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우토반 화장실에서 생긴 일
날씨 좋은 6월 어느 주말이었다.
막내와 멍뭉이 나리까지 싣고 우리는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달리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의 주말여행 이던가? 언제나 마음은 어디론가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현실은 코로나 때문에 꼼짝 달싹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햇빛 나기가 가물에 콩 나듯 한 겨울이면 마음은 이미 햇빛 쏟아지는 그리스 해안가에서 자빠져 있기가 일쑤 다.
그러나 바다고 산이고 간에 휩쓸고 있던 역병은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으며 둘이 합쳐 백 살이 훌쩍 넘는 우리는 그저 방구석이 제일 안전하다며 집에서 버텼다.
아마 이런 주말 나들이 조차 코로나 이후 처음이지 싶다.
남편의 안과 진료로 도르트문트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그동안 계속해서 치솟던 확진자 수로 독일 대부분의 주들이 락다운과 부분 완화 조치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어디를 간들 맘 편히 다녔겠는가
지난가을 딸아이가 베를린으로 이사를 갈 때도 기차에 태워 혼자 보냈다.
중간중간 기차 타고 아이가 집에 잠깐씩 다녀 가기는 했지만 대학 공부를 시작 한지 일 년이 다되어 가도록 우리는 딸아이가 사는 곳을 가볼 수가 없었다.
이제는...
마스크 쓰기, 코로나 테스트 등의 방역 수칙이 생활화되었고 백신 등의 효과로 확진자 수가 줄기 시작하더니 독일 전역으로 락다운 완화 조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테이크 아웃만 가능했던 레스토랑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상점들도 쇼핑타운도 문을 열었다.
그때는 식당을 갈 때도 밖에 앉을 때는 코로나 테스트나 접종 증명서가 필요 없었고 안에 앉을 경우만 필요했다.
그리고 쇼핑을 할 때도 엡만 다운로드하여서 체크하면 다른 것 필요 없이 마스크 쓰고 거리 유지만 하면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베를린은 아이들 어릴 적에 동물원 박물관 등을 보여 준다고 몇 년에 한 번씩은 갔던 도시라 처음 가는 곳을 향한 기대감으로 들뜨지는 않았다.
울 딸내미가 살고 있는 곳을 직접 가서 보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설레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집에서 380 킬로 나 떨어져 있는 딸에게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독일에서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다 보면 선글라스 끼고 들떠서 출발할 때의 마음 과는 다르게 시간대 별로 상태가 달라진다.
우선 같은 자세로 계속 달려야 해서 몸은 지쳐 가고 두런두런 나누던 재미난 이야기도 어느새 바닥나고 신나게 듣던 음악도 싫증 날 때쯤 되면 (약 100킬로 이상을 달렸을 때쯤 이면) 피곤함 외에도 하나 둘 문제들이 속출한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한데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독일의 Autobahn 아우토반 하면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속도 제한 없이 달리는 속 시원한 장면들을 상상한다.
그런데 아우토반은 교통체증 Stau 스타우가 엄청 잦은 곳이다. 구간별 차이가 있겠지만 A7, A3 구간은 교통방송 단골손님이다. 사고가 났던 폭풍으로 인해 나무가 자빠졌던 또는 아우토반 길 닦는다고 공사로 인해 차선을 줄여 놨던 등의 큰 이유가 아니더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이 교통체증이며 때에 따라서는 몇 시간이고 지연될 수 있다.
그럴 때 먹고 마시는 것이야 간단히 준비한 것들로 차 안에서 때울 수 있지만 때 되면 가야 하는 화장실이 늘 문제다.
아우토반에서 '길을 따라가다 적당한 휴게소를 발견하면 바로 진입한다!'는 매번 타이밍 맞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쯤 달렸을 무렵 막내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타이밍 좋게 휴게소로 바로 진입했다.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한참 쪼그려 있던 허리와 다리도 펴주고 바깥공기도 마셔 주고 차에서 나리도 데리고 나와 풀밭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화장실도 다녀오고 커피와 간식 거리도 샀다.
아우토반에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곳은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주유소와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함께 있는 Raststätte 휴게소와 잠시 차를 주차해 두고 쉬면서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 Parkplatz 고속도로 주차장 두 곳이다.
아우토반의 표지판에 휴게소는 주유소를 상징하는 주유통 그림과 식당을 말하는 포크와 나이프 표시가 함께 그려져 있다.
이 표지판을 볼 때마다 이제 화장실도 가고 좀 쉬겠구나 싶어 반갑다.
휴게소는 기름을 넣어야 할 경우 외에도 간단한 요깃거리들도 늘 준비되어 있고 놀이터도 있고 무엇보다 화장실도 깨끗하다.
물론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70센트를 내야 하지만 50센트를 쓸 수 있는 쿠폰이 나온다.
그 쿠폰으로 커피나 아이들 간식 값에 보태면 괜히 내 돈 내고 받는 건데도 공짜로 얻은 거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내 돈 내산 이 아니라 내 돈 내공인가?
어쨌든 아이들을 데리고 장거리를 뛸 때면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라도 휴게소를 들르는 편이 났다.
