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결국 두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의 빵가게 찾아 삼만리 산책을 마치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앞글에 자세히 나옵니다요)
나는 다른 때 베를린에 동물원 박물관 등을 보러 관광객이 되어 놀러 왔을 때는 그렇게 많이 보이던 빵가게가 관광지에서 조금 벗어난 주택가로 들어왔다고 이게 이럴일이야 라고 투덜거리며 계단을 올라왔고 호언장담이를 애타게 불러 재끼던 남편은 내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그사이 깨어 있던 딸이 우리에게 물었다 "어디 다녀오느라 이렇게 오래 걸렸어?"라고
나는 딸아이에게 "나리 산책도 시켜 줄 겸 동네 한 바퀴 돌며 저기 지하철 역 있는 데 까지 다녀왔는데 뭔 동네가 빵가게는 하나도 안 보이고 비둘기랑 술 취한 그지들만 떼로 있냐?"라고 했다.
딸내미는 내 말에 박장대소하며 "진작 빵가게 간다고 말하지 빵가게 바로 요 앞에 있는데"하며 베란다 창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베란다 창문으로 정확히 보이는 빵가게는 우리를 보고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참 가지가지한다.
젠쟝 우리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길과는 정반대 쪽이고 딸아이 가 살고 있는 곳 건물 바로 뒤편에서 5분 거리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렇게 가까이 두고 찾아 헤매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내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리를 쳐다보자
지볼일 이미 끝나고도 우리와 빵가게 찾아다니느라 한참 다녀야 했던 나리는 다시 나가자 할까 봐 몸을 바짝 낮추고 자빠졌다.
그 모습이 마치 "됐슈 지는 못 나가유!" 하는 거 같아 웃음이 났다.
흐미 겁나 눈치 멀쩡한 거..
딸아이 네 서 바로 내려와 뒷길로 몇 분 만에 도착한 빵가게는 밖에서 보던 것 보다도 훨씬 아기자기하고 이뻤으며 빵도 종류 별로 많았다.
사람이 들어 서자 반가이 맞아 주는 주인아줌마는 시원시원하니 맘씨 좋게 생긴 아낙네였다.
후덕한 모습으로 앞치마 매고 퉁퉁한 손으로 살림 고수들이나 보일 수 있는 물 찬 제비 같은 속도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 한 팔에 안고 여행 가방 들고 씩씩히 걸어갈 것 같은 튼튼하고 정스런 독일 엄마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아주머니께 카푸치노를 부탁드리고 무슨 빵을 담아 갈까 기분 좋은 고민을 했다.
고소한 빵 냄새와 커피 냄새의 환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을 눈과 코로 느끼며 말이다.
다른 날 같으면 카푸치노 시켜 놓고 뭔 빵을 사 갈까나 하고 요리조리 보고 있노라면 요런 때 유독 성질이 급해지는 남편은 진작 뭐 살지 골라 놓았어야지 아직도 못 고르고 있냐고 타박하기 가 일수였다. 그러나 그날은 지은 죄? 가 있다 보니 입 꾹 다물고 눈으로만 욕을 하고 있었다.
"아띠 니 빨리 안 고르냐!"
남편이야 눈으로 욕을 하던 노래를 하던 모른 척하고 나는 열심히 살펴보았다. 내가 이놈의 빵가게 찾느라 아침 댓바람부터 식전에 걸은 걸음이 얼만데.. 고르고 골라 맛난 것만 담아 갈겨.
그중에서도 내 눈에 띄었던 것이 있었으니 진짜 커다란 독일식 도넛 베를리너였다.
우리 동네에서 사 먹던 베를리너는 주먹만 한 것이었다면 거기 에 있던 베를리너는 뻥좀 보태서 어린아이 머리통만 했다.
베를리너 도넛은 기름에 튀겨낸 폭신한 도넛 안에 과일잼이 들어가 있다.
거기에 도넛 겉에 설탕, 또는 슈거파우더, 설탕물 등이 입혀져 있어 달달하고 열량이 높다.
원래는 아침으로 달달한 빵을 잘 먹지 않는데 그날은 허탕 치고 돌아다니느라 힘도 들고 스트레스도 받아서 달 짝찌 구리 한 것도 함께 먹고 싶어 졌다.
거기다 저렇게 큰 베를리너 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아주머니께 종류별로 곡식 빵과 크로와상을 담아 주시라 이야기하고는
나는 "그 대박 큰 베를리너도 담아주시고요"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 크게 웃으시며 우리도 박장대소하게 했다.
그 아줌니가 뭐라 하셨는고 하면
" 베를리너는 나예요 얘는 팬케이크 구요 하하하!"
? 이 말이 왜 웃기는 말인고 하면 베를리너라는 말은 파리지앵 또는 서울내기처럼 그 도시의 시민 즉 베를린 시민을 일컫는 말이다 또 도넛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 도넛의 풀내임은 Berliner Pfannkuchen 베를리너 판쿠헨.팬케이크 이다.그런데 이 도넛을 부르는 명칭이 동네 별로 다르다.
마치 한국에서 부추전을 전라도에서는 솔전, 경상도에서는 정구지 찌짐, 제주도에서는 세우리적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처럼 독일의 도넛 베를리너도 동네 별로 부르는 이름이 조금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하면...
베를린의 이름을 딴 베를리너 도넛이 정작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떼고 팬케익으로 만 불리고 우리가 사는 독일 중부에서는 베를리너 또는 크레펠 남쪽에서는 크라펜 , 그리고 서쪽에서는 프펠로 불린다.
정리하자면 그 아주머니는 본인은 베를린 토박이고 베를린에서는 베를리너 도넛을 팬케이크라고 부른다. 는 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우리는 유쾌한 아주머니의 유머 덕분에 한참 같이 웃었다.
나는 그다음 날도 이 빵가게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아주머니께 "혹시 내일도 문 여시 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 세상 푸근한 웃음을 머금고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내식으로 번역해 보자면...
"내일은 일요일 이잖아요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내일은 먹고 쉬어야죠 그래야 담주에 힘내서 일하죠"라고 했다.
보통 독일 빵집 중에 일요일 아침에 문을 여는 곳들이 더러 있다. 주로 체인점으로 직원들이 돌아가며 일할수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런 빵가게 들도 일요일 아침에는 다른 날 보다 한 시간가량 늦은 시간에 문을 연다 빵가게 특성상 새벽에 나와 반죽을 하고 빵을 구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족들이 하는 것으로 보이는 빵집 들은 일요일마저 문을 열어야 한다면 그야말로 일주일 내내 새벽일을 해야 하는 거다. 분명 그 동네 빵가게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면 문을 열면 돈을 벌 테지만 쉴 땐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아주머니는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에 담은 것이다.
우리는 그날 어렵사리 찾은 빵가게에서 갗구워낸 고소한 빵들과 아주머니가 얹어주신 유쾌한 유머와 삶의 여유를 빵 봉투 가득 담아 딸아이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