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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24. 2021

작전명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누군가 우리 집 쓰레기통 위에 뭔가를 올려 놓았다.


비가 올 듯 말 듯 잔뜩 흐린 주말 아침이었다.

여느 날과는 달리 혼자 우리 집 멍뭉이 나리와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였다.

우리 집 울타리 앞 재활용품 쓰레기통 위에 뭔가 하나 얹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 네모난   같았다.

뭐지? 언놈이 남의 집 쓰레기통 위에?

나는 그 수상한 통을 뒤로하고 산책 후면 늘 하는 의식? 중에 하나인 나리 간식을 주기 위해 일단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리의 어깨끈과 리드 줄을 풀면서도 저 네모난 것이 무엇일까? 몹시 궁금했다.


우리 집 은 4차선 대로변으로 나가는 2차선 도로를 마주 하고 있다. 한마디로 길거리에 있는 집이다.

평소 집 앞으로 버스도 다니고 차들도 많이 다닌다.

그럼에도 쭉쭉 뻗은 가로수 심어져 있는 넓은 풀밭이(시유지) 도로와 집 사이에 간격을 벌려 주고 있다.

그 덕분에 집안까지 밖의 소음이 심하게 들려 오지는 않는다.

단지 보행자용 길과 우리 집 울타리가 맞닿아 있어 낮에는 가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리들이 라이브로 들려오기도 한다.

 어느날은 어떤 양심불량 들이 집 울타리 안으로 먹다만 과자봉지 나 음료수 빈 통 휴지 등을 던져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거기다 시내와 가깝다 보니 주차비를 아끼기 위해 남의 집 앞에 주차를 놓거나 집 울타리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시내를 다녀오는 얇쌉한 인간들도 더러 있다.

그런데 이렇게 쓰레기통 위에 무언가를 얌전히 올려놓고 간 적은 없었다. 마치 누군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현관문을 열고 뛰어나가 쓰레기통 위에 선물처럼 올라가 있는 네모 난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약통 또는 담뱃갑 같아 보였는데 가까이 보니 미니 술병이 담겨져 있는 작은  이었다.

요것은  술 좋아하는 독일 아저씨 아줌마들이 즐겨 찾는 술이다.

술병이 손 큰 사람 지 손가락만 해서는 알코올 35%vol 짜리 독주다.

참고로 맥주가 5% vol 와인 12 % vol 정도 하고 보드카 가 40% vol 데낄라 가 38% vol 정도 한다. 

그만 것이 알코올 수로 보드카와 데낄라랑 맞짱  판이다.

술 한잔 놓고 이야기하며 세월아 네월아 마시는 독일에서 한입에 털어 넣는 원샷 용이기도 하다.

크기가 아담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바카스 마시듯 털어 넣는 사람들도 있다.


몇 해전 독일 친구들과 미니 마라톤 참가 겸 오스트리아 린츠로 함께 여행을 갔다. 가는 기차 안에서 식도 나눠 먹고 했는데 이아즈 마이들 주머니에서 꼬마 독주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거다. 나중에는 축구 응원하러 경기장으로 가고 있다는 젊은 팀들과 맥주로 바꿔 마시기도 했다.

그만큼 술 좋아하고 연식 좀  있는 독일  

으른들의 생일 파티 라던가 기차 타고 단체로 여행을 갈 때 또는 모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술이다.

한국요리 강습에서도 단체팀 그것도 아줌마 아저씨 들의 단체 강습일 경우 자주 들고 오고는 했었다.


좌우지 당간 누가? 왜? 뜯지도 않은 술통을 통째로 남의 집 쓰레기통 위에 놓고 갔는가 말이다.

머릿속에 사건의 가설들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뜨나 감으나 별 차이 없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치 사건 현장에 출동한 오랜 경력의 형사처럼 중얼거렸다 '뭔가 냄새가 나'.....(여름 내내 시청한 액션 스릴러물 후유증)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설은 이런 거였다.

혹시 누군가 여기 뭔가를 넣었을까?


몇 년 전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남편이 이야기해주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시내에서 아직 따지 않은 음료수 병들과 작은 술병들이 여기저기 있었 지나가던 행인들이 무심코 들고 가 그걸 마시고 쓰러졌다고 했다. 그래서 줄줄이 대학병원 응급센터로 실려왔는데 검사해 보니 독극물이 검출되었다고 다.


정리하자면 누군가 사람들 많이 오가는 시내 분수대 근처 벤치  일부러 독을 탄 음료수를 여기저기 놔두었고.

길가던 사람들이 누가 마시라고 두고 간 공짜 음료수인 줄 알고 따서 마셨다가 죽을 뻔했다는 거다.

그 당시 난리 났던 음료수 사건의 범인은 아직까지 도 잡지 못했다.

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했는지도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혹시라도 그때 잡히지 않은 범인이 또 그 짓? 하기 위해 나타난 거라면?(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비밀의 숲, 보이스 시리즈 시청의 후유증)

나는 긴장한 채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어디까지나 나의 예리한 가설만을 가지고 경찰에 신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길가던 사람들이 가져가 마시도록 그냥 놔 둘 수도 없다.

모르지 않은가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그리고 어딘가에서 범인이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술 통에서 독이 들었을지도 모를 술 병을 꺼내기 위한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술통 안에는 작은 술병 3개가 들어 있을 터였다.

작전명 차분하고 자연스럽.

일단 집에서 일회용 장갑과 손전등 그리고 돋보기를 가져온다. 장갑을 끼고 통을 차분히 연다.

범인의 지문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니 손전등을 켜고 돋보기로 보아가며 최선을 다해 장갑 낀 손가락이 통에 닿는 면적을 줄여서 열고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를 술병 들꺼내 조심히 비닐봉지에 넣는다.

사건 현장에서 증거품을 모아 두듯....

그리고 빈 술통을 아까처럼 그대로 닫아서 쓰레기 통 위에 올려 둔다.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다음..

우리 집 거실 창문을 통해 빤히 보이는 재활용 쓰레기통은 잠복근무하듯 수시로 지켜본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다시 오게 되어 있다.

드라마와 영화 에서 언제나 그랬다.

누군가 주변을 돌아 보며 비밀 스럽게 다가와서는그 술통을 열어 확인하듯 그 안을 들여다본다면 그가 범인이다. 완벽한 작전이었다.



장갑 낀 손으로  최대한 조심조심 통을 열었다.

그리고 아침 이어도 날이 흐려 어두 침침 하니 손전등을 켜고 통 안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있는 술병들을 꺼냈다.

돋보기로 술병 안을 들여다보려는 찰나....

이상했다.... 매우 이상했다....

마치 한 번도 뜯은 적 없는 것 같아 보이던 통 안에 꼬마 술병 세병은 모두 비워져 있었다.

작전명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에서 똘끼 있고 어이없게 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젠장, 어떤 잡것이 잘 쳐마시고 빈병을 통속에 잘 넣어서 남의 집 쓰레기통 위에 마신적 없는  처럼 고이 접어 얹어 둔 거다.

분리수거 까지 해 달라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한 생쇼가 그럼에도 쪽팔려서 얼굴이 화끈 거려 왔다.

혹시나 이 꼬라지를 누가 봤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으나 때마침 나무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 까악  대며 길 건너 놀이터 쪽으로 날아갔다.

마치 내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염병 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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