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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18. 2021

반전의 고슴도치와 가을 낙엽

고슴도치가 궁금해


어느새 짙게 물들어 가던 가을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손끝에 붉은색이 묻어 날 것 같던 단풍잎도 노랗게 비처럼 쏟아지던 은행잎들도 모두 바닥에 켜켜이 쌓였다.

밟으면 폭신한 색색의 가을 낙엽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감성 충만이다.

그러나 그것을 치워야 할 때는 느낌이 다르다.

겨울을 맞이 하기 전에 독일 주택가에서 늘 하는 연례행사 중에 하나가 낙엽을 치우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눈 치우는 것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일이다. 허벌라게 치우고 나면 또 떨어지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떨어진다. 언제까지? 마지막 잎새 까지...

독일 주택가에서 가을 낙엽 이란?

거리에 가로수들이 떨구어 낸 낙엽들은 시에서 나온 환경미화원들이 여기 한 뭉치 저기 한 뭉치 모아둔다. 그러다 어느 날 커다란 청소기처럼 생긴 관이 달린 청소차가 와서 낙엽들을 순식간에 쓸어 담는다.

각종 청소 도구를 동원해 집 안팎으로 널브러져 있는 낙엽 들을 허리 휘게 쓸어 담다 보면 부러운 듯 청소차를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아자씨 우리도 잠깐만 빌려 주면 안 돼요?"라고 묻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그날도 청소차가 한차례 다녀간 후였다. 길거리는 제법 정리정돈이 되어 보였고 길거리와 나무 울타리 하나 사이로 나란히 하고 있는 우리 집 정원은 상대적으로 매우 달라 보였다. 바람이 우리 집 쪽으로만 불어 낙엽이 몽땅 요 쪽으로만 쌓인 것 같은 모양새였다고나 할까?

마치 낙엽으로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은 정원의 문을 열었다.

벽난로 땔나무도 가져 올 겸 그 김에 낙엽도 조금 치워야겠다 싶어서였다.

우리 집에 한 살 같은 세 살짜리 멍뭉이 나리는 좋다고 꼬리 흔들며 따라나섰다.


정원에서 집안으로 나무를 옮기고 있자니 졸졸 따라다니던 나리는 어느새 시들 해 졌는지 울타리 앞에 앉아 울타리 너머 오는 사람 가는 개 할 것 없이 목을 빼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재미없어졌을 때쯤 나리와 터그 놀이를 해 주었다. 중간이 너덜너덜 해 진 빨간색 터그는 나리의 최애 장난감 중에 하나다.


놀이로 하는 터그에 나리는 늘 진심이다. 힘 조절 살살 이런 거 없다. 힘은 또 어찌나 세 졌는지 조금 놀다 보면 내가 먼저 지친다.

해서 작전타임을 외치는 건 언제나 내가 먼저...

이러다 힘 빠져서 낙엽은 치우지도 못하겠다 싶던 나는 "나리 타임 타임 우리 낙엽 치우고 놀자!"라며 낙엽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녀석은 처음에는 삐진 듯하더니 도와주는 건지 방해를 하는 건지 모아 놓은 낙엽 위를 데굴데굴 굴러 다녔다

그러던 나리가 갑자기 두귀를 쫑긋거렸다.


이 녀석이 요 크림색의 귀여운 귀를 앞뒤로 움직일 때면 레이더망 안에 뭔가가 잡혔다는 이야기다.

아니나 다를까 벌떡 일어난 녀석은 사과나무 끝에 있는 울타리 쪽으로 열심히 달려갔다.

소리를 듣는 것도 냄새를 맡는 것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량을 가진 나리는 언제나 손님? 이 오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채고는 한다.

가령 저길 끝에 강아지가 우리 집 쪽으로 오고 있다거나 길 건너편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아직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낯선 강아지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나 보다 하고는 짙은 녹색에 커다란 자루에 낙엽을 계속해서 더 담고 있었다.

그런데 나리가 무언가를 물고 오고 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공 같아 보였다.


처음엔 바람 빠진 공인 줄 알았다. 막내가 정원에서 놀던 농구공 축구공 중에 바람 빠진 것들을 나리가 종종 물고 와서 같이 공놀이를 해 주고는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그랗기는 해도 공과는 조금 다른 질감의 무엇으로 보였다.

나는 뭐지? 싶어 일 하느라 (허벌라게 낙엽 주워 담느라) 머리에 쓰고 있던 안경을 고쳐 쓰고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나리가 물고 와서 발로 살짝살짝 굴리고 있던 것은 커다란 고슴도치였다.

너무 놀라 가까이 가서 보았는데 뻥좀 보태 진짜 축구공 만한 고슴도치였다.

나무와 풀밭이 많은 독일에서는 공원이 아닌 주택가 산책을 다니다 가도 길에서 돌아다니는 고슴도치와 종종 만나고는 한다.

그러나 저렇게 큰 것이 아니라 보통 어른 주먹보다 조금 더 길고 큰 정도의 고슴도치 들이었다.


느릿느릿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고슴도치를 만날 때면 나리는 오리나 작은 새를 쫓아다니고 싶어 할 때처럼 따라가고 싶어서 안달을 하지만 줄을 짧게 당겨 근처에 못 가게 한다.

나리가 고슴도치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 뾰족한 가시에 나리가 다칠까 봐 더 걱정이 돼서였다.

고슴도치는 느리기는 하지만 워낙 뾰족한 가시를 갑옷처럼 두르고 있어 몸이 무기지 않은가?


