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이른 아침 우리는 늦잠을 양보하고 그러나 여유로운 마음으로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긴 산책을 나간다.
우리 집에서 일직선으로 걷고 걷다 보면 시내로 가는 큰 도로가 나온다.
그 큰길 맞은편 쪽으로 우리가 일요일 이면 늘 가는 작은 빵가게 중에 한 곳이 나온다.
이 빵가게는 우리가 그 뒤편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들르는 곳이다. 그곳은 평일이면 7시에 문을 열고 일요일 이면 8시 에 문을 연다.
길에 다니는 사람도 자동차도 별로 없는 8시 5분전.
도시는 아직 주말 늦잠을 자고 있는 것 같은데 빵집 앞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갗구워 낸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
코로나 이후로는 작은 상점 안은 동시에 3명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들이 많다.
이 빵가게도 마스크 쓰고 1.5미터 안전거리 유지와 동시에 3명 이상 들어갈 수 없음을 빵가게 앞에 크게 붙여 두었다.
그래서 빵가게 문을 활짝 열어 두고 길가로 사람들이 한 줄로 줄을 서서 순서대로 들어간다.
우리 앞쪽으로 서 있던 몇 명 중에 식구들 먹일 빵을 사러 온듯한 아저씨는 일요일의 빵 봉지라는 빵 메뉴를 주문한다.
그 일요일의 빵 봉지 안에는 여러 가지 곡식이 붙은 잡곡빵 두 개 보통 빵이라 부르는 맨 빵 두 개 크로와상 두 개 가 들어 있다.
평일 8시면 아이들 학교도 시작된 시간이고 일이 시작된 직장도 있어 이른 시간이 아니지만 일요일의 8시는 이른 아침이다.
우리 바로 앞에 엄마의 심부름으로 동생과 빵을 사러 온 것 같은 아이는 마스크 쓰고 있는 작은 입으로 앙증맞은 손에 들린 종이에 적혀 있는 빵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한다."쵸코 크로와상 두 개, 호박씨 빵 하나, 감자 빵 하나, 바게트 빵 하나 주세요."
아이가 마스크를 쓰고 있고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6세 이상의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인다.
아.. 자세히 보니 지난번에 엄마와 함께 왔던 아이들이다.
우리 집 강아지 나리를 만져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 에게 엄마가 야무지게 설명하는 것을 듣고 미소 지었던 일이 떠오른다.
빵가게 앞에는 강아지 들의 리드 줄을 걸고 잠시 묶어 둘 수 있는 구석 자리가 있다. 빵 사러 들어가는 줄을 서려면 그 구석을 지나쳐야 하는데 귀여운 강아지를 만져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지금 이렇게 묶여 있는 강아지 들은 귀찮게 하면 안 돼 자유 롭지 못하게 묶여 있다는 건 아주 불편한 일이거든, 나중에 자유로이 길을 다닐 때 주인에게 물어보고 허락하면 만질 수 있는 거야 알았지? 물론 그전에 강아지 에게도 만져도 될까? 하고 허락을 구해야 하지만 말이야."
아이들은 그앙징맞은 고개를 연신 끄덕 였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이렇게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에게 남의 집 강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육받는다.
그래서 "우와 귀여운 강아지다!" 하고 소리 지르며 달려오거나 묻지도 않고 강아지를 냅다 만지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다.
귀여운 아이들에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도 빵 메뉴 일요일에 빵 봉지를 주문하고 카푸치노 한잔도 잊지 않았다.
손에 들린 커피잔과 빵 봉지에서 향긋한 커피 향과 고소한 빵 냄새가 기분 좋게 뒤섞인다.
빵집에서 백 미터 정도 앞으로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골목이 하나 나온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서 끝쪽으로 미술 대학 건물들이 나오고 그 사이로 들어가면 나무 우거진 숲과 맑은 물 위로 떠다니는 오리가 보이는 호수 가 나온다.
여기서부터가 공원이다. 아름드리나무들 위로 오가는 새들의 분주함은 이방 저 방 다니며 늦잠 자는 식구들을 깨우는 주말 아침 엄마의 모습을 닮았다.
숲은 그렇게....
새들의 맑은 지저귐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내는 풍경 같은 소리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오리들의 찰랑임이 어우러진 아침이 내는 소리들을 푸짐하게 담아낸다.
공원 안에는 우리처럼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아기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부부들...
함께한 세월만큼 서로의 보폭도 맞추어져 있는 노부부들.. 남편 흉이라도 보는지 소란 스레 수다를 떨며 노딕워킹을 하는 아줌마 팀... 탁탁탁 발소리를 내며 힘 있게 뛰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모습을 템포에 맞게 그려내며 숲을 채운다.
우리는 오늘 저 멀리 보이는 왕궁까지 걷기로 한다.
그렇다 이곳은 몇백 년 전만 해도 독일의 왕족 빌헬름 4세 가살던 곳이다.
왕족들이 말 타고 다녔을 이곳을 사람들은 쫙 붙는 운동복 입고 열라 뛰어다니고
드레스 좔좔 끌고 다녔을 풀밭 위에 강아지들이 쉬야와 끙아를 해댄다.
예전 우리가 백제 고구려 신라로 나뉘어 살며 각각의 왕가로 삼국시대를 이루었듯 독일도 지역별로 왕이 달리 있었다.
그중에 우리 동네를 다스리던 왕 가의 이름이 빌헬름이다.
우리는 빌헬름네 정원을 거닐며 왕궁을 마주하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었다.
남편은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로 전차도 버스도 자동차도 다니는 도심에서 이렇게 한적한 궁과 공원이 있다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마치 다른 세상 같다고 말이다.
몇 백 살 먹은 아름드리나무 들로 둘러 쌓인 이곳은 구중궁궐이라는 단어를 연상케 하는 세상속 잡음을 삼킨 숲과 그세월을 품은 궁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리라.
나는 부드러운 크로와상을 한입 베어 물고 커피 한 모금을 넘기며 말했다.
"여보야 난 여기 요 분위기 완전 익숙한 것 같아!" 라며 교양 줄줄 시크 뿜뿜한 목소리로 "여봐라 내 오늘 아침은 핫케이크를 먹어야겠구나!"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럼, 그럼 익숙하고 말고.. 이 넓은 정원을 열라 뛰어 와서 그랬겠지 아침 준비 다 됐는 뎁시오!"
푸하하 남편이 아무리 나를 삼 월 이로 만들 지라도 괜찮다.
나는 궁 앞 벤치에 앉아 테이크 아웃 해온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은잔에 담긴 포도주처럼 홀짝이고 종이 봉지 안에 담긴 빵을 은접시 위에 놓인 빵 썰듯이 뜯어먹는다 그 옛날 왕과 왕비처럼 럭셔리 하고 우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