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으로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일은 때로 무척이나 고달프고 자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어느 때는 이거이 무슨 적립 카드나 마일리지도 아니건만 차곡차곡 쌓인다. 또는 어제 받은 스트레스가 날아가기도 전에 새로운 것이 비집고 들어오기도 한다. 좁은 지하철 안에서 굳이 삐집고 앉아 없는 자리 만드는 궁둥이가 무기인 아주마이 처럼...
햇빛 쏟아지던 2월 어느 오후였다.
이 얼마 만에 만난 파란 하늘이요 눈부신 햇살 이던가.
나는 학교 가려고 일어났는데 공휴일이라 신바람 난 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커피 한잔 손에 들고 나 홀로 동네 산책을 나선다.
멍뭉이 나리도 없이 남편도 없이 혼자서 하는 산책은 나를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하게 한다.
이나무 저나무를 옮겨 다니는 작은 새들의 앙징맞은 날갯짓... 파란 하늘 위를 여유롭게 떠다니는 하얀 구름 흘려보내는 바람소리... 그 바람결에 실려 오는 봄내음...
나리와 함께 일 때는 이아이가 길 가다 혹시 뭐라도 주워 먹나 싶어 수시로 땅바닥을 살펴야 하고 남편과 함께 일 때는 대화라는 것을 하기 때문에 나눈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대답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혼자 산책을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가 속한 풍경 안에 머물면 그만이다.
요즘 신조어 들 중에는 줄임말들이 많다.
혼밥, 혼술, 혼행 뭐가 됐든 혼자 하는 것을 줄여서 그리 말한다면 혼자 하는 산책은 뭐라 해야 할까?
혼책? 혼산책? 어감이 입에 착 붙지는 않지만 명품 햇빛 어깨에 얹고 커피 한잔 손에 들고 걷다 보니 왠지 럭셔리한 느낌마저 든다.
아직 2월인데..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상큼하다.
물오른 나무에 맺힌 꽃망울들이 요이 땅! 신호를 기다리는 달리기 주자 들처럼... 서로 앞을 다투어 꽃을 피우려 파릇파릇 매달려 움튼 것도 보인다.
풀밭 사이에는 어디선가 이름 모를 홀씨들이 날아와 그새를 못 참고 피어난 어여쁜 야생화들도 보인다.
골목 끝으로 걷다 보면 나란히 서있는 이삼백 년은 족히 되었을 옛날 옛적 독일 집들을 만나게 된다.
그 길 모퉁이를 돌면 내가 좋아하는 나무 위에 올라간 인형의 집 같은 빨간 나무집이 있다.
독일은 주택의 정원이나 공원, 골목길, 놀이터 등에 여러 개의 굵은 가지들이 나지막 하게 뻗어 있어 기어 올라가기 좋게 생긴 아름드리나무들이 곳곳에 있다.
그런 나무들을 Kletterbaum 클레터바움이라고 부른다. 주택의 클레터바움 에는 그네를 매달거나 이렇게 인형의 집처럼 작은 그러나 아이들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나무로 만든 집을 올려놓기도 한다.
이런 장난감 같은 나무집을 Baumhaus 바움하우스라고 부른다.
바움하우스는 한마디로 아이들의 아지트 인 셈이다.
저 오래된 빨간 나무집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지 모르는 아이들이 어릴 때 즐겨 놀던 보물함이 들어 있을까?
오래된 동화책? 또는 장난감?
나는 빨간 바움 하우스 앞에서 있노라면 언젠가 내게도 있었던 어린 시절 나의 아지트가 생각난다.
눈을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내 어린 시절의 집은 아담한 마당이 있는 작은 주택이었다.
파란 대문 왼쪽으로 돌로 만든 꽃밭이 있었고 그 건너편 쪽에 빨간 고무 대야를 놓은 수돗가가 있었다.
그 뒤쪽 위로 뚜껑 덮인 항아리들이 조로미 놓인 장독대가 있었다.
우리의 아지트는 단연 장독대와 꽃밭 앞 봉당이었다.
장독대는 항아리 틈새에 숨어 비어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키며 놀던 숨바꼭질을 위한 놀이터였다.
꽃밭 맞은편에는 집안 마루로 들어가는 낮은 계단 같은 바닥이 있었는데 그곳을 우리는 봉당이라고 불렀다.
그 봉당에 주저앉아 동네 친구들과 자주 소꿉놀이를 하고는 했었다.
돌과 나뭇가지를 그릇 삼아 놀던 소꿉놀이에서 꽃밭에서 따온 분홍색 분꽃과 흰색 나팔꽃은 김치도 되고 밥도 되었다.
왠지 이길 따라 계속 걷다 보면 분꽃,나팔꽃 가득하던 그 언젠가의 봄날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맘이 간질간질 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