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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03. 2021

아이스 없는 독일 여름은 상상할 수 없다

어느 날 여름이 우리 안으로 훅 하고 들어 왔다


라일락 꽃 피고 이제 봄인가 보다 했는데 어느 날 집안으로 여름이 훅하고 담너머 들어왔다

17도 20도 사이를 오가던 온도가 급 상승해서 어제는 낮 기온 30도를 웃돌았다

몇 년 전 여름에 딸네 집을 방문하신 울 엄마 께서는 볕 안 들어오고 시원하다고 "너거 집은 여름용 집이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우리 집에서 근무 끝나고 늦은 점심을 먹고 앉았는데 집안으로 더운 기운이 솔솔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 집이 이 정도면 바깥 기온은 상당하다는 이야기다.

아니나 다를까 일기예보에서는 26도까지 간다더니 한낮기온 30도 땡볕 받은 차 안 기온 34도였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백신 접종하고 난 후라피곤하기 그지없는데 날까지 더우니 더위를 먹은 듯 머리는 멍해지고 몸은 흐물흐물해졌다.


그러나 오늘은 남편의 안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 푹한 뜨거운 바람을 마주 하며 차에 올랐다.

병원에 도착 하자마자 보이는 길건너 반가운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사람들이 줄을 늘어선 것이 보였다

귀여운 아이스크림 간판만 보아도 왠지 조금은 시원해진 느낌이 든다


병원을 개원하기 전 남편이 다니던 종합병원 앞에는 우리 동네에서 유명한 아이스 가게가 하나 있다

여름 한철 장사해서 겨우내 휴가 간다는 아이스크림 맛집이다.

남편이 여기 병원에서 일하던 때의 여름에는... 종종 점심시간에 남편을 만나러 오기도 했었다.마치 짬내서 데이트를 하듯이..

그럴 때면 이 가게에서 늘 아이스커피를 마시고는 했다.

우리의 베스킨 어쩌고 하는 곳에서 파는 것같은 부드럽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독일에서는 아이스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얼음 그 네모나고 각진 아이스를 독일에서는 무어라 부르느냐 하면 생긴 것이 네모난 주사위 같이 생겼다 해서 Eiswürfel 아이스뷔어펠 이라 한다

그럼 아이스커피는?

(독일 아이스커피와 한여름의 외출)

독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준말이라는 신조어)인 나는 얼음이 수북이 들어 있을 것이라 상상한 아이스커피가 아이스크림에 거기다 생크림까지 얹어져 거이 파묻힌 커피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기겁했었다

지금이야 수십 년 살다 보니 이 아이스크림에 묻어버린 커피 독일식 아이스커피가 익숙해져 버렸지만 말이다.



독일 사회는 느리게 변하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는 되게 순박하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하다.

특히나 음식에 있어서는 늘 먹어본 것 익숙한 것들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한 번씩 구경을 가고 먹어보고 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게 그때만 반짝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에서 몇 년 전에 히트를 쳤던 두 개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하나는 드래곤 이라 해서 불을 뿜는 용이 아니라 얼음을 뿜는 용이다 는 드라이아이스 같은 얼음 덩어리를 파는 곳이 시내 쇼핑몰 안에 생겼었다.그 당시 아이들 중에 안 먹어 본 애들이 없다길래 우리 막내를 데리고 갔었는데 맛이고 뭐고 어찌나 차갑던지... 허연 입김 같은 것이 모락모락 나오는 것이 아이들이 신기해서 좋아라 했지만 소프트한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우리 옛날에 먹던 딱딱한 하드에 가까웠는데 이가 시리기만 하고 뭔맛인지를 통 모르겠는거다.

아무리 아저씨가 현란한 동작으로 마술쇼를 하듯 얼음 구슬을 쏟아 내도 다시 먹고 싶은 맛은 아니였다.