뾰족한 가시가 무서웠던지 나리는 살짝 입으로 물었다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슬슬 건드려 보고 있었다.  마치 "야 인마 일어나 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 커다란 고슴도치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나리가 입으로 물어 공중에 떠 있을 때도 바닥에 내려놓았을 때도 미동도 없이 그대로 있었다. 땅바닥에 놓여 있던 바람 빠진 공처럼...

간혹 주택가 정원에서 죽어 있는 새 나 쥐 또는 토끼 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죽어 있는 고슴도치를 만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일단 나리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으로 꼬셔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 갔다.

이미 죽은 고슴도치는 불쌍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나리가 계속 건드리며 만지다가 혹시라도 다칠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저녁 준비를 하며 공만 한 고슴도치는 내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저녁을 먹으며 나는 우리 집 정원에 있던 고슴도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여태껏 본 고슴도치 중에 그렇게 큰 것은 처음이었고 정원 한가운데 있으니  

어디다 묻어주던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나리가 정원 귀퉁이에서 죽어 있는 축구공 만한 고슴도치를 물고 온 것 같다는 나의 이야기에

밥을 먹고 있던 막내가 자기는 그만 먹겠다며 방으로 먼저 올라가 버렸다.

웬만해서는 밥을 남기는 예가 별로 없는 아이가 말이다.

걱정이 되어 방으로 쫓아 올라갔다. 왜 그런지 갑자기 무엇 때문인지 차분히 물었다. 막내는 고슴도치가 죽었다는 말에 언젠가 보았던 작은 새처럼 바닥에 몹시도 불쌍한 모습으로 있을 것 같아 너무 슬펐다고 했다.

우리로 중학교 2학년 인 아이가 이름모를 고슴도치 때문에 그렇게 속상해하리라 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본 고슴도치는 그리 험한 모습으로 바닥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에게 네가 상상하는 그런 모습으로 고슴도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설명을 최선을 다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저녁을 굶다 시피한 막내가 마음에 걸려서 나도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식사시간에 내가 괜한 이야기를 꺼냈나 싶어 후회가 밀려왔다.다른 재미난 이야기도 얼마든지 많았을 텐데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죽은 고슴도치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는 너무 각박해져 버린 것인가? 싶기도 하고 덩치만 컸지 아직 순수한 구석이 많은 막내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나 싶어 씁쓸했다.

그에반해 밥에 진심인 나는 유치원 다니는 아가야도 아니고 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아 배고프다 우와 맛있어!" 하며 신나게 한두 숟가락 뜨다 고작? 고슴도치 이야기에 내려놓았다는 것이 못내 속이 상했다.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과 나리를 데리고 저녁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가면서도 우리는 막내와 고슴도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나리가 다시 귀를 쫑긋 거리기 시작했고 종이를 모아 버리는 쓰레기통 밑에서 뭔가가 움직 이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던 그 무언가는 가로등이 켜져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갈색의 둥근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어? 아까 걔 아니야?"

경상도 아낙인 울 엄마가 가끔 암호처럼 외치던 사투리로 하자면 "가아가 가가?" 쯤 되겠다. 

뭔 소리인 고 하니 어둠을 틈타 움직이던 것은 분명 아까 우리 정원에서 나리가 발견한 그 공같이 커다란 고슴도치 그 아이와 똑같이 생겨 있었다.

그 둥근 공 같은 고슴도치가 여유 있는 포즈로 우리 집 울타리 밑을 포복 자세로 가뿐히 통과하는 것을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 고슴도치가 얘나 쟤나 비슷하게 생겼지 마빡에 이름표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쟤가 아까 걔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그 범상치 않은 크기의 고슴도치는 단언컨대 이 동네에서 그날 오후에 정원에서 보았던 그 애뿐이었다.

내 추측이 맞는지 나는 몹시도 궁금했다.

나리와 산책을 하면 서도 나는 빨리 집에 가서 정원에 나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만약 내 추측이 맞는 다면 정원 한가운데 누워 있어야 할 그 고슴도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고 틀렸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둥근 모양을 띠고 있을 테다. 

어떻게 산책을 끝냈는지 모르게 나는 남편과 몇 개의 손전등 그리고 핸드폰까지 동원해서 정원으로 나갔다.

혹시라도 나리가 따라 나올까 싶어 정원문을 잽싸게 잠그는 용이 주도 함도 보이며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불을 비추고 찾아보아도 있어야 할 그 고슴도치는 그곳에 없었다.

아까 고슴도치가 누워 있던 자리는 우리 집 정원의 한가운데 작은 화분들 여러 개가 놓인 곳 바로 앞이었다.

장소가 헷갈릴 일도 없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답은 하나 그 커다란 고슴도치는 대단한 몸집만큼이나 연기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살다 살다 고슴도치가 죽은 척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다니....! 그야말로 반전 

쩌는 고슴도치가 아닌가?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막내는 기뻐했고 나는 고슴도치에 대해 급 궁금해져서 폭풍 검색을 했다.

보통 성인인 된 고슴도치는 500g 에서 1kg 300 사이의 몸무게를 가지고 있고 2년 에서 5년 정도 살며 

드물게는 7-8년을 사는 고슴도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큐가 30에서 40은 된다는 것이다. 오잉 고슴도치 완젼 똑똑한데! 우리 집 멍뭉이랑 큰 차이 없겠어~! 하며 나는 그 똑또구리한 고슴도치의 깜찍한 연기에 대해 몇 날 며칠을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만약 동물들에게도 연기상을 수여한다면 그능청스런 연기는 최우수 연기상은 따놓은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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