마 예술가들의 길거리 그림들은 비 오면 지워져 있고 또 다른 날 다른 그림이 그 자리에 있고는 한다. 달력 넘어가듯...


나는 가끔 이 길거리 분필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처럼 하얀 종이 위에 두서없이 낙서를 한다.

그렇게...

선 몇 개로 이어진 그림은 마당에 피어난 튤립 꽃이 되기도 하고 뭉개지듯 명암만 나타난 실금들은 누군가의 실루엣이 되기도 한다. 또 주인을 닮아 동글납작한 글씨 들은 어떤 것은 단어가 되기도 하고 또 어느 것은 오리가 꽥꽥 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처럼 의성어로 남기도 한다. 그 낙서 안에는 친구의 이름도 있고 오늘 저녁 메뉴도 적혀 있으며 진상 환자의 뒷모습에 똥침을 날리기도 한다.

어느새 하얗던 종이는 무언가로 꽉 차 있다. 낙서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흡사 나만의 비밀 호들 같다.


브런치 에서 글을 쓰다 보면 대단한 명작을 남기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숨이 차오를 때가 있다.

아주 오래전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산을 처음 오르던 그때처럼 말이다.

이름만 산악부이던 그 시절 선배의 "안 높아 동네 뒷산보다 조금 높을걸?"이라는 구라에 넘어가 첫 산행을 갔던 산은 높이 638 미터의 수락산이다.

동네 뒷산은 개뿔..


그때 걷고 또 걸어도 저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미 그 산꼭대기까지 다녀와 내려가는 사람들이 남긴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라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고 한참을 그렇게 걸어도 변함없이 꼿꼿이 서있는 산봉우리는 아까 그 자리 그대로 인 것 같았다. 젠장.. 진작 믿어 의심했어야 했다.


내게 낙서는 그때 산속에서... 이제 더는 못 가겠노라 징징 거리며

"다들 내려올 때까지 여기서 버틸 거야!" 라며 주저앉았던 넙적하고 평평하던 바위 같다.

거기 앉아 숨을 고르며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으메 힘든 거.. 내가 미쳤지 산에 안올라 가면 세금 내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이 짓을 하는겨, 산 정상에 올라가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이런 띠.. 정상까지 다녀온다고 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것도 아니고... 계속 가야 해? 아님 왔던 길 되돌아 뒤도 안 돌아보고 쌩 하니 내려가야 해?"

그날,결국 그 바위 위에서 온갖 땡깡? 다부리고는 헐떡이던 숨이 자자 들자 나는 다시 꾸역꾸역 올라가서 수락산 정상까지 갔다.그렇다고 내인생이 한개도 달라진 것은 없지만 말이다.


나는 오늘도 낙서 안에서 그때처럼 나만의 숨 고르기를 한다.

"그래서 쓸 겨? 안 쓸 겨?" 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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