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스스한 분위기 속의 아우토반을 빠져나온 우리는 딸내미가 틱톡 인가 뭐시캥인가에서 보았다는 한국 마트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 진입 표지판을 보며 이미 머릿속을 떠돌던 전설의 고향 시리즈는 자체적으로 삭제 한지 한참이었다. 이제 머릿속에는 '아 그 마트에 가면 뭘 사야 장 잘 보았다고 소문이 나려나? 거긴 어떤 한국식품들이 들어와 있으려나?' 설레는 상상을 하기 바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잘 알려져 있듯 대도시이며 국제 도시다. 뿐만 아니라 한국영사관이 있고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공항이 있으며 교민, 유학생, 한국기업들의 주재 상사 직원 등 많은 한국인이 살고 있다. 그리고 여러 곳의 한국식당과 한국식품점이 있다.
그래서 독일에서 살다 보면 종종 프랑크푸르트를 여러 가지 이유로 다녀오게 된다.
우리도 그전에 한국에 다녀오느라 또는 누군가를 공항에 데려다주느라 아니면 한국식당 또는 한국식품점을 다녀오느라 등등 다양한 이유로 여러 차례 다녀왔다.
그런데 이날 갔던 마트는 처음 가는 곳이었다.
네비에 찍힌 주소대로 운전을 하던 남편의 오른쪽으로 멀리서 y mart 간판이 보였다. 왠지 한국어로 되어 있는 간판이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주소만 정확히 알고 있다면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평일 오전이었지만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었다.
다행히 주차할 자리를 찾고 마트 문을 열고 힘차게 안으로 들어갔다.
마트 안은 밖에서 보고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깨끗했다.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한국 노래 수많은 종류의 한국식품들이 넓고 깔끔한 매장 안에 코너 별로 정리정돈도 잘 되어 있었다. 이건꼭 한국의 어느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마트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자동차로 세 시간 가까이 달려온 것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크으 그래 이거지... 싶은 마음은 주인 허락도 없이 수시로 울렁 댔다.
다양한 양념과 식품들 뿐만 아니라 한국 종이책 들도 있었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져 인터넷으로 한국 먹거리를 주문하면 집에 앉아 택배로 받기도 하고 동네마다 한국 마트 또는 한국식품이 다수 포함된 아시아 마트들도 많아졌고 독일 마트에서도 한국 라면과 만두 같은 한국식품은 구할 수가 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종류의 못 보던 한국식품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한국에 있는 마트에서도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새로운 종류의 식품들을 따끈하게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은 예전엔 상상도 못 하던 특별한 경험이다.
아 놔 웬만하면 꼰대스럽게 라떼는~ 하고 싶지 않다만... 워낙 시절이 다르다 보이... 진짜 격세지감을 제대로 느낀다.
1990년대 초반 우리가 독일 대학의 기숙사에서 살고 있던 그 시절에는 한국식품 구하는 것이 지금 같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던 동네만 해도 그 당시 한국 유학생들이 꽤나 많은 동네였지만 아주 작은 한국식품점이 시내에 딱 하나 있었고 당연히 많지 않은 종류의 한국 장류 또는 라면류 그리고 몇 가지 냉동식품 정도가 있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한국 두부, 깻잎과 콩나물 등의 채소 들과 아직 말랑한 떡 등의 먹거리들을 잔뜩 싣고 오던 한국식품 트럭을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고는 했었다.
눈 오는 날 기숙사 주차장에서 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될 때까지 두부랑 떡이랑 원하던 라면 들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하던 그때 그 시절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한국식품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척척 골라 담아 올 수 있는 것은 한국에 방문하러 갔을 때나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는 서로 관심 가는 먹거리 쪽으로 흩어져 각자 먹고 싶은 것들을 가져와 밀고 다니는 마트 바구니에 담았다.
마트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일단 마트 안으로 들어 가느라 주차장에 있던 카트를 보지 못했다. 마트 안에 구비되어 있던 바구니 두 개로 나누어 담았는데 몇 개 담지도 않았는데? 나중에는 넘쳐날 지경이었다. 진작 카트 두 개 밀고 들어왔으면 더 담았을 텐데.. 했다.
막내는 한국의 할머니네 동네 마트에서 사다 먹어 보았던 쭈쭈바와 식혜, 수정과 그리고 바나나킥, 오징어 볼 과자를 보며 반가워했고 뭘 가져갈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딸내미는 한국의 빵집에서 사다 먹어 보았던 곰보빵, 슈크림빵, 김치 크로켓 등 한국 빵들을 공략? 해서 담았다. 나는 콩나물, 두부, 부추 등의 채소류와 떡볶이 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떡볶이도 종류가 너무 많은 거다. 우리 동네 아시아 마트 에는 떡국떡, 조랭이떡, 떡볶이 떡 그렇게 있는데 여긴 국물 떡볶이, 단호박 떡볶이, 고구마 떡볶이 등등 다양했으며 추억의 국민학교 떡볶이라는 것도 있었다.
추억의 국민학교 떡볶이는 양이 조금 작아 보여 추억만 가져오는 것으로 하고 아직 먹어 보지 못한 고구마 떡볶이 등을 담았다. 순대와 함께..
그리고 남편은 잡곡, 급할 때 쓸 햇반, 누룽지, 라면 , 일회용 장갑 등을 담아 왔다. 남들이 보면 "캠핑 가세요?" 하겠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냉동떡만 보이고 오늘 나온 말랑한 떡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물건을 정리하고 박스를 들고 지나가던 직원분 에게 따끈한 떡은 없는지 물었다. 다른 식품점에서는 토요일만 들어온다고 알고 있었지만 여긴 어떤지 몰라서였다.
직원분의 친절한 답을 들으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마트의 말랑한 떡 나오는 날을 따라 외우고 있는 내가 있었다.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이삿짐 꾹꾹 눌러 담듯 소중한 한국 식품들을 차곡차곡 담아 차에 넣고는 우린 한국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뭐니 뭐니 해도 누가 해준 밥이다.
예전에 나리도 데리고 갈 수 있었던 식당에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숲 속 안에 있는 것 같은 식당 이름도 외관도 독일 식당 같이 생긴 Heidekrug 한국식당은 예전에 큰아이 공항에 데려다주러 갈 때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리도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나서 그곳으로 미리 점심 예약을 해 두었다.
메뉴판을 보면 서도 몇 달은 먹을 것 같은 한국 먹거리들이 가득 담긴 트렁크 안을 생각 하면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는 갈비탕 하나 , 해물순두부찌개 하나 불고기 둘, 고등어 석쇠구이 하나를 시켰다.
사람은 넷이었지만 메뉴로는 5인분 이였다.
불고기와 고등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막내가 귀여워서 그냥 하나 더 시켰다.
김치, 미역무침, 콩나물무침 등 기본 반찬도 나오고 김칫국에 밥도 고봉밥이었다. 우아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다 먹었다 남김없이... 맛난 한국음식을 어찌 남기겠는가 쿨럭! 5인분 안 시켰음 크일 날 뻔...
역시 우리는 위대한 가족이다.(*위가 대단히 큰 )
도저히 배가 불러 그대로는 자동차를 타고 출발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집으로 다시 출발하기 전에 한국식당 근처 숲으로 산책을 갔다.
식당 옆에는 자연보호 구역이 라고 쓰여 있는 작은 숲길이 예쁘게 나 있었다.
숲 길에는 살며시 지나가는 바람에 향긋한 라벤더 향이 기분 좋게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문득 어느 주말 한국에서 동네 마트로 가족들과 함께 장을 보러 가고 자주 가는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는 동네 산책로에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