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Feb 03. 2022

사라진 신발 한 짝


늦은 점심을 먹고 난 나른한 오후였다. 소파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막내가 여기저기를 기웃 거리며 물었다.

"엄마 내 실내화 한 짝이 안 보여 어딨지?"

우리로 하면 중학교 2학년인 막내는 키 180에 발 크기가 여기 사이즈로 45 다. 한국 사이즈로는 아마도 290에서 295 사이가 아닐까?

워쨌든지 키도 크지만 발도 무지하게 크다. 그 항공모함 같은 발에 걸치고 다녔던 짙은 파란색 실내화 한 짝만이 덩그러니 소파 밑에 놓여 있다.


어? 한 짝이 어디 갔지? 보통 독일의 가정집 바닥은 불이 들어오지 않아 차갑다.

그래서 여름이던 겨울이던 실내화들을 신고 다니는데 소파에 앉거나 비스듬히 드러눕다 보면 당연히 실내화 들을 벋어 두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파 뒤로 들어갔나?탁자 밑에 숨었나?

요리조리 살펴보아도 그 커다란 실내화 한 짝이 보이 지를 않는다.

아니 이게 웬만한 크기여야 어디 구석에 끼여 있으면 안보이지 눈에 띄지 않을 크기가 아니지 않은가?

그 순간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나리~~! " 하고 우리 집 멍뭉이를 불렀다.

거실 한끝에 놓여 있는 침대 위에서 댓 자로 뻗어 주무시던 멍뭉이 나리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귀를 쫑긋 거리며 달려왔다.

"나 불렀슈? 뭐 줄려고?" 하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는 나리에게 나는 막내의 한 짝 남은 실내화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물었다.

" 나리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다 오빠 신발 네가 가져다 마당에 파묻었니?"(경찰 나오는 드라마 보고 있는 후유증 ㅎㅎ)


나의 의심에 찬 질문에 나리는'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말귀 못알아 먹은 나리의 고갯짓이 귀여워 저절로 입고리가 올라 갔다.

 나는 “짜식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 이거지!그래 좋다 심증은 있다만 물증이 없으니 할 수 없지 일단 이따가 정원을 수색해 보갔어!"라고 이야기하다 푸웁 하고 웃음이 터졌다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지가 의심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고 '뭔 맛난 것을 주려고 나를 불렀데?' 하는 표정의 나리가 귀엽기도 하고 네 살이 되었어도 처음 우리 집으로 왔던 4개월짜리 아기 강아지였을 때와 별반 차이 없이 저지래를 하고 있는 나리가 반가워서 이기도 하다.


때로 사람이던 동물이던 사물이던 그 변함없는 모습 속에서 잔잔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시시각각 바뀌어 대며 혼란 스런 세상살이에서 그런 소소한 것들의 한결같음이 우리를 마음 놓이게 해주는 작은 구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웃음기 묻은 목소리로 나리에게 말했다."나리 신발 가져다 정원에 묻어 놓고 행주 물어다 숨겨 놔도 괜찮아

언제나 이모습 그대로 있어 주렴"


매거진의 이전글 반전의 고슴도치와 가을 낙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