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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21. 2018

나리와 산책길에 꿀맛 같은 커피 한잔


가을이 오려는지 제법 선선해진 햇살 퍼지기 전의 아침 공기는 한없이 청량하다.

바람에 살랑 대는 가로수 나뭇잎 사이로 이제 따도 될 만큼 실하게 여문 보랏빛 자두가 파란 하늘 아래 그림처럼 드리운다.


맑은 날씨 덕분인지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어디론가 바삐 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아침이다.

그중에는 아이들 시간 맞추어 유치원 데려다주느라 전투적으로 움직이는 부모 들도 있고... 누군가와 아침 약속이 있어 가는지 잔뜩 모양을 낸 듯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 들도 있고... 살고 있는 집이 회사에서 가까워 조금 느지막이 출근하는 사회 초년생 들도 있으며.... 친구들과 여유롭게 하이킹을 가는 헬멧 사이로 멋진 은발이 출렁 이는 건강한 노년 들도 있고... 강의 시간에 맞추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대학생 들도 있다.

늘 비슷한 산책길을 걷고는 하지만 분명 우리가 만난 어제 아침 과는 또 다른 오늘 아침이다.

독일에서는 길 바닥 청소 할때..쓰레기를 한번에 이렇게 커다란 솔 달린 청소차로 쓸어 모으고 모여 있는 쓰레기 들을 환경 미화원 들이 다른 큰차에 쓸어 담는다

경로 변경


그런데.....
잘 걷던 나리가 갑자기 우뚝 하니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급한 용무가 있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동작으로

길 가다가 나리가 멈춰 설 때는...

보통은 저 맞은편 쪽에 다른 강아지 가 다가오고 있거나 바로 앞쪽 풀밭 위에 작은 새들이 종종 거리며 다니고 있을 때 등의 이유가 있을 때인데....

그런 것 없이 늘 다니던 대로변을 끼고 있는 우리 동네 기계공학과 등이 소속되어 있는 공과 대학교 앞(독일의 대학들은 단과대 별로 건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따로 캠퍼스라고나 할까 )을 지나가려고 할 때였다.

날씨 좋은 날 한 번에 깨끗이 청소를 하려는지 대로변에 빗자루를 들고 모인 여러 명의 환경 미화원 분들과 청소 차량들이 분주한 소리를 내며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아하 이거로 구나.... 앞쪽에 커다란 솔 같은 것이 달려 있는 독일의 청소 차량 들은 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다니고는 한다.


평소에는 유니폼 또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을 만나면 좋아라 반기는 나리인데... 아마도 한꺼번에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이 서서 빗자루 들고 바닥에 쌓여 있던 나뭇잎 들을 긁어모으며 차에 싣고 할 때 들리는 슉슉 소리들과 차에서 커다란 솔이 나와 빠르게 움직이며 내는 스르륵 쉭쉭 하는 소리가 무서웠던가 보다.


그래서... 발톱을 세우고 몸을 낮게 낮춘 체 부들 거리는 겁먹은 나리를 데리고 평소에 가던 대로변을 고집할 수가 없어하는 수 없이 간식 줘 가며 달래서 경로를 변경했다.


공과대학 캠퍼스 안으로....



우리 아이들 또래의 대학생들이 배낭 하나 메고 또는 손에 책 몇 권 들고 오가는 건물 
기계공학과 등의 수업이 진행되는 여러 개의 강의실 들과 세미나실.. 도서관도 있다.밖에서도 드려다 보이는 이름 모를 기계들이 꽉 들어차 있는 실습장 들과 좋은 냄새가 나는 카페테리아와 학생식당도 있다.

그래서

여기만 오면 아침부터 솔솔 풍기는 커피 냄새와  맛난 음식 냄새 때문에 나리도 나도 괴롭기? 때문에 산책을 나올 때면 언제나 큰길 쪽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돌아 가는데... 오늘은 그 앞까지 기여코 오고야 말았다.

"아... 커피 냄새..." 나는 무리한 다이어트로 굶주린 사람처럼 코를 벌름 거리며 커피 향을 흡입했다.

"아.. 커피 한잔만 마셨으면 좋겠다....."


