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병원에서 제일 화려한 요일은 누가 뭐래도 수요일이다.
이유는 바로 백신 접종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이 몰려 있던 수요일이었다. 오전 중에 50명이 넘는 환자들을 접종해야 해서 시간대 별로 서류 처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백신 접종 후에 환자들의 예방접종 패스에 날짜와 찍어 줘야할 병원 도장과 붙여 줘야 할 백신 스티커 들을 가운 주머니안에 넣었다.
그리고 서류들을 모아 준비한 서류철을 들고 우리 병원의 Labor주사실 로 향했다.
이제 곧 환자 대기실에서 백신 접종에 관한 의사 설명을 우리병원 원장쌤 에게 전해 들은 환자들이 차례대로 주사실로 들어 올 터였다.환자 명단을 눈으로 훑으며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손가락을 풀고 있었다.
땅! 하는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바로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100미터 달리기 주자처럼....
그런데...
접종을 받기 위해 주사실로 들어온 환자 중에 1명이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뜬금없는 질문을 날렸다.
"내가 지금 접종받을 백신 이름이 뭐죠?" 순간 주사를 놓으려던 동료 직원도 탑처럼 쌓아 올린 서류철들을 사이에 두고 파묻히듯 책상에 앉아 그 환자의 진료 기록을 열며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있던 나도 동시에 빠르게 대답했다 "비욘텍이요(독일어 발음 때문에 같은 화이자를 여기서는 바이온텍 화이자 또는 비욘텍이라 부른다.)
그랬더니 그 환자가 손톱으로 칠판 긁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냥 물어본 거잖아요!" 라며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누가 뭐랬니? 환자의 어처구니없는 짜증에 욱하는 것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첫 번째 접종도 아니고 두 번째 접종이며 교차 접종이 아닌 이상 달라질 것이 없는 백신의 이름을 그것도 방금 의사의 설명을 다 듣고 주사 맞겠다고 들어온 사람이 할 질문인가?
이건 중국집에서 방금 전에 지가 짬뽕시켜 놓고 음식이 나와서 서빙 보는 분이 짬뽕 그릇 코앞에 내려놓는데 "그거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는 것과 뭐가 다른가.
게다가 그 어이없는 질문에 답을 안 해 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두 명씩이나....
그래서 그 환자가 동시에 두 명이 뭘 그런 걸 물어 라고 타박하듯 답을 해줬다고 느꼈는지...
아침에 병원에 오는 길에 개똥을 밟았는지.. 부부싸움을 했는지.. 그도 아니면... 마스크 쓴 얼굴에서 지금? 여기서? 그걸 물어? 하는 물음표가 그 찰나에도 느껴졌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어떤 이유로도 병원 주사실에서 신경질 부리며 소리를 지른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성질 같아 서는 그 환자에게 똑같이 소리를 질러 주고 싶었다.
"니가 물었잖아요? 그래서 대답해 줬잖아요! 뭐가 문제죠?비욘세와 비욘텍이 헛갈려요?"하고
그러나 뒤에서 쭈뼛거리고 서있던 실습생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다른 환자들에게도 굳이 소란 스런 풍경을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꾹 눌러 참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넘어가자 그 환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접종 후에 사근 사근 감사의 인사까지 하고 나갔다.
이런 미췬...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디서도 만나 보기 힘든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 있네 할 때가 있다.
그렇다 보니 원래도 성격이 그리 유하지 못한 나는 성질대로 못해서 몸에 사리가 쌓일 지경이다.
그러다 엉뚱한 것에 예민해지고 징크스까지 생겨 났다.
그 징크스는 이러하다.
우리 병원은 의사는 하얀색 긴 가운 또는 초록색 짧은 가운을 입는다.
그리고 우리로 하자면 동네 개인병원 간호사 선생님들과 종합병원 원무과 직원을 섞어 놓은 듯한 일을 하는 독일의 MFA 의료전문인 즉 우리 병원 직원들은 하얀색 짧은 가운을 입는다.
그 가운 안에는 뭘 입 든 자유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공교롭게도 흰색 가운 안에 빨간색 옷을 입은 날마다 특별한 손님들을 만나 뚜껑이 열리기 직전까지 가고 는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빨간색 옷이 징크스가 되었다.가뜩이나 백신에 관련된 업무들이 집중되어 있고 제일 스트레스 받기 쉬운 날인 수요일 이면 의도적으로 빨간색 옷을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었다.
왜 운동선수 들이 큰대회에 나갈 때 무슨 징크스가 있다는 둥 또 어떤 옷을 입고 나가면 꼭 이긴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이 있지 않은가?
그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종전의 앉은자리에서 신경질 부렸다 새새 거렸다를 반복하던 환자와 비슷한 그리고 그보다 더한 사람을 만나게 된 그날도 원래는 빨간 티셔츠를 입으려 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아차 하며 손에 들었던 빨간티를 내려 놓았다.
그런데...
그순간 왠지 내가 너무 징크스에 연연하는 것 같아 존심이 상하더라는 거다.
그래서 소심한 반항?으로 다가 빨간색 빤쥬를 입고 갔었다
그리고 그날....
내가 속으로 '악..젠장 빨간색 빤쥬!'를 얼마나 목놓아 외쳤는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수요일이면 하얀색 티셔츠에 하얀색 바지에 하얀 빤쥬까지 올 화이트로 출근한다.
그리고 병원에서 그위에 하얀 가운을 입는다
거기에 머리를 틀어 올려 묶는다. 일명 똥머리..
그리고 나면 전투 준비 끝이다.
예전에 노래 중에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이라는 것이 있었다.
수요일 아침이면 난 거울 앞에 서서 "수요일엔 하얀 빤쥬를 "이라는 요상한 노래를 부른다.승리를 다지며 음산한 웃음을 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