보통,바닐라,요쿠르트,쵸코,딸기,체리,호두,...등등 다양한맛의 아이스크림에 적응이 된 독일사람들에게 니맛도네맛도 없는것이 차갑기만 해서는 어필하기 쉽지 않을텐데...했었다.

그리고 또 한군데는...


핫케이크를 굽는 것 같이 생긴 판에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마치 종이꽃처럼 생긴 또는 작은 팬캐익 접어 놓은것 같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았었는데 여기도 한동안은 성지순례 가듯 사람들이 줄지어 가서 기다렸다 먹고는 하던 곳이다.비쥬얼은 그럴듯 했지만 독일 사람들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맛 이였던 탓일까? 그래서 였는지..,두 군데 모두 그여름 반짝 하고 문을 닫았다.


독일에서는 아이스크림 가게 외에도

아이스크림을 팔고 다니는 차가 있다.

이름 하여 Eiswagen 아이스바겐 (아래 사진)

봉고 같은 차에 아이스크림 통들을 담고 차로 이동하며 공원, 호숫가, 시내 등등 사람들이 모일 만 한 곳들을 찾아 다니는 이동식 아이스가게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독일의 남부 바이 어른 주의 에얼랑엔이라는 작은 도시에서는 동네 안으로 여름 내내 매일 오후마다 오는 아이스 자동차가 있었다.

마치 예전 우리 어릴 때 두부나 메밀묵을 팔러 다니던 아저씨들이 흔들던 종소리처럼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동네를 활보하고는 제일 중앙에 차를 세워 두었다.

그러면 동네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줄을 섰다. 아이스크림 먹겠다고..

우리 막내는 아기 때 그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형아와 누나가 "우와 아이스다!" 하며 뛰어 나가고는 해서 엄마, 아빠보다 먼저 아이스라는 말을 했었다.

그렇다 우리 막내의 생애 첫 단어는 엄마도 아니고 아빠도 아닌 아이슈였다.

아이스크림을 과자 같이 생긴 콘에 담거나 또는 종이컵에 담아주는걸로 선택할수 있다 종이컵에 담긴 쵸코 는 엄마꺼^^
식구대로 서로 다른맛의 아이스크림을 선택해 나눠 먹으면 서너가지 맛을 동시에 즐길수 있다.식구 많은집 장점^^
몇 년전 여름의 공원....아이스크림든 우리집 삼부자...놈놈놈 마른놈,귀여븐놈,배나온놈 ㅋㅋ

남편의 정기검진 결과는 좋았다. 수술한 오른쪽도 아직 수술 전인 왼쪽도 안압이 안정권에 있었고 기타 검사에서도 잘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서며 맞은편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축구를 하다 왔는지 운동복 차림의 꼬맹이 뒤에 줄을 서며 한참이나 반짝이는 눈망울로 아이스크림 메뉴판을 들여다 보는 그아이나 우리나 같은 모습 이라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남편은 요구르트에 사과,키위,딸기,바나나,멜론 등의 과일 들어간 아이스크림, 그리고 나는 아이스 카페를 시켰다.

우리는 서로 나누어 먹으며 길을 걸었다.

멀리서 마주 오던 할아버지 손에도 들린 아이스크림...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눈가가 접혔다.

웬만해서는 길 에서 무얼 먹고 다니는 경우가 별로 없는 독일에서 아이스만큼은 누구나 들고 다니며 먹는다.

즐겁고 달콤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 안에서는 마냥 들뜬 목소리의 디제이가 여름 날씨가 찾아왔음을 드디어 아이스크림을 즐길 시기가 돌아 왔음을 신나게 떠들어댄다.

누가들으면 올림픽 메달 딴줄 알것네..

만약 독일 여름에 아이스가 없다면?상상이 가질 않는다.그건 우리의 여름에 빙수와 물냉면 또는 콩국수가 없는것과 같으려나?


어느날 여름은 그렇게 우리 안으로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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