그런데 아우토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선을 바꿔 가며 가다 보면 빠져나가야 할 타이밍을 놓쳐서 휴게소를 그냥 지나 쳐야 할 경우도 종종 있다.
또는 그 길을 빠져나가서 한참 돌아 들어간 곳에 위치한 휴게소는 그냥 패스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한마디로 나갔다가 다시 아우토반으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게 생긴 휴게소는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다음 휴게소는 42킬로 남았다는 표지판을 볼 때면 마음도 화장실도 더 급해진다.
그럴 때면 휴게소보다 조금 더 자주 만나지는 고속도로 주차장 그곳을 상징하는 P에 WC가 나오면 무조건 들어가고 보아야 한다.
'아니야 조금 더 가서 휴게소 가야지' 하다 교통체증 만나면 아우토반 위에서 더 나아갈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어 대략 난감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으니...
다만 공용이며 공짜인 고속도로 주차장 화장실은 열에 아홉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커피 마시며 간식 먹어 가며 또 한참 아우토반을 달려갔다.
그 때문인지 이번엔 내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다.
그런데...
남편이 왼쪽 차선을 계속 타다가 결국 휴게소 500 미터 남은 곳에서 오른쪽 차선으로 빠져나가지를 못해 결국 휴게소 하나를 그대로 지나 쳐야 했다.
다음 휴게소가 나오려면 37킬로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전방에 고속도로 주차장이 1000미터 남아 있다는 표지판 P가 보였다.
어쩌겠는가 우린 일단 들어갔다. 차를 주차하고 아들과 아빠 먼저 화장실로 보냈다. 화장실이 급하긴 했으나 콧등에 침 바르며 신발로 바닥 찍으며 리듬 탈 만큼은 아니어서 우선 청결 상태를 염탐? 하기 위해서였다
나리를 가볍게 산책시키고 있던 나는 두 남자가 볼일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물었다. "화장실 어때? 깨끗해?"
우리 집 두 남자는 마치 말을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우리가 들어갔던 곳은 괜찮았어 근데 다른데 는 모르지"라고 했다.
아 이 고속도로 주차장 화장실은 외관도 범상치 않은 것이 기존의 남자 여자 화장실로 입구가 구분되어 있고 칸칸이 나뉘어 있던 휴게소 화장실이나 다른 주차장 화장실 과는 달리 동그란 원형 건물로 생겨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문이 달려 있어 마치 작은 방처럼 나뉘어 있는 전체 공용 화장실이었다. 즉 대상, 용도 상관없이 문 열고 들어 가면 되는 전체관람가였던 것이었다.
바꿔 말해 서던 앉던 관계없이 비어 있으면 들어가 문 닫으면 되는 곳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휴지를 잔뜩 들고 들어 갔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마스크 안으로 뚫고 들어 오던 스멜은 이 세상 레밸이 아니었다.
철제로 된 변기통은 더 이상 몇 겹의 휴지를 깔고도 차마 앉을 수 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작은 방처럼 좁게 다닥다닥 붙어 있던 화장실의 벽과 벽은 사이가 멀지 않았다. 그 덕에 변기 위로 올라가 양쪽 벽을 버팀목 삼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 무늬만 산악부였던 젊은 시절 몇 번 훈련받았던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으로 버텨야 하는 암벽 등반 요령을 이런 곳에서 사용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기묘한 포즈로 일을 성사시키고 손바닥 신발 바닥 할 것 없이 늘 가지고 다니는 손소독제를 뿌리고 다시 차에 탑승해서는 출발! 을 외쳤다.
그런데.. 차가 다시 아우토반으로 나가기 위해 주차장을 빠져나가려고 서서히 움직일 때였다.
머리에 꽃을 달은 것도 아닌 멀쩡히? 생긴 단발머리의 아낙네가 아까 우리 집 나리가 야외공연을 했던 그 풀밭에서 나리와 같은 포즈로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놀라워라 세상에나...
보이는 것이라고 해야 초록에 풀에 가려진 허연 궁둥이가 다였지만 주차장에 있던 자동차들이 아우토반으로 다시 나가는 길 몫이었다.
튼실한 나무들과 커다란 화장실 건물 덕분에 그 시간에 슁슁 소리를 내며 아우토반을 오가던 수많은 차량들은 목격할 수 없었겠지만 그 몇 분 상간에 그 길을 지나가야 했던 차량 들은 분명 모두 보았을 터였다.
물론 남편처럼 운전대 잡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아우토반으로 다시 진입하기 위해 차들이 빠르게 지나다니는 전방만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은
놓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옆자리 뒷자리 할 것 없이 너나 나나 그 라이브 무대를 모두 보았을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군가 핸디로 저장면을 찍기라도 해서 어디다 올리기라도 한다면 고속도로 주차장 노상방뇨녀 또는 야외공연녀로 회자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던가 마스크 쓴 얼굴이야 가려진다 해도 저 궁둥이는 어쩔 것인가?
베를린으로 가는 길 우리는 어쩌면 넷상에서 짤이 되어 떠돌지 모를 남의 궁둥이 걱정해 주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