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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24. 2022

남편이 데려간 일요일의 꽃놀이

독일에서 일요일에도 문 연곳.


몇 주 연속 햇빛 쏟아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가 났다가도 중간에 흐리고 비 오는 것이 원플러스 원처럼 들어 있는 날이 많은 독일에서 하루 종일 햇빛 이라니 땡잡았다.

입에서는 어디선가 많이 들은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노래 인지 타령인지 모를 것이 흥얼흥얼 흘러나왔다.

"이런 날도 있어야 살지 그래야 사람들도 꽃도 나무도 광합성을 하지요 봄 봄봄 봄 봄이 왔어요~"


횡재한 기분에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햇볕에 팍팍 털어 너는 빨래가 뽀송하게 마르겠지 싶어 벌써부터 마음이 개운해진다.

햇살 받아 속속들이 보이는 희뿌연 먼지들을 구석구석 쓸고 닦으면서도 괜스레 맘이 들뜬다.


일요일 아침 늘 그러하듯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하늘 높이 붕붕 뜨는 마음 과는 상반 되게 쥐 죽은 듯 조용한 거리를 지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야 오늘 날씨 느무 좋다 김밥 싸서 꽃놀이 가고 싶엉"

일요일이어서 더 갈 곳 없는 독일에서 떠오른 매화꽃, 유채꽃, 벚꽃, 봄맞이 꽃놀이..

지금 당장 김밥 도시락 싸들고 관광버스 탈 기세로 한국 봄에나 등장하는 꽃놀이 타령을 부담스러운 콧소리로 해대는 마눌 에게 남편은 자신 있게 말했다.

"까짓 거 꽃놀이 가자 마눌이 가자는데 가야지!"

나는 속으로는 그래 봐야 공원으로 길게 산책 가는 거겠지 하면서도 장단 맞춰 주는 남편이 기특? 해서 짐짓 기대 만빵이라는 듯 물었다.

"어디? 어디? 어디 갈 건데?"


잠자코 따라만 오라는 남편이 데려 온 곳은 다름 아닌 꽃과 나무 가 지천인 정원 용품 상가.

일요일이지만 문을 여는 빵집처럼 이곳 꽃 상가도 독일에서 드물게 일요일 오전에 문을 연다.

그동안 정원을 방치해 두다 싶이 했던 바람에 잊고 있었다. 꽃 상가.

이곳엔 온갖 종류의 꽃 들과 나무 그리고 정원 용품들로 가득하다.

독일 봄 하면 생각 나는 색색의 프리멜이 들판처럼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눈으로 꽃 감상하느라 정신없던 내게 남편은 어깨를 펴고 한 건 하신 듯 의기양양 말했다."여기 봐봐 꽃 되게 많지? 이게 꽃놀이지"

나는 "오우 남편 똑똑한데 이거 개이득 꽃놀이네" 하며 요즘 애들 말도 섞어 치며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래 꽃놀이가 뭐 별거냐 김밥은 정원에 나가 먹는 걸로 하고 꽃구경 실컷 하고 우리 집 정원에 심을 것도 가져가야지.

웃으며 삥 뜯으려는 동네 건달 형아? 같던 정원 전문가를 만나 식겁하고 우리끼리 정원을 어떻게든 환골탈태하게 해야 할 텐데 라는 고민만 했지 실상은 삽질하느라 허벌라게 힘들게 빤해서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뭔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의 가르텐 피싱?



꽃 상가 안의 한쪽 면이 오른쪽 왼쪽으로 전체가 모두 프리멜이다.

프리멜 작은 화분 하나에 99센트 한화로 하면 약 1200원.

천이백 원짜리 꽃들 중에서도 골라 보면 게 중에 꽃 이 더 많이 달리고 풍성한 모습의 아이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어 저기 있다 왕건이!" 하며 큰 놈들로 골라 왔다.

마치 파도치는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조개껍질 주워 담듯 거기서 거긴 인 똑같이 생긴 꽃들을 고르고 골라 카트에 담으며 신이 난 아이들처럼 재잘거렸다.

노란색, 하얀색, 빨간색, 보라색, 분홍색 각각의 작은 프리멜 화분들이 함께 담기니 커다란 꽃바구니 같다.  


복근이라 우기는 후덕한 중년 똥배를 앞세우고 어떻게든 크고 튼실한 꽃을 고르겠다고 진격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생각난 장면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 연애 때 일이다. 총각 때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던 남편이 꽃 선물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삐쩍 말랐던 남편이 어디서 자기랑 비슷하게 생긴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내가 살고 있던 기숙사로 찾아온 날이다.


그날 우리는 기숙사 바로 앞 공원을 산책하며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데이트를 했지만 그 비실 비실한 한송이 빨간 장미를 들고 어떻게 전해 줘야 멋있어 보이려나 전전긍긍하던 남편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 몇 초 사이의 이미지가 슬라이드 사진처럼 떠오른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 뿐 옆에서 커다란 꽃 화분을 골라 안기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날리는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괜스레 쑥스럽거나 하면 한 옥 타프 올라가는 목소리도 삐지면 찡긋거려지는 콧등과 눈가도 모두 그대로다....

그때보다 검은 머리 사이로 흰머리가 조금 더 보이고 바지 벨트 위로 그때는 못 보던 둥근 분이 올라와 계시고 그 덕분에 옷 사이즈가 쪼금 더 넉넉해졌을 뿐이다.


세월은 그렇게 우리를 그 자리에 세워 두고 언제였나 싶게 우리 곁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기차 플랫폼에서 기차가 지나가듯…

그 스쳐 지나가듯 가 버린 시간은 우리에게 직장에 다니는 큰아들과 대학생이 된 딸내미 그리고 중학생인 막내와 천방지축 멍뭉이 나리를 데려다주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때 그 모습에서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다.

마음만 호올쭉한 모습으로 말이다.


문득,행복은 이렇게 지난 시간을 함께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짬짬이 미소 지을 수 있는 몇 초, 몇 분의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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