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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네 시트콤 같은 가족여행
프랑크푸르트 가는 아우토반에서 생긴일
납량특집 : 혹시 아까 다리가 그 다리가 아닐까?
by
김중희
Aug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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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구간 A7을 타고 달려가고 있었다.
네비에 찍힌 목적지는 프랑크푸르트.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헤센주 즉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주 다. 그럼에도 집에서 약 220 킬로 떨어져 있어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자동차로 쉬지 않고 같은 속도로 달렸을 때 대략 2시간 30분 정도 걸려 프랑크푸르트 에 도착한다. 물론 중간에 교통체증을 만나거나 여러 차례 쉬었다 가게 되면 서너 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프랑크푸르트 한번 다녀오려면 못해도 왕복으로 5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어쩐지 프랑크푸르트는 늘 당일 치기로 다녀오게 된다.
작정하고 여행 중에 끼워 넣고 며칠 보내고 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가 프랑크푸르트에 가게 되는 가장 잦은 이유로는 공항 또는 영사관에 볼일이 있을 때다.
한국식당도 많고 식품점도 많은 곳이라 그 김에 먹부림 도 해보고 양손 가득 한국 먹거리 쇼핑도 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보너스다.
*사진출처:Stepmap-Autobahnen
아우토반의 A7 구간은 중부를 가로질러 위로 함부르크를 지나 위쪽으로 가거나 뉘른베르크를 지나 아래로 내려 가는 굉장히 긴 구간이다.
그래서 교통체증도 자주 있고 사건사고도 많아 교통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구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같은 고속도로 구간이지만 A7은 위아래로 길의 생김새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위쪽으로 갈 때는 쭉쭉 길고 넓게 뻥 뚫려 있는 느낌이라면 아래쪽은 꼬불꼬불 아기자기한 분위기라 하겠다.
아우토반 주변 모습도 달라서 아랫쪽은 가다 보면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들도 보이고 풀밭에 노니는 남의 집 멋들어진 말들도 소들도 자주 보인다. 또 속시원히 너른 들판에 노란 짚단들과 탐 스러이 자라고 있는 옥수수밭도 가까이 보인다.
대로변보다는 골목길을 아우토반보다는 동네 작은 길들을 좋아하는 나는 볼거리 많은 이 길들이 더 마음에 든다. 비록 가끔 가다 구비구비 꼬불꼬불한 길 때문에 속이 울렁거릴 때도 있지만 곳곳에 이야깃거리들이 숨어 있을 것 같은 길은 재미를 더해 준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덕분에 아우토반에 차량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평일이어서 그런지 운송 트럭들이 많았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아우토반 옆 차선으로 차들이 빠르게 지나 가기도 하고 옆 차선에서 들어오기도 해서 남편이 차선을 바꿔 가며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마치 흔들이 그네 같았던지 뒷좌석에 타고 있는 아이들도 멍뭉이 나리도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사진 몇 장 찍어 주고 앞을 보는데 육교 같이 생긴 다리가 보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몇 년 전 기차 타고 프랑크푸르트를 갔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가 우리가 독일 남부의 바이 어른 주에서 중부인 헤센 주로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기차값 비싸기로 유명한 독일에서 여러 가지 할인 티켓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헤센 티켓이다.
온 가족이 헤센 티켓 하나로 헤센주 안에 어디든 왕복 이 가능 하니 각자 기차표를 끊는 것에 비해 아주 저렴하게 기차 여행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그날 그헤센티켓으로 프랑크푸르트로 놀러를 다녀오기로 했던 날이다.
기차를 탄 덕분에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남편도 아이들과 함께 카드 게임을 하며 신나 했고 기차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운치와 설렘으로 가족 모두 들떠 있었다.
빠른 기차 ICE 가 아닌 보통 기차 RE를 타고 가면 프랑크푸르트까지 2시간 넘게 걸린다. 시간상 자동차 여행과 비슷하다. 그러나 교통체증 또는 화장실 간다고 휴게실 들르는 시간을 생각하면 사실상 훨씬 짧게 걸린다.
거기다 온 가족이 마주 보고 앉아 수다 떨다가 간식도 먹고 게임도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자동차를 타고 갈 때 보다 더 많았다.
그렇게 소풍 가듯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기차가 심하게 흔들리며 멈춰 섰다.
뭐지? 싶어 내다본 밖은 역이 아닌 기찻길 중간이었다.
터널을 통해 화물 기차들이 지나칠 때 기차가 멈춰 서서 기다린다거나 폭풍 등으로 커다란 나무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거나 갑자기 내린 폭설로 철로가 손상되어 기차 운행이 갑자기 중단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화창한 여름날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
우리 건너편 좌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도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저씨도 일어서서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고 그 어떤 안내 방송도 없이 기차는 그렇게 한동안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차는 멈춰서 있고 아무런 방송조차 나오지 않은 체 시간이 지체되자 여기저기서 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음산한 목소리로 누군가 말했다.
"혹시 누군가 다리에서 떨어져 내린 거 아니야?
저 다리 사람들 자주 뛰어내리기로 유명한 그 다린 거 같은데"
창문 밖으로 내다본 기차 앞쪽과 멀지 않은 곳에 육교 같이 생긴 다리가 있었다.
팔에 오소소 돋은 소름이 체 가시기도 전에 조금 전 왼쪽 끝 좌석에 앉아 있던 처자가 그 음산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 내용이 방송을 타고 기차 안에 전달되었다.
사람이 다리에서 뛰어내려 달리던 기차에 몸을 날렸다고 했다.
우린 그날 경찰이 오고 사건의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시간까지 그 기차 안에 그대로 갇혀 있어야 했다.
그날 우리는 기차를 타고 장장 4시간 30분이 걸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그때 기차 안에서 보았던 육교 같이 생긴 다리와 똑같은 다리를 보자 그날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식혜 그릇에서 밥알 동동 뜨듯이...
남편과 이런저런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며 A7에서 A5로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반대편 쪽 아우토반에는 차들이 보이는데 우리가 달리고 있던 아우토반 위에는 차가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앞에도 뒤에도 차 한대 보이지 않자
몹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 차들이 많이 다녀야 할 평일 오전에
다른 방향에서 달려오던 차들도 A5 쪽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합류해야 하는 길인데 말이다.
그때 남편도 "어? 이상하다 왜 우리 차 밖에 없지" 했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옛날 옛적에 보았던 전설의 고향부터 귀신 나오는 알 포인트 같은 영화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거기다 남편은 "혹시 아까 그 다리가 그날 그 다리 아니야?" 했고 어쩐지 가능성 있어 보이는 그 소리에 저절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공포 때문에 가출하려는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고 우악하고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겨우 참으며 그 도로를 빠져나올 때까지 나홀로 혼비백산 납량특집을 찍었다.
남편의 말이 계속 들리는것 같았다.
“혹시 아까 그다리가 그날 그 다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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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댕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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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가정의 병원 의료팀 팀장,한국요리강사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담습니다 저서로 ‘오늘은 댕댕이’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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