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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12. 2022

정원 가득 봄 들여 봄

봄 꽃 가득 꽃밭을 만들었다


볕 좋던 3월 어느 일요일 정원용품 상가에서 꽃들을 담아 오고 나니 그동안 내버려 두었던 정원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이구석 저구석 겨우내 방치해 두다 시피 한 화분에는 어느샌가 날아든 잡초만 무성 해 지고 있었다.

우선 이 미친년 꽃다발 같은 잡초들을 하나하나 뽑아내고 치워도 치워도 화분 사이사이 남아 있던 갈색의 메마른 낙엽들을 걷어 냈다.


우리 집 정원 끝에는 백 살은 족히 넘었을 아름드리 보리수나무가 서 있다. 보리수는 고향집, 하모니, 화합, 공동체, 사랑의 치유 등 수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그 의미가 아름다워 그런지 아니면 필요해서 그런지 독일에서는 사람들이 모이고 화합이 필요한 공동체 공간에 유독 Lindenbaum 보리수나무를 많이 심는다.

예를 들어 양로원, 요양원, 학교, 레스토랑 등등...

우리 집은 예전에 이 동네에서 꽤나 유명한 독일식 레스토랑이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집을 번지수가 아닌 그때 그 시절 레스토랑 이름으로 기억한다.

Kleine weide 클라이네 바이데...

보리수는 봄 되면 노란 꽃을 피우며 바람결에 바닥을 노랗게 물들이고 여름 되면 푸르른 잎을 내며 그 촘촘한 잎들로 강렬한 뙤약볕을 가려 주고 가을 되면 커피 향이 묻어 날 것 같은 갈색의 낙엽을 선사한다.

그 값으로 우리는 겨우내 허벌나게 낙엽을 주워 치워야 하지만 말이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 보리수나무를 보며 그 옛날 부모님과의 추억,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누구는 이곳에서 5살 때 부모님과 함께 했던 맛난 식사를 떠올리며 생애 처음 맛본 잊을 수 없는 감자튀김을 이야기했고 또 누군가는 이곳에서 초등학교 반창회로 만났던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옛 친구를 회상 했다.

세월의 자태를 뽐내며 보리수가 서 있는 우리 집 정원은 클라이네 바이데 라 불리던 이 동네 사람들 에게는 동네 사랑방 같던 독일 레스토랑의 비어 가르텐이었다.


비어가르텐을 가정집 정원으로 개조? 해서 사용 한지 어느덧 햇수로 9년째다.

우리는 이 보리수와 아홉 번째 봄을 맞고 있는 거다.

눈 깜박할사이 지나가 버린 9년의 세월을 통해...

지 몸보다 훨씬 크던 짙은 초록색 낙엽 담는 통 안에 들어가 숨바꼭질 하며 즐거워하던 앞니 빠진 개구쟁이 막내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덩치만) 되어 우리 집에서 가장 삽질을 잘하는 일꾼이 되었다.

사람은 이렇게 세월 따라 변하고 있는데 보리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정원을 지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 주민 여러분 들이 오며 가며 우리 집 정원을 들여다 보고 그리도 훈수? 두고 싶어 하는 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집 보리수나무 아래 정원 귀퉁이 어딘가에 그들 누군가에게는 크고 작은 추억들이 보물찾기 색색의 작은 쪽지처럼 여기저기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비포
애프터

화분 구석구석에 박혀 있던 보리수 낙엽들을 주워 치우고 이름 모를 잡초들을 걷어 내는 작업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어디선가 바람 따라 날아들었을 잡초 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화분의 반쯤 메마른 흙속에서도 단단히 뿌리내려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저리도록 쪼그려 앉아 작은 삽으로 마른 흙을 덜어 내고 두 손 부들부들 떨어 가며 힘주어 뿌리째 뽑아낸 잡초 들을 한편으로 모은다.

이토록 생명력 강하게 살아남은 잡초들을 그냥 버리기는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기는이 없고 돌 보는 이 없는 맞지 않는 화분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 보려 뿌리내린 잡초들의 모습이 어쩐지 물설고 말설은 남의 땅에서 자리 잡으려 애쓰며 살고 있는 우리 모습과 겹쳐 보여서였을까?

정원 한쪽 구석에 이미 잡초만 가득한 빈 땅 위에 뽑아낸 잡초들을 살며시 얹어 흙을 덮어 두었다.

이곳에서도 잘 살아남으라고....



잡초를 덜어 낸 화분마다 말라 버린 흙들을 덜어 내고 새로 사 온 촉촉하고 반질 반질 윤이 나는 꽃 전용 Blumenerde 흙으로 채운다.

정원용품 상가 에는 흙들도 어찌나 종류가 많던지...

예전에는 무조건 세일 나온 흙으로 사다가 꽃도 심고 나무도 심고 채소도 심었다.

그런데 모든 사물이 다 제각기 쓰임새와 용도가 있듯 흙도 제대로 구분해서 꽃은 꽃 전용 흙으로 나무 등의 식물은 식물 용으로 채소는 채소용으로 나온 흙을 사다가 심어야 더 잘 살아 낸다.


곳곳에 색색의 봄꽃들을 심었다.

조금 움직였다고 어깨도 저리고 허리도 뻐근해 왔지만 그만큼 맘속이 간질간질 해 왔다.

동화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술 할머니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손이 닿는 곳마다 마술이라도 부리듯 같은 화분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에 신바람이 났다.

햇살 가득하던 3월 주말마다 정원에 나가 앉았다.

작년 봄....

그전에 땅에 묻어 버리듯 심어 두었던 튤립 구근과 수선화 구근에서 파란 파처럼 대 가올라오고 빨갛고 노란 꽃들이 피어나기 전까지는 파밭 같은 모습을 지녔던 우리 정원이 이제는 알록달록 예쁜 꽃들로

봄을 피워 내고 있다.

이번 주말도 우리는 정원 가득 봄을 들여놓을 예정이다.

작년 봄
올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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