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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12. 2021

우리 동네 소방차 강아지 나리


여느 때와 다름없이 종이들과 빈병을 버리기 위해 모아둔 커다란 바구니 두 개를 들고 현관 앞으로 간다

그러면 우리 집 멍뭉이 나리는 언제나 정원문 앞으로 쪼르르 가서 문 열어 달라고 꼬리를 흔들어 댄다.

이것은 나리와 나만의 놀이가 시작됨을 알리는 시그널 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이 녀석은 쓰레기 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내가 저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누가 먼저 도착 하나 달리기 놀이를 하는 것인 줄 안다.

정원문 을 열어 주고 요이 땅! 하는 말과 동시에 내가 바구니를 들고 현관문을 나서면 나리는 꼬리를 일자로 펴고 신나게 정원을 가로질러 달려 나간다.

그리고는 컨테이너가 보이는 울타리 사이 일명 우리가 나리 자리라고 부르는 곳에 턱을 괴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이제 왔쪄?내가 이겼쪄요!"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나는 들고 나온 쓰레기 바구니에서 종이들과 유리병 들이 떨어질세라 속력을 다해 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부러 크게 헉헉 거리며 "우와 나리 진짜 빨라 나리 승!" 하고는 승리의 포만감에 취해 나른해진 나리의 표정이 너무 귀여워 격하게 쓰담쓰담해 준다. 짜아식! 이럴 때 나리는 마치 영화 패딩턴에 나오는 곰돌이 같다.  


그렇게 바구니를 들고 집 앞 동네에 설치되어 있는 컨테이너로 향한다.

독일은 동네마다 이렇게 종이들만 따로 모아 버리는 통들과 흰색, 초록색, 갈색 등으로 색깔 구분해 버리도록 되어 있는 유리 버리는 통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우리 집 앞에도 짙은 초록색 지붕 얹고 있는 커다란 세 개의 종이 버리는 통들과 그 옆으로 유리병들을 색깔별로 나누어 버리도록 되어 있는 철제 통들 일땅이 이 땅이 삼땅이가 서 있다.


이 통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그 줄 제일 아랫집인 우리 집을 선두로 한 블록 위쪽까지 이 근처 주민들이 버리 도록 만들어 놓은 통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집집마다 택배도 많이 시키고 해서 버려야 할 빈 박스와 종이들이 더 자주 모인다.

돌아서면 피자, 마트 광고 전단지, 보험, 은행, 철도청 등에서 오는 알림 광고 편지들이 즐비하게 쌓이고 장에서 채소, 과일 들 담아온 종이들도 한참이다.

또 병들은 어떠한가 잼, 토마토 소소, 올리브유, 식초 등 병들도 줄줄이 나온다.

왼쪽 부터 흰색,갈색,초록색 유리병 버리는 통들....
종이와 종이성분으로 박스 들을 버리는 컨테이너 통들...

그래서 그런지 지네 동네 에다 버리고 그 통들이 꽉 차면 통 비어 질 때까지 기다렸다 버려야 하는데 집에 쌓아 놓기 싫어서 나머지를 자동차에 싣고 남의 동네까지 원정?을 나오셔서 버리고 가는 얌체족들이 많아졌다.

뭐, 종이, 유리 등의 쓰레기 마빡에 어느 동네 몇 번지에 사는 누구네 집 꺼 라고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 머리 디리 밀고 버리는 게 임자인 게다.

그러다 보니 이 컨테이너 앞에서 한국의 아파트 촌에서 주민들이 쓰레기 버리다 만나 지듯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초록색 지붕을 열고 종이를 버리고 뚜껑을 닫으려는데 어느새 왔는지 앞쪽에 양손 가득 빈종이 박스를 들고 서있는 젊은 남자가 하나 보였다.

그 뒤쪽 주차장에 낯선 작은 파란색 자동차를 보아하니 요놈도 얌체족 이렸다.