독일의 쇼핑센터와 레스토랑 들 중에는 강아지를 데려갈 수 있는 곳들도 많지만 강아지는 안돼요 라는 표시가 붙어 있는 곳들 또한 여러 곳이다.

이곳도 그중에 한 곳으로 건물 앞에 스티커가 붙어 있다.

물론 밖에 야외에도 야외용 의자들이 놓여 있어서

강아지를 데리고 충분히 커피를 마신다거나 식사를  한다거나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댕댕이와 혼자일 때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서 필요한 무언가를 사서 나오느냐 하는 거다.


마트 앞에서 처럼 어딘가에 매어 두고 잠깐 다녀 올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어린 나리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 아무나 에게 나리를 부탁할 수도 없으니...

나는 혹시나 이쪽 건물로 들어가려고 오는 학생 중에 나리를 잠깐 맡길만한 사람이 있으려나

매의 눈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팔뚝에 열심히 그림 그려 놓고 매캐한 담배 연기를 마구 뿜어 대며 지나가는 찢어진 청바지의 남학생 ..통과.., 코와 입에 탬버린을 연상케 하는 피어싱으로 수놓고 새카만 재킷에 보라색 머리 범상치 않은 포스의 여학생...패수.., 그러다..나의 레이다 망에 딱 하고 걸린 베이지색 면바지에 체크무늬 난방을 입은 평범? 하고 착해 보이는 남학생에게 오래전 종로에서 만났던 "도를 아세요? " 같은 포스로 스르륵 다가가 물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혹시 지금 시간 있어요?

순간 당황한 듯한 남학생은 " 아..." 하며 고민하는 듯 보였다. 나는 무엇을 상상하던 네가 상상한 것 이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얼굴로 상냥한 미소를 띠며  빠르게 이야기했다." 시간 많이 안 뺐을게요"

뭔 기대를 했는지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남학생은  수줍은듯 "아.. 네" 한다.

나는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 끝 나기가 무섭게 나리가 매고 있는 리드 줄을 터프하게 넘겨주며

" 그럼, 우리 강아지 잠깐만 맡아 주세요. 저 안에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한잔만 금방 사서 올게요" 했다.
얼굴에 대략 난감 을 장착한 남학생은 말 까지  더듬으며 "가강 강아지요?" 했다.

나는 "네.. 얘요 아주 얌전해요"

라는 말을 남긴 체 빛의 속도로 건물 안으로 뛰었다.

만면에 미소를 띤 체..."에끼 이 사람아 내가 집에 너만 한 아들이 있다"를 속으로 외치며 말이다.


나는 카페테리아 창 밖으로 나리 앞에 쭈그려 앉아 "이게 뭥미 "하는 얼굴로 있는 착한 남학생을 눈으로 스캔하며 가방을 열었는데 아뿔싸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거다.

나리 변 봉투부터 간식, 물휴지 등이 들어 있는 일명 나리 가방을 메고 있던 나는 혹시나 어딘가에 꼬깃 하게 들어가 있는 동전 뿌시래기 가 있지 않을까 샅샅이 뒤져 댔다.

아침부터 대학 학교 식당에서 외상으로 커피를 줄리도 만무하고 이렇게 모르는 청년을 도를 아세요 처럼 섭외해서는 쪼그려 앉아 벌이라도 서고 있는 듯 남의 강아지를 보게한 보람도 없게 그냥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나의 집요함에 힘입어 드디어 가방 안 구석에 꼬깃꼬깃 접혀 있는 5유로짜리 발견...

심마니 아저씨들이 왜 "심밨다!"라고 소리를 질렀을지 충분히 이해하며 "라테 마끼아또!" 한잔을 외쳤다.

그렇게 마신 커피는 정말 꿀맛이었다.

나는 정말 고마웠다며 아직 황당함이 체 가시지 않아 보이는 청년에게 쌈박하게 인사를 하고 한 손 에는 커피 한 손에는 나리 리드 줄을 쥐고 오 해피 데이를 흥얼거리며 산책을 마무리했다.

남의 집 아들이야 "오늘 학교에서 정말 이상한 아줌마 만남 대박 황당했음"이라고 일기에 적을지 몰라도 덕분에 커피를 마실수 있었으니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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