입은 너 이 근처 안 살잖아요? 차 타고 오느라 애쓰지 말고 쓰레기는 걸어서 버릴 수 있는 너네 동네에다가! 오케이? 여기도 꽉 찼어 야!라고 지껄이고 싶었지만

내가 이 동네 부녀회장도 아니고 또 얍쌉하기는 해도 윗동네에 사는 사람은 아랫동네 쓰레기통에 버리면 안 된다는 법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뭐라 그러기도 좀 애매했다.

단지 못마땅한 눈빛으로 레이저를 쏘아대며 초록색 뚜껑을 야멸차게 닫아 버리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종이로된 온갗 종류가 들어 있는 통은 눈깜짝할새 차고 넘친다

뻘쭘히 서 있는 젊은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봐 주고는 쌩하니 지나쳐 가려는데 그놈이 저기.. 하고는 주춤주춤 말을 건다.

콧잔등이가 낮아서 맨날 미끄럼 타는 안경테를 괜스레 끌어올리고는

나름 도도한 눈빛을 장정 한 체 언제든 발사해 주겠어 하는 느낌으로다가

"넹? 저요?" 하고 뭐? 왜? 하는 투로 물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동차까지 동원해서 남의 동네에 원정 쓰레기 투척을 오신 얍삽이가 잘생겨서가 절얼대 아니다.


나리와 나의 세리머니를 라이브로 보았을 그 얍삽이가 나리를 가리키며 " 쟤가 그 소방차 강아지 맞죠?" 하는 거다.

일단 나리를 알은체 해 오는 것에 그 젊은 남정네를 향한 저는 모를 얄미운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방금 말한 소방차 강아지라는 말에 너무 웃겨서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나는 좀 전과는 사뭇 다를 느낌으로 되물었다.

"아니 우리 나리가 왜 소방차 강아지 에요?"

그랬더니 그 젊은이(얍삽이에서 젊은이로 급 승격!)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조기 위에 보이는 아파트 사는데요. 쟤가 되게 이쁘게 생겼잖아요.이쁜 아이가 소방차 지나다닐 때마다  어우 어우 울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쟤를 소방차 강아지라고 불러요."

독일의 소방관과 소방차  동네로 출동 자주 나온다.

그렇다 우리 나리는 아주 특별한 비주얼을 가졌다. 꼭 우리네 시골 사는 시고르자브종 같이 생겨서 이 동네에서는 흔히 볼수없는 몽타주다. 고로 한번 본 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다. 거기다 엠뷸런스가 지나가거나 소방차가 지나갈 때 삐용삐용 소리가 들려 올때면 언제 어디서나 발딱 앉아서는 오우~~! 하고 사이렌 소리에 맞춰 소리를 보탠다.


누군가는 우리 나리를 시베리안 허스키와 혼돈하고 "예쁜 허스키 썰매는 어디다 뒀누?" 하고 묻기도 하고 또 어느 누군가는 클라이네 바이데( 원래 우리 집은 독일 레스토랑이었다.)사는 강아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소방차 강아지라고 부른다.

알고 보니 우리 나리는 이 동네에서 아이디도 여러개인 셀럽 강아지였다.

내 동생 곱슬머리~로 시작하는 한국 동요가 있다. 그 즐거운 동요의 가사 속에 동생은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다.곱슬머리 동생을 엄마는 꿀돼지 아빠는 두꺼비 누나는 왕자님으로 부른다고 나온다.불현듯 그 노래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어느새 집 앞 울타리 근처 종이 컨테이너 앞에는 쓰레기 얌체족에 눈에 불을 켜던 올곧은 주민1은 집 나간 지 오래였고 멍하니 서서 얍삽이에서 젊은이로 승격된 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 속없는 아즈매와 울타리 너머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열라 하나 보다 라는걸 알기라도 하듯 앞발로 마구 귀를 긁고 있는 나리만 남아 있었다.


나리는 자동차 안에서도 옆으로 소방차가 지나가면 어김없이 어우~! 한다. 노래를 부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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